1984년 9월, 남한에 대홍수가 나고 사회가 혼란스러웠다.
대학생들은 연일 아웅산테러는 잊고, 김일성과 정상회담하라고 난리를 쳐댔다.
이 소식을 들은 김일성은 전두환에게 거짓선전용으로 구호물자를 지원해주겠다고 발표했다.
어차피 지원해도 안 받는다고 전두환이 버틸거고,
그러면 대학생들은 더 극렬하게 남북화해 외칠 것을 계산한 것이다.
청와대에서도 의견이 갈려 받지 말아야 한다, 받아야 한다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이 가운데 전두환은 통 크게 받겠다고 합의를 했고,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한 김일성은 쌀과 옷가지를 지원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이 당시 북한이 전력난과 식량난으로 고생을 하던 시점이라 지원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결국 쌀은 덜익은 쌀, 옷은 한번 빨면 병신되는 옷이 구호품 명목으로 왔다.
전두환은 우리 남한이 거지라서 구호품을 더 보내달라며 김일성을 능욕했고,
이제는 북한에 배가 없어 구호품을 나르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김일성은 체면차린다고 어선으로 구호품을 날랐는데,
전두환은 일부러 국민들 보라고 낡아빠진 북괴 어선을 남한 전지역에 생방송으로 보도했다.
도착한 옷은 전부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거나 찢어서 걸레로 쓰라고 국민들한테 나눠주었다.
쌀은 밥을 도저히 해먹을 수가 없어 동네 강아지한테 주거나 좀 상태가 괜찮은 건 떡을 해먹었다.
당시 KBS 뉴스에 어떤 아재가 나와서 "수령님 쌀이 맛이 없어서 도저히 먹질 못하겠습니다." 라고 할 정도였다.
물론 생방송으로 보도되어 김일성도 시청하게끔 배려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알고 격분한 김일성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고,
전두환은 감사의 뜻으로 북한이 우리한테 지원해준 구호품 금액의
약 100배에 달하는 전화기와 TV를 공짜로 어선에 실어서 북으로 보내주었다.
'너넨 지원한답시고 보내준게 쓰레기같은 것들이지만 우린 이런거도 넘치니까 그냥 준다.'는 의도에서였다.
기내탑승용 여행가방에 전자제품 등을 가득채워서 떼로 북한에 보냈다.
당시 북괴에게 지원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많았으나
애초에 남한과 전자제품 규격 자체가 달랐고,
전력난에 시달리던 북괴는 전화기와 TV를 받아도 사용할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이후 미국 뉴욕 타임스는 이를 두고 '1984년 올해 최고의 외교적 사건' 이라고 대서특필하여 극찬하였으며,
대한민국 대통령 전두환이라는 이름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