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마눌님과 작은 딸과 함께 영화 <국제시장>을 보고 왔습니다.
제가 아버지라는 인식이 자리 잡은 즈음인 30대 후반부터 질곡의 우리 현대사를 살아온, 그리고 살아남은 우리 부모, 삼촌 세대에 대해 무조건적인 존경을 표해 왔던 것이 이 영화에 끌린 이유이기도 하지만, 12/23일이 돌아가신 어머님의 생신이라 어머님에 대한 죄송함과 고마움이 가족들을 영화관으로 재촉하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엄마로 산다는 건 - 엄마도 소녀일 때가
나이가 들면 여성 호르몬이 많아져 눈물도 많아지는지 모르지만 저는 이 영화를 보는 동안 세 번 눈물을 흘렸던 것 같습니다. 마눌님이나 딸이 눈치챌까봐 소리 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줄줄 흐르는 눈물을 참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양치질을 하면서 울컥하기를 서너 번 했던 것 같네요. 92년에 65세의 비교적 이른 나이로 돌아가신 어머님이 생각났기 때문이었습니다. 평소 혈압이 높고 심장병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병원에 가 보시지 않았다가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운명을 달리 하셨는데 그 때는 저는 그냥 엉엉 울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첫 애가 돌을 막 지난 시점이었지만 아직 아버지나 부모가 되어 있지는 못했던 모양입니다. 어머님이 제게 다시 다가온 것은 40을 바라보는 나이였던 것 같고 그 때야 철이 든 것 같네요.
아버지가 국민학교(초등학교) 교장이셨지만 7남매를 키우는데는 아버지 월급으로는 늘 부족하였지요. 어머님은 사택엔 상수도 시설이 들어오지 않아 읍내에서 물을 길어 오셨고, 사택 한 구석에 축사(돈사)를 만들어 돼지를 키우셨습니다. 마당의 텃밭엔 채소를 심어 반찬거리를 했었고 두부공장에 가서 콩비지를 얻어다 비지찌개를 해주셨습니다. 교장 사모님 신분에 양동이를 이고 물을 나르고, 돼지를 키우며, 두부공장에 가서 비지를 얻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당신 자신에게는 단 한푼을 쓰지 않으셨고, 그런 우리는(저는) 아버지의 월급에 불만이셨던 어머님을 이해하거나 도우기는 커녕 못마땅해 했었습니다.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쓰면 아버님 월급이 부족하긴 하지만 생활을 영위하는데 큰 문제를 없을 건데 월급날이면 항상 큰 소리를 내시는 어머님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머님의 불만에 아무 대답이 없었던 아버님을 속으로 편들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 둘을 낳고 키우면서 그제서야 어머님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어머님의 불평과 넋두리가 단지 최소한의 항변이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고 괜시리 그제서야 죄송해지고 고마움이 느껴지더군요.
제가 양치질을 하면서 울컥했던 것은 겨울철 볕이 드는 담벼락 아래에서 정신나간 사람처럼 우두커니 혼잣말을 하시던 어머님 생각이 나서였습니다. 저는 어머님의 그 중얼거림이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 힘든 생활을 누구에게도 하소연 할 수 없어 혼자서 삭이는 당신 자신만의 의식이었다는 것을 아이를 낳고 철이 들고야 알았습니다. 어머님의 담벼락 아래 혼자만의 중얼거림을 <국제시장>이 제 기억에서 다시 꺼집어 내 준 것이죠.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 기억은 저를 울컥하게 합니다.
몇 일전 SBS <슈퍼스타 K>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이설아’라는 고등학생이 자작곡으로 부른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이라는 노래를 이번 주 내내 출퇴근길에서 반복해서 듣고 다녔습니다. 10대 후반의 소녀도 엄마의 노고를 알고 감사해 하는데, 나이 30이 넘어서도 어머님 생전에는 어머님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고 살았다는 것이 무척 창피하기도 하고 후회스럽기도 합니다.
엄마도 소녀일 때가
엄마도 나만 할 때가
엄마도 아리따웠을 때가
있었겠지
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
엄마로 살아간다는 건
아프지 말거라 그거면 됐다
http://www.youtube.com/watch?v=kEuolkEWcjs
엄마도 소녀일 때가, 엄마도 나만 할 때가, 엄마도 아리따웠을 때가 있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도 못하면서 이젠 중년의 공허함에 과거의 아름다운 시절을 그리워하기만 하는 자신이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이설아는 10대 때 깨우친 것을 30이 넘어서야 깨친 것이 부끄럽기도 합니다.
‘아프지 말거라 그거면 됐다‘는 것이 먼저 가신 어머님 심정이었고, 덕수의 마음이었을 것이라는 것에 <국제시장>이 나를 눈물 흘리게 하고, 집에서도 울컥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물론 저희 부모님은 영화 주인공 윤덕수(황정민 분)처럼 흥남철수나 파독 광부, 월남전 참전의 경험은 없으시지만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태평양전쟁, 해방과 좌우 혼란기, 그리고 6.25전쟁, 4.19, 5.16, 10.26, 5.18, 6.10 등 질곡의 현대사를 모두 견뎌온 것은 주인공 덕수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안위보다는 자식의 교육이나 건강을 먼저 챙기고, 배 곯지 않게 먼저 먹이려 하며 ‘이 고생을 우리 세대가 하고 자식들이 하지 않게 한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는 것은 제 부모님, 그리고 <국제시장> 덕수의 세대의 보편적 정서이고, 그것이 일종의 사회적 윤리였다고 생각합니다.
산업화를 공과 과로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여 평가할 수 있을까
혹자는 <국제시장>이 산업화 세대를 미화하고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은연중 찬양하는 정치성이 농후한 작품이라 비판하더군요. 박정희는 단 한번도 언급되지 않고 단 한번도 나오지 않으며, 4.19나 5.18 같은 정치적 사건이 표현되지 않은 <국제시장>이 더 정치적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이구요. 박정희와 산업화 세대의 공과 과는 분명한데, 공만을 포장하고 부각하는 것은 형평성을 잃은 것이고 이것은 또 다른 역사 왜곡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저는 <국제시장>을 정치적 영화라고 비판하거나 정치적 함의를 찾아내는 것에 동의하지 않지만, 이런 비평도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박정희의 산업화와 그 세대의 공과 과를 이분적으로 분리하여 평가하는 것에도 반대합니다. 박정희와 산업화를 평가할 때 좌파(진보) 진영에서도 그렇지만 박정희와 산업화를 긍정하는 우파(보수) 진영에서도 공과 과를 분리해서 평가합니다만, 저는 박정희의 공과 과를 분리해서 평가하는 것이 가능한지도 모르겠고,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60~70년대의 우리 사회 현실에서 개발독재 없이 산업화가 가능했을지에 대해 저는 회의적입니다. 60~70년대 한국 사회 정도의 수준의 나라가 민주적 방식으로 산업화가 된 사례가 전세계적으로도 없을 뿐 아니라 민주화와 동시에 산업화가 진행된다거나 민주적 방식으로 우리와 같은 산업화를 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시 우리 사회에서 일부 독재적 방식이 동원되지 않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산업화나 민주화가 가능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 방식이나 결과가 옳다거나 선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각자의 가치관이나 철학, 경험에서 판단할 문제이지만, 우리가 산업화된 과정에서의 공(세계 유례가 없는 압축 성장과 산업화)은 과(산업화과정에서의 독재와 인권유린)에 상당 부분 기반하였다는 것, 그리고 그런 방식이 옳고 그름을 떠나 공을 위해 과를 부담하는 것에 대한 선택은 그 세대의 몫이었다는 생각입니다. 그 세대의 선택의 결과로 그 후세대인 우리는 현재 여기에 와 있는 것이라 보구요.
박정희가 없었더라도, 박정희와 같은 개발 독재가 아니더라도 민주적 방식으로 얼마든지 오늘과 같은 산업화의 결과를 낼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공과 과는 동전의 양면이기도 하지만 뫼비우스 띠처럼 연결된 것이지 따로 분리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우리의 산업화와 민주화는 이런 측면에서 이해해야지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구분하여 평가할 문제는 아니라고 보고, 어떤 방식을 취하느냐는 그 세대의 선택이었고, 그 선택에 대해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 시대(세대)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년 전 즈음에 <로얄 어페어>라는 18세기 덴마크를 배경으로 정신 이상자인 국왕 크리스티앙7세를 보좌하는 의사 요한 스트루엔지과 왕비 캐롤라인이 덴마크 민중들을 위해 귀족에 맞서 사회 개혁을 하는 실화를 다룬 영화가 상영된 적이 있지요. 이 영화에서는 왕비 캐롤라인과 의사 스트루엔지는 서로 사랑하며(불륜을 저지르며) 함께 덴마크 개혁에 몰두하지만 결국 실패합니다. 혹자는 두 사람의 불륜이 없었더라면 대중들의 외면도 받지 않았고 개혁도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고 후세에도 좋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두 사람의 불륜이 없었더라면 덴마크의 개혁을 꿈꾸지 않았을 것이고 개혁의 동력도 없어 시도조차 하기 힘들었다고 보지요. <로얄 어페어>와 박정희와 산업화 세대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고 비유하는 것은 오버인지는 모르지만, 불륜 없이 덴마크 개혁을 꿈꾸지도 추진하지도 못했을 것이라 보듯이 개발독재 방식이 아니었더라면 오늘의 산업화도 쉽지 않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너에게 묻는다 - 연탄재를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막순이를 잃어버린 죄책감, 아버지와의 약속이 덕수의 일생을 관통하고 있으며, 그것이 덕수의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인지 모릅니다. 흥남부두에서 막순이를 잃어버린 기억, 파독해서 광부로 멸시받던 기억, 국제시장에서 미군으로부터 ‘기브 미 쵸쿄레또’를 외치며 쵸콜렛을 얻어 먹었던 기억, 베트남에서의 남진에 대한 기억이 덕수로 하여금 넘어지는 순간에도 손녀의 손을 꼭 붙잡고, 동남아에서 온 남녀를 조롱하는 청소년을 혼내며, 베트남에서 소년에게 쵸콜렛을 건내기도 하고 죽음을 무릅쓰고 물에 빠진 소녀를 구출해 데려 나오기도 하며, 부산 사람들이 고향 사람인 나훈아를 좋아해도 자신은 남진이 최고라는 것을 양보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경험과 기억이 자신의 자의식의 근원이었고, 이런 자의식으로 그는 살아갑니다. 그 자의식이 동생을 공부시키기 위해 파독 광부로 가고, 여동생의 결혼비용과 꽃분이네 가게를 유지하기 위해 생사를 걸고 베트남에 들어 갑니다.
이런 덕수의 삶에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고 ‘더 이상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는 시니어들의 문제가 다루어져야 할 마땅한 시점에 아버지 세대의 희생을 강조하는 <국제시장>의 등장은 반동’(허지웅)이라거나 ‘집단 정서를 건드리는 신파 코드는 공감을 부르기보단 호소에 가까운 방식이다. 아버지 세대에 건네는 눈물 어린 위로, 혹은 낙천적인 향수를 통해 그들 세대에 주는 어떤 면죄부’(이은선, 매거진 M 기자), ‘산업화 세대의 정치적 반동성을 탈색한 채 부르는 헌창‘(황진미, 씨네21)이라고 비평하며 정치적 함의가 어떠니 하면서 토가 나온다고 비난하는 인간들은 제 정신인지 모르겠습니다. 젊은 비평가들의 정치의식이 올바르다면 가장 보듬고 보살펴야 할 사람들이 덕수 같은, 덕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고 그들의 삶을 이해해야 하건만, 이들은 (편향된) 정치의식과 진영논리를 앞세워 덕수와 그들의 세대를 반동이라 부르며, 마치 면죄부를 주어야 할 사람은 자신인 것처럼 굴고 있습니다. 이념 과잉, 정치의식 과잉으로 수많은 덕수를 만들어낸 것은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이들에게 또 이념적 편향의 잣대로 재단하는 패악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덕수와 같은 삶들이 자신들의 윗 세대에 없었다면 저렇게 짛고 까불고 설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저런 비평가들이 덕수의 십분의 일만큼의 자의식으로 자신들을 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안도현 시인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의 시 ‘너에게 묻는다’를 이들에게 들려 주고 싶습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밑불 위에
지금은 인정머리 없는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 얹고
아래쪽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 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 받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르기를
덕수의 세대는 파독해서 석탄을 캐고 그 탄처럼 하얗게 자신들을 태우고 재가 되었습니다. 이 비평가들은 지금 이 연탄재를 함부로 차고 있지요. 이들에게 이설아처럼 ‘엄마가 소녀일 때“를 생각해 주는 감성은 바라지 않지만, 시간의 바통이 자신에게 넘어왔음을 아는 최소한의 이성은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르기를 느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기억은 사랑보다 더 슬프다
저는 이문세의 노래를 좋아하지만 이문세의 노래를 작곡하고 가사를 쓴 이영훈을 더 좋아 합니다. 그의 가사는 노랫말이자 시라고 생각하고 어떤 당대의 시인의 시보다 이영훈의 노랫말이 제겐 더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그의 노래 중에 ‘기억이란 사랑보다 더 슬퍼’라는 것이 있는데 저는 이 말을 이해하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 말을 머리로 이해하려 한 것이 잘못이었지요. 저 말은 실존적이며 개인적이라는 것,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들어오는 것이라는 것, 추억(기억)은 다르게 적힐 수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국제시장>은 덕수의 손녀가 ‘기억’이 무엇인지 덕수에게 묻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덕수의 기억도 덕수가 경험했던 것보다 더 슬프고 더 아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기억들은 덕수의 삶을 방향 지우고, 살아가는 몸부림이었고, 삶의 의미였을 것입니다. 이런 덕수의 기억과 그 기억이 꾸려간 한 인간의 삶에 대해 정치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죄악이라고 봅니다.
한 개인의 추억이나 기억에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지 말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