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14.11.23 9:01 PM
(115.140.xxx.159)
상하수도가 발달하기전 인구가 어느 정도 모이는 곳이라면 어느 도시나 그랬을걸요
베르샤이유도 공중화장실이 없어 귀부인들이 숲에서 볼일을 봤다고 하고 하이힐의 발명은
길바닥에 똥을 밟지않으려고 나온것이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2. ...
'14.11.23 9:07 PM
(180.229.xxx.175)
조선만 특별히 미개하거나 비위생적이었던것 아닐텐데요...
3. 웃긴게....
'14.11.23 9:15 PM
(117.111.xxx.32)
중세유럽의 가난하고 지저분한 생활에 대한 이야기 하면 우리나라 이야기는 절대 안나옴.
반면에..우리나라의 가난하고 지저분한 시절을 이야기하면 유럽도 그랬잖아~~하는 댓글이 반사적으로 달림.ㅎㅎ
4. 한양 거리 기생충 중에 가장 더러웠던 벌레는
'14.11.23 9:22 PM
(110.47.xxx.171)
일베충이었다는 야사가...
5. ....
'14.11.23 9:23 PM
(115.140.xxx.159)
그러게요 왜 웃기죠?
6. 그러게요
'14.11.23 9:33 PM
(110.47.xxx.171)
한양 거리 기생충 중에 가장 더러웠던 벌레는 일베충이었다는 야사가 중요하죠.
7. ㄱㄴ
'14.11.23 9:50 PM
(121.184.xxx.132)
조선의 한양거리가 인분으로 더러웠다는 글인데 유럽얘기 댓글달리니까 생뚱맞긴 하네요.
8. 야설
'14.11.23 9:56 PM
(112.144.xxx.105)
일본에서는 어머니가 아들의 성욕을 해결해준다고.
사실일지는 몰라도. 상담센터에 모자관계인 사람들이 25%나 전화상담했다는 글들이 돌아다님.
일본의 근친상간은 역사도 남다름.
검색해 보시면 나와요.
9. uu
'14.11.23 10:05 PM
(222.118.xxx.140)
위에 국뽕충 2마리가 있는거 같네요.
국뽕충은 일베충 저리가라~ 수준임.
10. ㅇㅇ
'14.11.23 10:07 PM
(112.144.xxx.105)
기생충과 근친상간 중 어느것이 심한 가요?
11. uu
'14.11.23 10:12 PM
(222.118.xxx.140)
근데 국뽕충과 회충 어떤게 더 해로울까요?
12. ㅇㅇ
'14.11.23 10:13 PM
(112.144.xxx.105)
일본인이신가요? 왜 한글을 쓰시나요?
13. uu
'14.11.23 10:15 PM
(222.118.xxx.140)
그런데 국뽕충들은 뭘 먹고 사나요?
14. 비난할것을 비난해라.
'14.11.23 11:13 PM
(59.26.xxx.155)
요즘 흙에서 기생충알이 이렇게 많이 나오는 지역은 위생시설이 열악한 개발도상국의 대도시 => 신동훈 의대
교수란 사람은 의대만 다녔는지 아님 논문중 하나만 발췌한 것인지 역사개념이 없는지 조선시대와
개발도상국을 비교합니까?
그리고 인분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 교수가 하나 간과한 것은 인분을 비료로 하면 기생충
들 자체가 많이 나올수 밖에 없습니다. 유기농만 먹이던 내친구 아들이 기생충 감염이 되어 놀라서
병원갔더니 병원에서 하시는 말씀이 친환경으로 인분을 비료로 해서 유기농 먹던 분들중에 기생충 감염이
많다고 하네요..... 일개 의사도 아는데 서울대의대 교수가 요따위 밖에 말 하지 못하는 것 보니 정신세계
가 정말 웃기는 군요.
솔직히 조선시대는 기생충을 부끄러워 하는게 아니라 나라 팔아먹었던 매국노들이 득실거렸던 것을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기생충....??? 더 무서웠던게 매국노충이었죠..
이완용 부터 시작해서 나라 팔아먹고 그 후손들 검색하면 서울 고위직 한자리씩 하고 이완용 후손들이
재산환수 재판했던 것 더 유명하죠. 게다가 모 유명 판사님께서 재산환수에 적극 동의까지 했었던데...
그런게 더 부끄럽지 않나요?
기생충요? 인분요? 하나도 안부끄러운데요.
고위직 매국노들이 다 정신없이 호위호식해서 먹고 살기 바빠 인분 비료주고 씻을 겨를 없이 허겁지겁
밥먹고 내 할일 하다 기생충 쫌 생겼는데 부끄러워해야하나요?
아직도 이나라에 매국노의 자식들이 버젓이 다니며 어깨에 힘주고 그 자식들 호위호식하고 다니고
온재산 다 팔아 나라 되찾기 위해 처자식남겨두고 만주벌판이나 러시아를 떠돌았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생각이나 해보세요.
15. 비난할것을 비난해라
'14.11.23 11:27 PM
(59.26.xxx.155)
얼마전부터 엉뚱한 것들고 와서 비난해대고 있는데 마침 잘됐네요.....
매국노 인명사전 가지고 와서 하나하나 이름 밝히고 다 함께 부끄러워하고 그 후손들 얼마나 떵떵거리고
사는지 좀 조사해 보는게 어떠세요?
한옥이 불편하니 조선시대 똥 천지니 이런 소리 하지 말고 말입니다. 정말...
그럼 저 역시 님 글에 100% 동의할께요.
16. 비난할것을 비난해라
'14.11.23 11:30 PM
(59.26.xxx.155)
이완용을 아십니까?
암울한 일제강점기시절, 민족이 단결해 일제에 투쟁해도 모자르던 그 시절
민족 안에서부터 갉아먹어 불구로 만들어 버린 그 더러운 매국노, 이완용
그의 후손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있을까요?
다 잡혀서 힘들게 살고 있을까요? 부귀명예를 누리며 살고 있을까요?
"잘 살고 있다 합니다"
지금부터 더러운 매국노 이완용과 그의 후손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완용의 후손들은 한국 각계 정상급세력으로 부귀를 누리고 있는게 보이십니까?
특히나 이완용의 손자인 이병도는 친일실증사학사로 자기들 즉, 친일세력후손에 대한 비난을 모면할 목적으로 역사를
일본입장에서 유리한데로 왜곡시키는데 앞잡이 역할을 했으며 문교부장관, 국정자문위원 등 화려하게 살다 뒤졌습니다.
이병무세력의 후계자들이 '뉴라이트'세력이라 할 수 있겠죠 아마
그의 손자, 이장무 또한 이들을 지지하고 있고요
이장무의 동생, 이건무 또한 전 문화재청장의 스펙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합니다.
이완용 후손 외에도 다양한 친일파들의 후손 대부분 호사스러운 생활을 누리고 있다 합니다.
독립유공자 유족 6,283명 중 직업이 없는 사람이 60%를 넘는다고 합니다.
이들의 후손은 봉급생활자가 10%도 안 되고, 중졸 이하의 학력자 55%를 넘으며,
유공자 후손의 두 집 중 한 집에 중병환자가 있고
직업이 있다는 40% 중 가장 많이 종사하는 직종이 경비원이라 합니다.
그 중 일부는 친일파 후손에 밀려 외국으로 피신해 살고 있구요...
17. ...
'14.11.23 11:35 PM
(175.113.xxx.63)
안타깝네요.. 친일파가 잘사는현실..
18. ㅇㅇ
'14.11.23 11:40 PM
(58.236.xxx.101)
그래도 우리나란 깨끗한 편 아니였나요? 화장실이 있었으니까.
프랑스는 화장실이란 개념이 없었다면서요.
19. 네가 존경해마다않는
'14.11.23 11:48 PM
(27.35.xxx.143)
많은 문물이 태어난 그 서양, 특히 프랑스는 더했단다..곳곳에 있는 요강들, 머리 한번하면 몇달을 머리를 못감아 이가 생기는건 뭐 그렇다쳐도 아예 위생관념자체가 부족해서 목욕을 잘안했음. 향수가 발전한데엔 다 이유가 있지. 시기를 갖고 뭐라한다면 어쩔수없지만..
20. 비난할것을 비난해라
'14.11.23 11:57 PM
(59.26.xxx.155)
총독부 조사에 따르면 이완용의 재산은 1925년에 3백만원(현재 가치로 보면 5~6백억원)으로 파악되어 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파악된 재산만 3백만원이라는 이야기죠.) 당시 조선 최고의 재산가는 민영휘로, 이 작자는 무려 6천만원의 재산가(현재 가치로 환산 포기...)로 파악되었습니다. 이완용은 민영휘 다음의 부자였습니다.
이완용의 재산이 드러난 것은 1911년 시대일보에서 조선 자산가를 조사했을 때 50만원 이상의 자산가 32인 중 1인으로 그의 이름이 올랐을 때 부터입니다. 일단 조선에서 32 순번 내에 들어가는 재산가였다는 점을 알 수 있겠죠.
그리고 1925년 5월 7일 동아일보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립니다. 이완용 일가가 경성부에 납부해야 하는 학교비를 내지 않았다는 이야기였지요. 안 낸 이유는 재산이 과다평가되어 학교비가 과도하게 요구되었다는 이유였습니다
21. 반전
'14.11.24 2:18 AM
(211.40.xxx.22)
베르샤유 궁전은 화장실이 없었던게 아니라 원래 있었는데 나중에 없어진거랍니다.
화장실도 배수시설까지 갖춘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다고 하네요.
여기서 또 하나의 반전은 우리나라 대궐에는 화장실이 없었다는거..
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m8.asp?pk_no=980010
김응종 충남대 사학과 교수
베르사유 궁전과 관련된 괴담 가운데 하나는 "베르사유 궁전에는 화장실이 없다"는 것이다. 그 거대하고 화려한 궁전에 화장실이 없어서 왕은 요강을 사용했고, 다른 궁인들은 궁전의 후미진 숲이나 뜰에서 적당히 볼일을 보았으니, 바닥은 인분으로 질퍽거렸고, 냄새가 진동했다는 것이다. 귀족부인들이 입었던 품이 넓고 긴 드레스는 사실 볼일을 보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옷이고, 하이힐도 더러운 바닥을 무사히 지나가기 위해서 고안된 신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베르사유 성은 숲, 운하, 정원, 분수 등의 총 면적이 약 2400만 평, 궁전의 면적은 약 2만 평에 달하는 거대한 공간이다. 궁전의 방은 약 2000개였으며, 500여 명의 귀족과 4000여 명의 하인이 거주했다. 마사, 개 사육장, 온실, 정구장, 동물원, 관사, 창고 등 수많은 부속건물들에 살던 사람들을 합하면 아마도 만 명 정도가 베르사유 궁전에서 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다가 성 밖 일반 주민수를 포함하면 1789년 혁명 직전 도시 베르사유의 인구는 약 7만 명이었다. 베르사유는 국왕이 상주하는 국가의 수도였다.
우리의 궁전은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차단된 '구중궁궐'이었던 반면에, 베르사유 궁전은 일반인에게 개방된 공간이었다. 국왕의 몸과 생활 자체가 기본적으로 '공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베르사유 궁전의 공식 처소, 부속성당, 회랑, 안뜰, 정원들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었다. 베르사유 궁전은 이미 그때부터 유명한 관광지였고, 방문객들로 넘쳐났다.
국왕에게 있어서 베르사유 궁전은 귀족들을 길들이는 학교였다. 과거에 귀족들은 지방의 영지에서 제멋대로 살았으나 이제는 국왕에게 의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그리하여 지방 살림을 청산하고 베르사유 궁전에 들어와 사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갑갑한 궁전에 살면서 이제는 전처럼 싸우지도 않고, 침을 뱉지도 않고, 아무데서나 용변을 보지도 않고, 세련되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 예법을 익힌 귀족들은 태양처럼 빛나는 국왕에게 충성을 다하게 되니, 베르사유 궁전에서의 파티는 그냥 노는 것이 아니라 고도의 정치적 활동이었던 것이다.
왕정을 무너뜨린 프랑스혁명으로 베르사유 궁전은 서리를 맞았다. 성의 크기가 10분의 1로 줄어 250만 평이 되었고, 온갖 화려한 가구들은 파괴되거나 약탈되었다. 19세기에는 궁전을 박물관으로 변경하기 위한 대대적인 공간개조작업이 이루어졌다. 이때 화장실이 없어졌다. 다시 말해 화장실은 원래는 있었던 것이다. 옛 평면도를 살펴보면 화장실이 체계적으로 갖추어져 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베르사유 궁전에는 화장실이 없다는 신화가 생겨난 것인가? 그것은 절대왕정을 무너뜨린 사람들이 절대왕정의 웅장함과 화려함이 얼마나 표피적이고 기만적인가를 고발하기 위해 이야기를 꾸며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허물기는 민중의 구미에 맞았기 때문에 계속 퍼져나가고 전승되었다. 또 그것은 서양문명에 주눅이 들어 있던 우리에게는 그들의 문명과 문화를 깎아내리고, 졸부적인 야만성을 조롱할 수 있는 호재로 작용하였기 때문에 쉽게 기억되었다. 베르사유 궁전의 욕실은 면제품을 넣는 벽장과 2개의 욕조, 더운물과 찬물, 하수관 등을 갖추고 있었으며, 대리석 바닥은 고인 물을 흘려보내기 위해 지하배수로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베르사유 궁전에 화장실이 있었는지 없었는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이념적 대립이 심각해지고, '이익'이 절대적인 가치가 되면서 온갖 괴담이 생산되고 있다. 대중들은 괴담을 즐기면서 기존의 질서와 권위를 무너뜨리는 일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신봉하는 괴담이 사실이 아니고 거짓이라면 그들은 그 거짓을 만들어낸 사람들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만인이 만인을 속이고 있는 이 시대에 자기의 이성과 주관으로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사실인가 아닌가부터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베르사유 궁전에는 화장실이 있었다. 그것도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다. 베르사유 궁전에는 요강밖에 없었다거나 뜰이나 옷이나 모두가 화장실 대용이었다고 비웃는다거나, 우리의 뒷간은 자연친화적인 화장실이라고 자랑하는 것은 우물안 개구리나 하는 바보짓이다.
22. ???
'14.11.24 2:34 AM
(118.34.xxx.203)
조선의 한양 거리가 지저분 하다는글에 느닷없이 베르사유 화장실 댓글 달리고, 일본근친상간 댓글 달리고 이완용이가 등장하고...
이해 안됨.
23. 또 다른 야기
'14.11.24 10:08 AM
(112.144.xxx.105)
일본왕은 근친상간으로 태어났다~
24. 반전님.. 똑같은 글 다시 반복하게 하지 마세요...
'14.11.24 10:28 AM
(119.203.xxx.172)
얼마전부터 이런 글 들고 와서 자꾸 물 흐려 놓는데.... 새로운 글 좀 들고 오세요.
기사 출처 찾아가보니 최근 글도 아니고 2012년 2년이나 지난 글 굳이 가져와서 요따위 글 쓰는거 웃기지도
않아요.
저 역시 화장실이 있다 없다가 중요한게 아니라 화장실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쓸 수 있었느냐가 중요하지
않나요? 한명을 위한 수세식 화장실 (나중에는 무용지물이 된듯..) 한명을 위한 화장실 (그냥 우리나라 매화
틀 같은 것 가져다 놓은 공간)
역사적으로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다는 것만을 증명하고 싶다면 있었다가 맞지만 수세식 화장실이 우리가
생각하듯 늘 이용가능하고 쓸 수 있었다는 것고 착각(?) 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여전히 베르사이유 궁전의
정원은 엉망이었고 루이 14세의 배변틀은 26개나 될 정도로 많았고 귀부인들 역시 배변통을 가지고 다녔다
는 것은 사실입니다.우리 뒷간이 자연친화적이라고 자랑할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욕할 정도도 아닙니다.
님 덕분에 여전히 공부 열심히 하고 있는 1인이고요...
똑같은 글 자꾸 판박이처럼 찍지 마시고 다른 역사 좀 파헤쳐봅시다.
매국노 후손들이 어디서 활동하는지 같은 참신한 것 좀 파헤져주세요 ^...........^
25. 제대로 알자
'20.11.26 9:21 PM
(49.174.xxx.14)
-
삭제된댓글
프랑스 사람들은 좋은건물에 냄새나는 건물을 지을 수 없다고 하
여
화장실을 아예 만들지 않았다
요강 사용이 당시의 문화로 베르사유 궁전이 그 대표이다
파리에서월드컵 할때 화장실이 없어 고생도 하였다는 기사도 있고
상제리제 거리가 있는 개선문 지하통로는 오줌 냄새로 유명하다
베르사유 궁전에 변소가 없어 남자여자들이 아무 곳이나 용변을
보았다 보다 못한 정원사는 여기는 안되겠다 싶은 장소에'에티겟'
이라는 팻말을 써 붙였다
'에티겟'이라는 뜻은 대변금지의 뜻으로 변만 잘 가리면 에티겟
(예의)을 잘 지켰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사방에 널린 것이 대변이여서 가장 적게 피해를 입기 위해'하이힐
'신발이 생겼다고 한다
하루밤 사이에 요강에 일을 보고 모아 두었던 것을 창밖으로 버렸
기 때문에 가끔 봉변을 당할수 있었다
때문에 남자는 두꺼운 외투와 목 사이로 오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중절모 모양의 모자를 쓰고 건물 쪽으로 여자는 바깥쪽으로 걷는
습관이 되기도 하였다
영국에서는 인분을 모아 밤에 강에 버렸는데 이 사람을 '나이트맨
'이라고 불렀다
베르사유 궁전 뒷뜰 정원은 남녀가 서로 함계 일을 보는 장소가
되었다
또 냄새가 독하여 이를 없애기 위해 향수가 발달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베르사유 궁전에 화장실이 없는 것을 풍자한 그림도 있다)
26. 제대로 알자
'20.11.26 9:22 PM
(49.174.xxx.14)
-
삭제된댓글
궁궐에 화장실있음
내전에서 떨어진 곳인 외전에 신하들만이 사용하는 화장실이 있었
다
경북궁에는 28곳, 총 51.5간이아 초대형 화장실인'서각'이 있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