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내미 피아노 진도 관련해서 고민하다가 문의 드립니다. 저는 어릴 때 엄마와 선생님의 강요로 정말 치기 싫었던 피아노를 겨우 체르니30번까지 치고 그 후로 뒤도 안돌아 본 케이스라, 피아노에 대한 기억이 "정말 치기 싫었다" 외에는 거의 없습니다(바이엘, 체르니 이외에 무슨 책들을 배웠는지도 전혀 기억이 안납니다.ㅠㅠ)
6세(1월생)인 제 딸은 지난해 9월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여러 사정으로 5세였던 지난해에 다니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집에 있게 됐는데, 아이가 하도 심심해 해서 집앞 피아노학원(어드벤처로 가르치는 곳입니다)에 주3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나이라 그냥 바깥바람이라도 쐬라고 보낸 거였고, 책을 피아노 학원에 두고 다녔기 때문에 뭘 배우는지도 사실 저는 잘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올해 초에 딸이 학원에 가는 게 싫다고 집에서 배우고 싶다고 하더군요. 피아노는 치고 싶은데, 학원에 가는 게 싫다고요. 그래서 올해 3월에 시댁에 있던 오래된 피아노를 집으로 가져와서 개인레슨을 시작했어요.
사촌언니가 연주회도 왕성하게 하고 대학에 출강도 하는 현역 피아니스트인데, 언니 제자(대학교 4학년)를 선생님으로 소개해 줬어요. 사촌언니가 제 딸이 아직 많이 어려 연습을 혼자서 하기 힘들 가능성이 높으니, 초기에는 주2회보다는 3회가 좋을 것 같다고 얘기해 줘서, 3월부터 현재까지 주3회 개인레슨을 받고 있습니다.
첫날 수업 시간에 테스트를 한 후 바이엘 2권부터 시작했는데(이 선생님은 어드벤처로는 안 해보셨다고 바이엘로 가르치셨어요), 제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진도가 나가더군요. 바이엘 2권 3개월, 바이엘 3권 2개월, 바이엘 4권 1개월, 이렇게 해서 8월까지 바이엘을 마쳤고, 간추린 체르니 100번을 9월부터 시작해서 한달 반만에 마쳤습니다. (바이엘 시작할 때부터 동요집 같이 했고, 바이엘 4권 할 때부터는 소나티네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간추린 체르니 100번 시작하면서는 하농도 같이 시작했고요.)
너무 진도를 빨리 나가는 게 아닌가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아이가 악보도 잘 보고 악상도 잘 지켜서 아주 잘한다고 하시더군요. 8월에 사촌언니가 제 딸 피아노 치는 걸 보더니, 아이 선생님이 그냥 진도를 막 나간 게 아니라, 제 딸이 피아노에 아주 재능이 있다고 걱정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지난주에 사촌언니가 저희 집에 왔었는데, 아이를 데리고 한참 동안 레슨을 하더니 아이 선생님께 전화해서 체르니 30번과 함께 바흐 인벤션을 시작하라고 하더군요. 저더러는, 지금 결정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진지하게 전공 가능성을 생각해서 가르쳤으면 좋겠다고 했고요. 아이가 이제 여섯살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뭐 전공 여부를 얘기한다는 게 좀 생뚱맞긴 했지만, 그냥 딸이 피아노에 소질이 있나보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에 선생님이 사오신 바흐 인벤션을 보고 나니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하네요. 일단, 너무 어려워 보여서 과연 제 딸이 이걸 칠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선생님도, 살짝 난처해 하시며, 보통 바흐 인벤션은 초등 4학년 정도 되어야 친다며, 너무 어려워서 제 딸이 피아노 치는 걸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요. 저는 바흐 인벤션이라는 게 다들 체르니 30번 정도 시작할 때 시작하는 건가 했는데, 그건 아니라고 하시더라고요. 선생님은 본인의 선생님인 제 사촌언니가 그렇게 하라 하니, 그냥 바흐 인벤션도 해보겠다 하십니다. 다만, 체르니30, 바흐인벤션, 하농, 소나티네, 동요곡집까지 너무 여러 책을 하게 되니, 최대한 빨리 동요곡집 진도를 빼서 향후에는 네 권만 하시겠다 하고요.(동요곡집은 쉬운 것부터 시작해서 현재 세권째 하고 있습니다.)
아이 선생님이 워낙 얌전하고 착하고 말이 없으신 스타일이라 제가 더 뭐라 여쭤보기도 뭣하고 해서 알겠다고만 했는데요. 아이한테 물어보니 당연히 인벤션이 어렵다고 합니다. 토요일 레슨 때 보니, 바흐 인벤션 첫곡 딱 한줄 배웠더라고요..
그냥 이대로 바흐 인벤션을 같이 하도록 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바흐 인벤션은 좀더 있다가 하는 게 어떻겠냐고 사촌언니한테 얘기해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뭣 모르는 제가 괜히 감놔라 배놔라 하는 것 같아서 그냥 가만히 있어야겠다 싶다가도, 선생님의 난처한 표정을 생각하면 저라도 말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언니는 주로 대학생이나 입시생들 레슨을 하니까 어린 아이의 피아노 레슨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모를 수도 있겠다 싶고요.
체르니30번 시작하면서 바흐 인벤션도 같이 하신 분들이 혹시 있으신지, 경험담을 듣고 싶습니다. 그냥 저대로 내버려 둬도 괜찮을까요? 미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