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한텐 말못하고 익명을 빌어 여기서 얘기해요.
제겐 너무 착하고 고마운 초3 아들이 있어요.
7시쯤 습관적으로 깨요. 벌떡 일어나 씻고 밥먹고 시간남으면 책읽다 학교가요. 밥투정도 하지않고 혼자 후다닥 준비해서 큰소리로 "다녀오겠습니다~" 소리치며 뛰어나가요.
휴일아침 모처럼 늦잠자는 엄마옆에서 책 읽으며 엄마 깨길 기다리다 엄마가 눈을 뜨면 "커피타줄까?"하며 믹스커피 타서 갖다줘요.
학교갔다 오는길에 길가에 예쁜 들꽃을 보면 엄마에게 주겠다고 꺾어다줘요.
보통은 학교에서 오기전 제가 항상 집에서 기다리는데, 제가 아이보다 늦게 온 날은 싱크대에 담긴 컵도 설겆이해놓고 엄마 기다려요.
학교준비 숙제 혼자 다해요. 시야할것 있으면 며칠전 미리 얘기해요. 준비끝날때까지 엄마 까먹지않게 지속적으로. 그래서 제가 너무 마음놓고 믿고있다가 밤9시에 잊은 학교준비물이 생각나서 급하게 준비한적이 있는데, 아이가 저에게 "잠시만요, OO이 엄마에게 사과하고 가실께요"하고 얘기하더라구요.
학원은 안다니고 집에서 영수 워크북을 푸는데 혼자서 약속한 쪽수만큼 알아서 해요. 모르는것만 물어보고 집중해서 단시간에 마치고 놀아요. 시험준비도 문제집 사주면 혼자서해요. 오늘 몇장 풀까 둘이 의논하면 혼자 풀어요. 아직 어리지만 성적도 좋고 영어실력도 학원 오래다닌 아이들만큼 좋아요. 피아노 숙제도 혼자 알아서 해요. 태권도 갈 시간이면 알아서 옷입고 가요.
떼쓰는 일도 없이 찬찬히 설명하면 대부분 알아들어요. 아이가 진짜 원하는게 있으면 엄마아빠가 들어준다는 믿음이 있어요. TV는 거의 보지않고 주말에 개콘 런닝맨 보고 평일에 가끔 재능방송 조금봐요. 평소 인터넷으로 궁금한거 검색하거나 영어컨텐츠 찾아봐요.
남자아이답지 않게 감성적이어서
"엄마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긴 하냐?"하고 물으면 "모르겠어. 너무 큰것 같아서. "하고 대답해요.
"엄마, 사람 마음은 실같애. 바라는 마음이 통하면 연결되고, 끊어지면 마음아프고 절망이야"
거실에 벌레약을 뿌린뒤 해로울까 걱정된다고 식탁에서 책읽어라고 했더니, "벌레약은 괜찮은데 엄마가 내 걱정해주셔서 좋아요."라고 대답해요.
맛있는 음식을 해주면 "너무 맛있어서 뱃속에서 무지개빛으로 산산히 부서지는 느낌이야"하고 얘기해요
혼낼일도 별로 없지만 조금만 큰소리로 얘기해도 눈물이 핑도는 눈으로 쳐다봐서 혼내지도 못해요.
항상 웃고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인사하는 아이.
동네 어른들이나 선생님들로부터 항상 칭찬 받는 아이지만, 친구들과 잘 못어울리는 것 같아 걱정이예요.
언젠가 아이가 슬픈 표정으로 "친절을 베풀면 되돌아온다던데 아닌것 같아. 나는 친절하게 굴어도 다른 아이들은 나한테 친절하지 않아. 내 물건만 자꾸 빌려가고 내가 하기 싫은 일을 자꾸 하라고 해."라고 말했어요. 저는 "친절은 좋은 거지만 모든 사람에게 친절할 필요도 없고 니가 하기 싫은 일은 안해도 돼"라고 얘기해줬어요. 상대아이를 혼낼 정도의 큰일은 아닌것같아서 제가 나서진 않았구요.
그리고 가장 큰 걱정은 학교에서 항상 혼자 책을 읽고 있어요.
반에 제아이 포함 2명빼곤 다 운동장에 나가서 뛰어노는데 제 아이는 뛰어노는것보다는 책이 좋대요.
언젠가는 "엄마, 유명한 과학자를 보면 몸이 불편하거나 실내활동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던데 나도 좋은 과학자가 될수 있겠네?"하고 얘기해요. 과학을 좋아하거든요.
거친 친구들이 있으면 너무 불안해하길래 성격이 잘 맞는 친구 사겨볼까했더니
"엄마 성격이 잘 맞는다는건 성격이 비슷하다는거야? 퍼즐처럼 잘 들어맞는다는거야?, 달팽이처럼 남녀따로 없고 다 똑같은 모습 같은 성격이면 남녀차별 인종차별도 없고 다 잘 지낼 수 있을텐데..."하고 얘기해요.
친구를 몇번 초대해봤는데, 대부분의 경우 또래 남자아이들은 대화하기보다는 뛰어다니고 장난감 가지고 놀고 하더라구요. 저희 애는 그냥 따로 혼자 책보구요. 보드게임을 하면서 수다떨던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전학갔어요.
아이가 어릴때는 고맙고 예쁘기만 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짠하고 염려스러운 마음이 들어요.
아이가 위트있던 농담도 잘 하던 아이였는데, 3학년이 된 올해는 친구들로부터 인정을 못받는다는 얘기를 많이 하고 움추려든 모습이 많이 보여요. 감성적인 면은 장점일수도 있는데, 남자아이들 틈바구니에서는 힘들까요?
믿고 지켜보는 것 말고, 엄마가 뭘 해줄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