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2015년 1월 8일 경향신문, 한겨레 만평

세우실 조회수 : 647
작성일 : 2015-01-08 07:37:59

_:*:_:*:_:*:_:*:_:*:_:*:_:*:_:*:_:*:_:*:_:*:_:*:_:*:_:*:_:*:_:*:_:*:_:*:_:*:_:*:_:*:_:*:_:*:_

얼마 전에 졸부가 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나의 외삼촌이다
나는 그 집에 여러 번 초대받았지만
그때마다 이유를 만들어 한번도 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방마다 사각 브라운관 TV들이 한 대씩 놓여있는 것이
여간 부러운 게 아닌지 다녀오신 얘기를 하며
시장에서 사온 고구마 순을 뚝뚝 끊어 벗겨내실 때마다
무능한 나의 살갗도 아팠지만
나는 그 집이 뭐 여관인가
빈방에도 TV가 있게 하고 한마디 해주었다
책장에 세계문학전집이나 한국문학대계라든가
니체와 왕비열전이 함께 금박에 눌려 숨도 쉬지 못할 그 집을 생각하며,
나는 비좁은 집의 방문을 닫으며 돌아섰다
 
가구란 그런 것이 아니지
서랍을 열 때마다 몹쓸 기억이건 좋았던 시절들이
하얀 벌레가 기어 나오는 오래된 책처럼 펼칠 때마다
항상 떠올라야 하거든
나는 여러 번 이사를 갔었지만
그때마다 장롱에 생채기가 새로 하나씩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집의 기억을 그 생채기가 끌고 왔던 것이다
 
새로 산 가구는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이 달라졌다는 것만 봐도
금방 초라해지는 여자처럼 사람의 손길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먼지 가득 뒤집어쓴 다리 부러진 가구가
고물이 된 금성라디오를 잘못 틀었다가
우연히 맑은 소리를 만났을 때만큼이나
상심한 가슴을 덥힐 때가 있는 법이다
가구란 추억의 힘이기 때문이다
세월에 닦여 그 집에 길들기 때문이다
전통이란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것----
하고 졸부의 집에서 출발한 생각이 여기에서 막혔을 때
어머니가 밥 먹고 자야지 하는 음성이 좀 누구러져 들려왔다.
너무 조용해서 상심한 나머지 내가 잠든 걸로 오해 하셨나
 
나는 갑자기 억지로라도 생각을 막바지로 몰고 싶어져서
어머니의 오해를 따뜻한 이해로 받아들이며
깨우러 올 때까지 서글픈 가구론을 펼쳤다.


                 - 박형준, ≪가구의 힘≫ -

* 한국일보 1991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_:*:_:*:_:*:_:*:_:*:_:*:_:*:_:*:_:*:_:*:_:*:_:*:_:*:_:*:_:*:_:*:_:*:_:*:_:*:_:*:_:*:_:*:_:*:_

 


 


 

2015년 1월 8일 경향그림마당
[※ 김용민 화백 휴가로 ‘그림마당’ 일주일 쉽니다.]

2015년 1월 8일 경향장도리
http://img.khan.co.kr/news/2015/01/07/5a0823a1.jpg

2015년 1월 8일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cartoon/hanicartoon/672672.html

 

 

앵무새가 발톱은 또 더럽게 날카로워요~

 

 


 
―――――――――――――――――――――――――――――――――――――――――――――――――――――――――――――――――――――――――――――――――――――

”길이 너무 실없이 끝나버린다고 허탈해 할 필요는 없어.
방향만 바꾸면 여기가 또 출발이잖아.”

              - 영화 "가을로" 中 -

―――――――――――――――――――――――――――――――――――――――――――――――――――――――――――――――――――――――――――――――――――――

IP : 202.76.xxx.5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꽃바람
    '15.1.8 6:35 PM (180.245.xxx.102)

    오늘 시 참 좋으네요.. 그간 전하지 못한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ㅇ^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454805 대학병원 근무 선생님 계세요? 3 대학병원 2015/01/09 1,439
454804 이 옷좀 봐주세요. 4 ss 2015/01/09 1,090
454803 왜 요즘은 링귀걸이 하는 사람이 없을까요? 10 어부바 2015/01/09 3,819
454802 태블릿이라고 하나요 갤럭시 노트 프로가 생겼는데 뭐에 써야할지... 1 50대 2015/01/09 879
454801 평면티비 사려는데요. 스마트티비 사야할까요? 6 티비 2015/01/09 1,118
454800 강남인강 출판사문의. 2 ㅛㅛ 2015/01/09 954
454799 비누사용문제 3 수영장 2015/01/09 1,214
454798 "싸게 팔면 집값 떨어진다" 폭행…막가는 부녀.. 2 oooo 2015/01/09 1,764
454797 영국 아이폰 한국에서 사용가능한가요? 10 아이폰 2015/01/09 2,529
454796 파전 찍어먹을 초 간장 알려주세요 9 2015/01/09 2,131
454795 진짜 어이없을정도로 슬픈 사건들이 너무 많아서 눈물이 나요. 우.. 3 슬프네요.... 2015/01/09 1,435
454794 이 자켓? 코트 좀 봐주세요--♡ 9 여니 2015/01/09 2,464
454793 식기세척기.드럼세탁기 베이킹 파우더사용요.. 5 ^^ 2015/01/09 4,273
454792 세월호269일)바닷 속에 계신분들이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10 bluebe.. 2015/01/09 506
454791 일산 백병원 근처 고시원알려주세요 1 고시원 2015/01/09 1,057
454790 일산 애니골은 어떤 덴가요?? 3 궁금 2015/01/09 1,779
454789 Wmf 그리고 휘슬러 8 궁금 2015/01/09 2,750
454788 집안일 바쁠 때 국가기관 인턴을 알바로 고용해도 괜찮을까요? 24 나도 희망 2015/01/09 2,942
454787 방금 82쿡 접속 안됐었죠? 2 ㅇㅇ 2015/01/09 1,040
454786 최근 연예인 관련인 중 제일 밉상이 2 ........ 2015/01/09 4,143
454785 죄책감이 들어 죽을거 같습니다... 24 꽃남쌍둥맘 2015/01/09 14,505
454784 준 재벌집 아이들 이야길 들었는데 11 2015/01/09 14,259
454783 서초동 사건이요. 20 ㅇㅇㅇ 2015/01/09 6,900
454782 초1들 암산 어느정도 하나여 10 2015/01/09 1,882
454781 남의 수입에 관심은 가질 수 있지만 너무 카더라식이라 불편하네요.. 3 카더라 2015/01/09 1,7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