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그날
글쓴이 : 고띠에르
그 일은 내 나이 11살을 코앞에 두었던 어느 겨울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즈음 아버지는 할아버지 혼자 꾸려나가시던 가게에서 물건 받는 일을 돕기 위해 일요일마다 새벽같이 차를 몰고 길을 나서곤 하셨는데 어머니는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하는 일요일을 희생하며 할아버지를 돕는 아버지가 마뜩치는 않았지만 늙으신 할아버지를 도와야 한다는 아버지를 막을 명분도 뚜렷이 없다보니 그저 새벽에 그렇게 다니다가 빙판 길에 사고라도 나면 어쩌냐고 걱정 같은 핀잔을 주는 것 말고는 아버지를 말릴 방도가 달리 없었다.
아버지는 첫주엔 혼자 가서 하고 오셨는데 두번째주는 나보다 두살 위인 형과 함께 다녀왔다.
그날 할아버지를 도우러 나갔던 형과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하루 종일 심심하게 보낸 나는 다음주는 기필코 형과 아버지를 따라 같이 가겠다고 결심했다.
아버지와 형은 잠이 별로 없어서 새벽 4시에도 잘 일어났지만 나는 잠이 많아서 새벽에 일어난다는 게 여간 어렵지 않았지만 자명종 시계에다가 집안에 있는 시계란 시계는 다 동원해서 알람을 맞춰놓은 덕에 간신히 형과 아버지를 따라 나설 수 있었다.
한겨울 새벽 4시는 밤이나 다름없었고 그렇게 어두운 밤 나랑 형 그리고 아버지 셋이서 20년된 96년식 고물 아반테를 타고 집을 나섰다.
형과 내가 뒷자리에서 신나게 떠들고 있으니 자꾸 그렇게 운전 방해하면 둘다 집에 다시 보내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으셨지만 초등학교 남자 아이들의 귀에 그말이 들릴 리는 없었고 나는 자동차 뒷좌석에서 형과 신나게 싸우며 뛰어놀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속도로에 진입하는 초입에서 아버지가 갑자기 무서운 목소리로 나더러 지금 당장 차에서 내리라고 하셨다.
지금 당장 차에서 내려 나 혼자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이었다. 집이 고속도로에서 그리 멀지 않은 위치라 걸어서 돌아가려면 돌아갈 수도 있는 거리였지만 초등학교 3학년의 걸음걸이라면 족히 30분은 걸릴 거리였다.
게다가 한겨울 해가 뜨려면 아직도 먼 그 새벽에 10살 짜리 남자아이 혼자 그 길을 걸어서 돌아가라는 건 너무나 가혹한 일이었다.
나 혼자 떠들고 논 것도 아니고 형도 같이 놀고 있었는데 형은 데려가고 나는 집으로 보내겠다는 아버지의 처사가 도저히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의 무서운 눈을 보니 도저히 거스를 수가 없었다. 결국, 혼자서 억울함과 분함을 토로하며 집으로 가는 수 밖에 없었는데 문득 뒤돌아보니 형은 뒷좌석에 앉아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한번쯤 불쌍하게 내리는 동생을 돌아볼 만도 할텐데 형은 꿈쩍도 않고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혼자 울면서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 전날 오늘이 올 겨울 최고로 추운 날이 될거라는 뉴스를 보았었는데 전혀 춥지가 않았다. 그런데, 겨우 겨우 30분 넘게 걸어서 집으로 돌아와 닫힌 문을 두드렸는데 아무리 두드리고 두드려도 어머니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엄마! 엄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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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 최고 한파가 몰아쳤던 오늘 아침 빙판길 교통사고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22일 도 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 21일 새벽 4시 30분께 xx시 xx면 xx마을 앞에서 96년식 아반테 차량이 눈길에 미끄러져 도로옆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운전자(48세,남)등 2명이 사망하고 10살 난 차남 박모 군만이 불붙은 차량 안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당해 인근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으나 현재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