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철은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해철이가 세상을 떠난지 벌서 3주가 되었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고 가슴이 먹먹하다"라는 글을 게재했다.
신대철은 "한 2년 전 일이다. 나는 쏠로앨범을 만들고 싶었다. 기타 연주곡 앨범, 누군가에게 프로듀서를 맡기는 것에 대해 별로 고민하지 않았다. 해철이 만한 적임자가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신대철은 이어 "그에게 전화를 해서 만나자고 했다. 그의 작업실에 가서 이런저런 애기를 나눴다. 그 후 며칠동안 그의 작업실을 오가며 작업을 했다. 별로 어렵지도 않았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스케치하는 일이었다"라고 전했다.
또한 "한번은 그가 만든 반주트랙에 맞춰서 한 20여분 정도 손가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즉흥연주를 했다. 며칠 후에 갔더니 '형, 이것 좀 들어봐'하며 뭔가를 들려줬다. 나는 '음. 이거 누가 연주한건데?'라고 물으니 '형이 한거야', '으잉?' 그는 내가 연주한 트랙을 이렇게 저렇게 편집해서 근사한 연주곡 하나를 완성해냈다. 그는 진짜 마법사 같은 능력을 보여줬다. 내가 아닌 나를 본 듯한"이라고 밝혔다.
신대철은 "50년대 미국 서부영화의 고전 'OK 목장의 전투' 이 영화 이전에는 영화의 편집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전설적인 편집기사 (이름이 생각 안남) 하여간 그 양반이 전권을 쥐고 편집에 임했다. 영화가 완성된 후 시사회에서 감독인 존 스터지스는 '오! 진정 이 영화가 내가 찍은 영화란 말인가?'라며 감탄했다는.. 마치 그런 느낌"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후 어느날 작업실에 가니 해철이 나에게 기타를 보여줬다. 깁슨기타였다. 컨트리 기타의 거장 챗 앳킨스 모델이다. 그 기타를 보여주며 소리가 어떠냐고 물어본다. 당연 좋은 기타였다. 아름다운 바디라인에 피에조픽업의 청아하고 따뜻한 소리가 일품이다. 내가 감탄하며 좋은 기타라고 말하자 그가 하는 말이 '그거 형이 가져' 하는 것이다. '음? 그래도 어떻게 이 기타를 나 기타 많으니까 괜찮아' 사양했지만 그가 직접 기타를 들고 내 차의 트렁크에 넣더니 문을 쿵 닫는다. 얼마 전 기타 케이스를 열어봤다. 기타를 와락 껴안고 울었다. 시간이 흐르면 이것도 추억이겠지. 그래도 그가 보고싶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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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3주가 지났네요.. 점점 무뎌지면서 조금씩 잊혀지겠지요..
마왕..생각보다 많이 따뜻했던 사람 같아요.
이곳저곳에서 그에게 받았던 사랑을 기억하고 애도하고 있으니 말이예요
효순이 미순이 장갑차 사건때 희생된 아이들 애도하며 sofa 개정해야한다며 시위앞장서고
영어는 필요한 사람만 배우게 하라며 이러바엔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라며 역설하는것 등
굳이 사회적인 문제가 아니더라도
인생의 바닥으로 치닫던 김태원에게 당시 잘나가고 있던 마왕은 인터뷰만 할라치면 제일 존경하는 스승이라고 추켜세워
힘을주고, 사고 치고 재기에 어려워하는 현진영에게 아낌없이 격려해주며 헤어질때 차비라도 하라며 쥐어주고
연예가중계를 진행하던 신현준을 울게 만들고
힘없는 인디밴들들을 위해 목소리 높여주고 먹는거챙겨주며 좋은곳에서 콘서트할수 있도록 해준 고마운 사람..
김부선씨에게 용감한일 한다며 격려해주던 마왕..
어디 이것뿐이겠어요만...
라디오 고스로 마음따뜻한 마음으로 남을 치유해줬던
음악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너무 존경합니다..
앞에 고자를 붙이기가 싫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