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2015년 1월 8일 경향신문, 한겨레 만평

세우실 조회수 : 643
작성일 : 2015-01-08 07:37:59

_:*:_:*:_:*:_:*:_:*:_:*:_:*:_:*:_:*:_:*:_:*:_:*:_:*:_:*:_:*:_:*:_:*:_:*:_:*:_:*:_:*:_:*:_:*:_

얼마 전에 졸부가 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나의 외삼촌이다
나는 그 집에 여러 번 초대받았지만
그때마다 이유를 만들어 한번도 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방마다 사각 브라운관 TV들이 한 대씩 놓여있는 것이
여간 부러운 게 아닌지 다녀오신 얘기를 하며
시장에서 사온 고구마 순을 뚝뚝 끊어 벗겨내실 때마다
무능한 나의 살갗도 아팠지만
나는 그 집이 뭐 여관인가
빈방에도 TV가 있게 하고 한마디 해주었다
책장에 세계문학전집이나 한국문학대계라든가
니체와 왕비열전이 함께 금박에 눌려 숨도 쉬지 못할 그 집을 생각하며,
나는 비좁은 집의 방문을 닫으며 돌아섰다
 
가구란 그런 것이 아니지
서랍을 열 때마다 몹쓸 기억이건 좋았던 시절들이
하얀 벌레가 기어 나오는 오래된 책처럼 펼칠 때마다
항상 떠올라야 하거든
나는 여러 번 이사를 갔었지만
그때마다 장롱에 생채기가 새로 하나씩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집의 기억을 그 생채기가 끌고 왔던 것이다
 
새로 산 가구는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이 달라졌다는 것만 봐도
금방 초라해지는 여자처럼 사람의 손길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먼지 가득 뒤집어쓴 다리 부러진 가구가
고물이 된 금성라디오를 잘못 틀었다가
우연히 맑은 소리를 만났을 때만큼이나
상심한 가슴을 덥힐 때가 있는 법이다
가구란 추억의 힘이기 때문이다
세월에 닦여 그 집에 길들기 때문이다
전통이란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것----
하고 졸부의 집에서 출발한 생각이 여기에서 막혔을 때
어머니가 밥 먹고 자야지 하는 음성이 좀 누구러져 들려왔다.
너무 조용해서 상심한 나머지 내가 잠든 걸로 오해 하셨나
 
나는 갑자기 억지로라도 생각을 막바지로 몰고 싶어져서
어머니의 오해를 따뜻한 이해로 받아들이며
깨우러 올 때까지 서글픈 가구론을 펼쳤다.


                 - 박형준, ≪가구의 힘≫ -

* 한국일보 1991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_:*:_:*:_:*:_:*:_:*:_:*:_:*:_:*:_:*:_:*:_:*:_:*:_:*:_:*:_:*:_:*:_:*:_:*:_:*:_:*:_:*:_:*:_:*:_

 


 


 

2015년 1월 8일 경향그림마당
[※ 김용민 화백 휴가로 ‘그림마당’ 일주일 쉽니다.]

2015년 1월 8일 경향장도리
http://img.khan.co.kr/news/2015/01/07/5a0823a1.jpg

2015년 1월 8일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cartoon/hanicartoon/672672.html

 

 

앵무새가 발톱은 또 더럽게 날카로워요~

 

 


 
―――――――――――――――――――――――――――――――――――――――――――――――――――――――――――――――――――――――――――――――――――――

”길이 너무 실없이 끝나버린다고 허탈해 할 필요는 없어.
방향만 바꾸면 여기가 또 출발이잖아.”

              - 영화 "가을로" 中 -

―――――――――――――――――――――――――――――――――――――――――――――――――――――――――――――――――――――――――――――――――――――

IP : 202.76.xxx.5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꽃바람
    '15.1.8 6:35 PM (180.245.xxx.102)

    오늘 시 참 좋으네요.. 그간 전하지 못한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ㅇ^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456928 보육교사 나이있는 사람이 괜찮지 않나요? 20 어린이집 2015/01/15 5,347
456927 닭가슴살 추천 2 다이어트 2015/01/15 998
456926 日수산물 수입금지 푼다고?…외교부 당국자 발언 1 세우실 2015/01/15 583
456925 울산 성민이.. 1 아동학대 2015/01/15 629
456924 아동학대는 보육시설이 아닌 가정에서 제일 많이 발생합니다.. 6 ㅇㅇ 2015/01/15 1,493
456923 무슨 어린이집은 빈자만 보내는건 아녜요;; 댓글 중에 돈있음 시.. 4 근데 2015/01/15 1,195
456922 이별 후 답답한 마음에... 적어봅니다. ^^; 31 가을흔적 2015/01/15 10,893
456921 홈플러스 지류 상품권을 온라인마트에서 5 인터넷몰 2015/01/15 1,578
456920 숙대앞 와플하우스 아직도 있나요? 7 딸기 2015/01/15 2,160
456919 갱년기에 호르몬제 먹으면 4 갱년기어자 2015/01/15 3,924
456918 치매 초기 엄마 1 ... 2015/01/15 2,088
456917 컴퓨터기원을보면 서양인이 44 2015/01/15 505
456916 어떻게 양xx 벌 줄까요? 2 엽기녀 되고.. 2015/01/15 1,055
456915 사건들 속에 문득 떠 오른 그때 그 아이. 14 음.. 2015/01/15 2,528
456914 사골은 몇 번까지 우릴수 있나요? 9 사골 2015/01/15 4,817
456913 빨래 건조대 괜찮은거 뭐있을까요? 11 알려주세요 2015/01/15 2,736
456912 갱년기에 좋은 영양제 추천부탁드려요. 2 ... 2015/01/15 3,765
456911 대기업 어린이집은 뽑히기 힘든가요? 35 ㅇㅇ 2015/01/15 3,838
456910 압구정 백야 질문이요.... 6 dma 2015/01/15 2,485
456909 방금 뉴스룸에 갑질손님 ;;;;;; 5 dd 2015/01/15 2,306
456908 대한항공 승무원들 참 안됐네요.. 30 어이없네요 2015/01/15 15,905
456907 50이상이신 어머니들께 여쭈어요. 7 엄마엄마 2015/01/15 2,488
456906 요즘 딸기 맛있나요 12 딸기밭 2015/01/15 2,522
456905 어린이집 폭행당한 아이.. 건강은 괜찮나요? ㅁㅁ 2015/01/15 663
456904 일본어 배워보려고하는데 도와주세요 2 오즈 2015/01/15 1,5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