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복귀하면서 취한 일련의 행동들은 애초에 '탈신비주의 전략'이라고 통칭할 수 있었다. 아마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포하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매체들이 그렇게 평가를 내렸다. 그런데 서태지가 추구한 전략은 매우 전형적이었다. 너무 전형적이었기 때문에 비록 탈신비주의 전략이라는 긍정적 모드가 전부일수 없음을 숨길 수 없었다. 모험적 시도를 통한 혁신이라기보다는 마켓의 확장 유지라는 측면이 더 도드라졌다.
그의 복귀 첫 포문은 아이유였다. 그는 국민 여동생 가수로 이미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아이유와 콜라보레이션이라는 이름으로 '소격동'을 발표했다. 소격동이라는 공간을 통해 자신의 유년과 아픈 현대사를 교차해냈다. 여기에 ‘크리스말로윈’을 통해 무상복지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양쪽을 모두 자신의 마켓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을 취한 셈이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상대적으로 90년대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음악 아이콘 김동률에게 밀렸다. 김동률은 방송 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도 2주 동안 음원 차트 1위를 수성했고, 심지어 지상파의 가요 순위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했다.
서태지는 가장 시청률이 잘 나온다는 '해피투게더3'에 가장 잘 나가는 이 시대 최고의 예능인 유느님, 유재석과 부각되기를 원했다. 예능 프로그램에 10여년 만에 출연한다는 측면에서 대단히 의미와 가치가 평가되었지만, 떨어지는 시청률을 막지 못했다. 즉, 시청률 반등 효과는 없었다.
요즘 잘 나간다는 손석희 진행의 'JTBC 뉴스룸'에 출연해 단독 인터뷰를 차지했지만 예상보다 크게 화제가 되지는 못했다. 그는 이렇게 많은 방송 출연을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밝히겠다는 듯이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때때로 포털 상위권에 랭크되었다. 그러나 이미지가 상승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문화대통령이라는 호칭에 대한 기대감 때문일까.
일부에서는 서태지에게 붙여진 문화대통령이라는 호칭을 거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서태지 스스로가 부여한 것도 아니며 그가 원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왜 이런 말이 나올까. 문화대통령이라는 단어가 그를 권력자, 혹은 군림하는 자라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겠다. 맞는 이야기다. 그는 군림하는 자나 권력자가 아니다. 또한 한때 그런 지위에 있을 만큼 영향력이 강했지만 그 지위를 영원히 유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치인도 그렇고 문화예술인도 마찬가지다. 권불십년이오, 화무십일홍이다.
하지만 짚어야 하는 것은 이번에 그가 구사한 전략이 이미 올드 한 즉 낡은 방식이었다는 점이다. 주로 잘 나간다는, 1등 한다는 사람과 매체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방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서태지에게 기대하는 것은 언제나 혁신과 도전인지 몰랐다. 파격을 통해 기존의 답습적인 질서를 깨어줄 수 있는 문화 아이콘이라는 인식이 있다. 그가 문화대통령은 더 이상 아닐지라도 그러한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자체를 폄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그의 복귀는 물량 위주의 파상공세였다는 점에서 재고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자연스럽다기보다는 무엇보다 뭔가 만회를 하기 위해 끙끙거리며 애를 쓰고 있다는 인상 때문에 안스럽기도 하다. 5년만의 앨범 발표를 대대적으로 하게 된 것은 이지아라는 인물과 떼어놓을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러나 여심들의 마음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인 듯싶다.
차라리 작은 소극장을 중심으로 팬과 호흡하는 방식을 취했다면, 그는 오히려 문화대통령으로 확고했을지 모른다. 결국 그의 태생적인 본질도 미디어 플레이였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현재의 아이돌 그룹이 갖는 방송 미디어 중심의 한계가 서태지에서 비롯되지 않았는지 고찰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서태지와 아이돌로 인해 한국형 연예매니지먼트가 본격화되었기 때문이다. 씨를 뿌린 자가 거두어야할 의무와 운명이 앞에 있는 듯싶다.
글/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동아방송예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