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정은씨가 드디어 논란이 된 발언에 대해 입을 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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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말하자면, 스물 여덟 살 때쯤 했던, 내 아련한 소개팅의 기억 하나가 떠올랐던 하루였다.
삼성 어디어디 회사 연구소에 다닌다는, 키도 크고 성격도 좋다던 한 남자를 소개받았던 그날 저녁,
한참 이야기를 하다보니 마침 레스토랑 한 구석에 내가 일하고 있는 <코스모폴리탄>이 놓여있었고,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더 자세히 알려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의기양양하게 책을 펼쳐 보여주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내 눈앞에 떡하니 펼쳐진 것은 하필이면 그 달에 내가 썼던 섹스 기사 중 하나였고,
그 때부터였다고 기억한다. 제법 좋았던 분위기가 꽤나 어색하고 밋밋하게 흘러가기 시작한 것은.
그리고 단지 나의 19금 기사 때문만은 아니었을 거라고도 생각해보긴 하지만,
그 남자는 결국 나에게 애프터 신청을 하지 않았었다.
사회 문제를 심도깊게 다룬 기사를 보여주었다면 어땠을까?
열심히 발로 뛰어 취재했던 의학기사도 많이 썼었는데 왜 하필 그 기사가 나와서…
라고도 생각해 보았지만, 나는 이내 그런 생각이 부질없다는 것을 알았다.
행복한 육체의 소통, 즉 행복한 섹스를 하는 것은 인간의 삶에 있어 정말 중요한 일이고,
그것을 위해 기자답게 열심히 취재를 하고 좋은 기사를 써서 독자와 소통하는 일은
스스로 감출 이유가 전혀 없는, 노동하는 나로서의 정체성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인해 나를 부담스럽다고 생각하는 남자는 나 역시 만날 생각이 없었고,
나는 섹스에 대해 글을 쓰는 이 특별하고 인간적인 직업을 택할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그로부터 다시 7년이 지나기까지 총 10년간 코스모폴리탄의 기자로 일하면서
미국판 코스모폴리탄 섹스 기사에 착안해 한국 실정에 맞춰 재 취재한뒤 기사를 쓰기도 하고,
지금 한국의 성의식에 대해 다루는 기획기사를 몇달씩 준비해 하나의 컬럼으로 만들기도 하며,
매년 멋진 몸을 가진 일반인 남성들을 뽑아서 섹시한 컨셉의 화보를 만드는 일을 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떻게 소통하고, 가장 내밀하고 은밀한 몸의 소통도 나답게 할 것인가를 말하는 기사를 통해
코스모의 모토인 ‘Fun, Fearless, Female’을 지향하는 일은
직업인으로서의 내가 선택한 일이면서, 동시에 여자로서의 나를 조금씩 변화시켜 갔다.
또한 그런 기사들을 통해 남자 에게 선택받고 싶어 안달난 삶이 아니라
먼저 내 행복의 기준을 세우고 그에 합당한 남자를 선택하는 삶에 대해 말하는 일은 그 자체로 벅찬 일이었다.
2009년부터 몇 권의 연애서를 낼 수 있었던 것도, JTBC<마녀사냥>에 출연하게 된 것도
오랫동안 코스모폴리탄이라는 매체에서 이런 글을 쓰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장기하 씨와 첫 만남은 지난 5월, 기하 씨가 진행하는 <장기하의 대단한 라디오>라는 프로그램에서였다.
작가님은 <마녀사냥>을 재밌게 본 기하 씨가 초대석 겸 연애상담 코너에 나와주셨으면 한다고 말을 전했다.
그의 음악을 좋아했던 나는 당연히 기쁜 마음으로 생방송에 참여했고, 생방을 잘 마쳤고,
이후 매월 한 번 고정 게스트로 참여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마녀사냥>에 그가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나는 ‘컬럼니스트로서’ 그를 평하길, 여자로 하여금 먼저 비집고 들어갈 틈을 주는,
다가가 보고 싶다는 마음을 준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쉬운 남자’라는 표현을 썼다.
무대 위에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보여주는 가수 장기하는,
아담한 라디오 부스 안에서는 사려깊고 겸손한 말들로 게스트가 편안히 이야기하도록 도와주는,
무척 훌륭한 ‘청자형 진행자’였기 때문이다.
“그 여자 되게 쉬운 여자야”라는 말이 ‘남자에게 몸을 쉽게 허락하는 여자야’라는 비하의 의도를 담고 있으니
방송을 제대로 보지 않은 이들에겐 ‘쉬운’이란 표현이 자칫 오해를 불러 일으킬 소지가 있었고,
“장기하는 쉬운 남자에요”라고 말한 그 자체만으로
“곽정은, 장기하에게 작업하고 싶어”라는 말같지도 않은 헤드라인이 인터넷 신문에 뜨기도 했지만,
그냥 웃어 넘겼다. 클릭수 높이는 것이 유일한 목표인 사람들에게, 말을 해서 무엇할까.
SBS <매직아이>에 출연해 장기하 씨를 두고 ‘침대 위가 궁금한 남자’라고 한 부분이 편집없이 방영된다면,
비난 발언이 생겨날 것과 뭇 인터넷 신문들이 경쟁적으로 기사를 써 올리는 상황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여성이, 그것도 공중파 프로그램에서, 감히 성적 욕망과 관련한 발언을, 한 멋진 남성에게 하는 일이란
지금까지 듣도보도 못한 일이었을 것이니까. 이보다 더 좋은 먹잇감이 또 어디있을까.
내가 장기하 씨에 대해 ‘침대 위가 궁금한 남자’라고 말한 것은
무대 위에서 ‘노래하며 춤추는 육체’로서의 장기하라는 남자와,
작은 방에서 ‘고요히 조심스레 대화하는 영혼’으로서의 장기하라는 남자를 모두 접한 뒤에
섹스 컬럼니스트로서의 내가 그의 섹시한 매력에 대해 보내고 싶었던 100%짜리의 긍정적 찬사였다.
단단한 팔뚝 위의 셔츠를 걷어올린 채 멋지게 후진을 하는 남자를 보며 어떤 여자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가슴골이 은근하게 보이는 옷을 입은 여자가 자신을 보고 웃어줄 때 뭇 남자들이 욕망하는 것처럼,
‘침대 위가 궁금해지게 만드는 수컷’이 된다는 건, ‘한 번 자보고 싶은 암컷’이 된다는 건
다만 그 표현이 다를 뿐, 너나 할 것없이 되고 싶어하는 ‘섹시함’을 가리키는 다른 표현이다.
그것은 더러운 일도 아니고, 감히 상상해서는 안되는 일도 아닌
섹스하는 인간으로서 자연스럽게 갖는 감정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섹스가 더러운 일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 이치로 말이다.
‘섹시한 남자 장기하’라고 말하면 올바른 표현이고,
‘침대 위가 궁금한 남자 장기하’라고 말하면 무조건 옳지 못한 표현인가?
발화의 맥락을 무시한 채 무조건 성희롱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사람들에게야말로 묻고 싶다.
앞뒤 안가리고 한 사람의 직업적 발언을 폄하한 것이야말로 ‘희롱’이 아니냐고.
자 이제 ‘성희롱’의 의미를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
‘이성에게 상대편의 의사와 상관없이 성적으로 수치심을 주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일.’
그러므로 내가 아무리 긍정적 찬사를 의도했다고 해도
그 찬사를 들은 당사자가 불쾌해 했다면 그 행동은 백 번이라도 사과해야 마땅하다.
기하 씨가 수치심을 느꼈다고 생각한 부분이 있다면 나는 무조건 용서를 빌어야 할 것이다.
다만 그 날과 그 이후의 일들에 대해 내가 말할 수 있는 ‘팩트’는 이것이다.
기하 씨는 나의 그 발언에 대해 유쾌하게 받아들였으며,
녹화 다음날 기하 씨가 고맙게도 자신의 신보 발매 기념 서울투어 콘서트 현장에 초대를 해주어,
나는 남자친구와 함께 그의 공연을 즐기고 돌아왔다는 것.
분명히 불쾌했을텐데 녹화 현장이니까 차마 말을 못했을 거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자기 표현능력이 차고도 넘치는 한 성인에 대한 평가절하성 발언이 될 것이고,
자신을 성희롱했다고 생각하는 이를 자신의 콘서트에 초대하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억지이다.
그리고 어제 저녁 나는 그에게 연락을 해,
기하 씨가 전혀 불쾌한 느낌을 받지 않았고, 다음날 공연을 초대해주었다는 이야기를 오픈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유명인인 그에 대해 내가 다시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다만 나의 일이 아니라 그의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을 흔쾌히 허락했고, 그래서 이 글을 올릴 수 있었음을 밝혀둔다.
이후에라도 만약 ‘곰곰 생각해보니 그 때 불쾌했다’고 그가 이야기한다면 나는 사과할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가 문제없다고 하는 일에 대해
단지 성적인 욕망에 대해 발언했다는 이유로 나와 내 일을 매도하고 싶은 사람에게 조금도 사과할 생각이 없다.
쟌다르크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나는 다만 나 자신을 지킬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성적인 금기에 억눌려 건강하게 자신의 욕구를 분출하는 경험을 해보지 못한 사회에서
섹슈얼한 소재를 가지고 글을 쓰고 말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이성적이고 무논리한 마녀사냥의 피해자가 될 생각도 없다.
성희롱 여부와는 별개로, 공중파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수위의 발언이었다는 지적이 있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생방송이 아니라 방영 일주일 전에 한 녹화였고,
이것이 공중파에 적절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판단해 셀프 검열을 하는 것은 온전히 제작진의 몫으로 존재한다.
<마녀사냥>녹화장에서 나도 당황할 정도의 수위를 가진 이야기나 표현들이 테이블 위에서 오가지만,
<마녀사냥>이란 프로그램이 대다수 시청자들에게 유쾌한 프로그램으로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은
적절한 편집의 선을 지킨 제작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건강한 욕구의 분출을 경험하지 못한 사회에서 산다는 것은 모두에게 비극이다.
아무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을 말만 해야 하는 사회에 미래 따윈 없다.
엄숙주의 속에서 찾을 수 있는 행복이 크지 않다.
그리고 다만 나는 내가 옳다고 믿는 일을 즐겁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