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관계 중간에는 항상 공적인 "일"이 단단한 기둥 구실을 했다
그 인연이 십 수 년이다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취향도 나누는 그 중심엔
일이라는 매개가 있었다
만약 커피라는 주제를 놓고 담론을 끄집어내는 회의를 할 때
밀착된 대화로 자연스레 넘어가는 그 과정을 순수한 우정이나 친교로 둔갑시킨다
그래서 음식의 선택만으로도 그날의 심정을 헤아리는 맘을
고맙고 따뜻하다 여기는 오해와 착각
"나는 너를 알아..."라는 철석같은 믿음과 확신
사회에서 만난 이해관계가 논리를 넘어 인간적 품으로 넘어가면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암초를 만난다
이성의 사랑이 초기를 지나 본색의 문턱에서 좌절하듯이...
맘의 가시를 뽑고 안으려하면 떠날 줄을 모른다
기대고 의지하고 바라고 하는 것들이 귀찮아진다
그동안 쌓은 신뢰와 사회적인 득실이 현실에 버티고 있으니
딱 잘라 "여기까지"! 라고 단호해지기도 어렵다
그 타이밍을 놓치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함께여야 한다
그렇게 함께 한 프로젝트가 끝났다
그쪽이나 이쪽이나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와 싸웠다는 걸 잘 안다
살아 보면 그것이 옳지 않음에도 무게 추가 기운 방향으로 끝까지 딸려가는 상황이 있다
아닌 걸 알면서도 브레이크를 밟지 못 하는 상태...
그쯤되면 제동의 힘은 당사자들이 아니라 시간과 인연의 불가항력이다
어쨌든 지나간다...
그러고 나서 일 년쯤 지난 지금
많게는 한 달에 두어 번
길게는 일 년에 한 번 볼까말까 한 사이가 됐다
한데 그 누구보다 비밀스럽고 소중한 인연으로 모양을 바꿨다
둘 다 간사하고 성질 드럽다고 깎아내려도 호탕하게 웃음이 난다
다시는 일로 만나지 말자고 저주?의 말을 퍼부어도 웃는다
뒤끝이 개운하다
한 편엔 내 생일 챙겨주고 꼬박꼬박 안부 전하는 이도 있다
밀착된 친절이 불편한 건 슬픈 일일까...
양떼를 불러들이는 호루라기가 있어 양은 자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