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읽었던 글 중에서 많이 공감했던 글 중에 하나가 ‘대기업 인사팀 18년차의 조언‘이란 글이었다. 이 글의 내용처럼 돌아가는 사회가 옳다거나 좋다는 게 아니라, 내가 경험한 이 사회의 인력 고용 시장의 채용 시스템이 대충 저런 식으로 돌아가는 게 맞기 때문이다. 물론, 저 일반론에 딱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통계적으로 얘기할 때 평균에서 편차가 많이 떨어진 경우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내 모교인 고려대만 해도, 이공계 캠퍼스보다 인문계 캠퍼스가 훨씬 더 화려하고 그래서 재학 시절엔 이공계 동기들이 인문계를 부러워하는 걸 많이 봤지만, 그건 학교다닐 때까지다. 졸업생의 평균 취직률이나, 연봉 수준을 고려한다면, 이공계가 승자다. 공대의 쌍두마차인 좌기계, 우전자가 취업시장에서 가장 우세한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고, 그 외의 나머지 과들도 문과계열 학과들에 비해 고용시장에서 갈 데도 더 많고, 할 수 있는 일도 더 많다.
최근 읽어본 신문 기사도 나나 내 주변의 위와 같은 이해를 지지한다. 취업 준비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국내 4대 그룹(삼성, 현대자동차, LG, SK)의 경우, 근래 채용한 5명 중 4명, 즉 80%가 이공계 출신이다. 나아가, 인문계 출신 지원자가 더 많아 실제 인문계의 경쟁률은 이공계의 9배다. (한국 경제의 견인차인 S전자에 다니는 친구들, 지인들 얘기를 들어봐도, 이공계열에 비해서 인문계열 입사자들의 스펙이 훨씬 후덜덜하다.) 한국 경제 구조가 수출 주도, 제조업 위주인 이상, 채용시장의 ‘이공계 우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크게 가고 싶은 과나 하고 싶은 일이 없다면, 그리고 한국에서 직장을 잡아 일을 하고, 가정을 꾸릴 거라고 생각한다면 (공대가 공부가 엄청 힘들다는 단점을 제외한다면) 공대는 무난하고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달리 말하면, 그렇지 않은 문과 계열 전공을 선택했다면, 대학 졸업장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걸 입학 때부터 즉시해야 한다. (나도 고려대에서 영문학과 정치학을 이중 전공했고, 문과대학과 정경대학을 모두 경험했고, 대기업과 벤처기업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해 봤고, 고시, 유학 준비까지 해봤으니, 남보다 잘 안다고 하긴 그렇지만 문과생의 진로의 현실에 대해서 모르지는 않는다.)
내 자신과 주변의 경험을 종합하여 문과계열 학부생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해주고 싶다.
전반적인 마인드셋: 대학은 관문일 뿐이다. 들어올 땐 비슷하지만, 나갈 때는 같지 않다. 특별히, 그 차이는 문과가 이과보다 더 심하다. 대학에 합격했다면, 그 결과가 어떻든지 간에, 이걸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마음먹는 게 현명하다.학교 공부에 대한 생각: 학교다닐 땐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게 가장 기회비용이 적다. 공부는 학교다닐 때가 아니면 제대로 하기 어렵다.특별히, 대학 때는 고등학교 때처럼 단순 암기식으로 공부하는 게 아니라, ‘사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사고하는 법을 배우면 어떤 공부를 하든 잘할 수 있고, 나아가 생각을 잘 하면 글을 잘 쓸 수가 있어서 자기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밖에서 들을 수 있는 강의는 듣지 말고, 학교에서만 들을 수 있는 강의를 듣고, 졸업하고도 할 수 있는 활동은 가급적 줄이고, 학생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활동에 집중하라.구체적으로, 문과의 공부방법은 다이아몬드다. 처음에는 교수님이 정해준 것보다 더 많은 자료를 본다. 시험이 가까이 올수록 그 자료 중에서 내가 시험에서 꺼내 쓸 수 있는 것만 보면서 공부의 폭을 좁힌다. 그리고 예상 문제를 만들어본 후, 그 문제에 대한 예상 답안을 작성하고, 그 답안을 수정해서 다시 작성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것만 한 학기에 잘 해낼 수 있으면, GPA가 4.0을 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이렇게 하다보면 학점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공부를 어떻게 하는 건지를 배운다.
문과의 삼종 스킬: 전공을 막론하고, 문과생은 다음 세 가지를 잘 해야 한다.
(1)어학은 고학년이 되서 공부하는 게 아니다. 고학년은 전공에 집중해야 한다. 학교를 나갈 때가 되면 진로에 집중해야 한다. 어학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1, 2학년 때부터 시작한다. 운동 트레이닝 프로그램처럼 어학 공부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짜고, 매일 꾸준히 실천한다.나 같은 경우는 이동시간 등을 이용해 하루 2시간 영어 듣기, 한 시간 영어 읽기(둘 다, 길게 듣고, 길게 읽을 수 있는 게 좋다.)를 10년 가까이 실천하고 있고, 우리 때는 영어강의 열풍이 있어서 학부 전공 과목의 70% 정도는 영강으로 들었다. 이렇게 하면, 4학년즘 되면 약간의 요령만 익히면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아도 토익, 토플 등에서 고득점할 수 있다.해외 어학연수는 나 역시도 돈 낭비라고 생각하고, 교환학생은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전자에 비해서 후자는 학술적, 문화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의 폭이 훨씬 더 크고, 자기 하기 나름이긴 하지만 투자 대비 얻는 게 많기 때문이다.
(2)학술적, 실무적, 대중적 글쓰기를 모두 익힐 수 있으면 좋다. 문과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을 상대로 일을 하기 때문에, 소통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문맥(context)에 따라서 다른 글쓰기를 익히고, 글쓰기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일찍부터 노력하자. 나는 가급적 논술형 답안을 써야 하거나, 소논문을 제출하는 수업 위주로 들었고, 글쓰기를 향상시킬 수 있는 워크숍, 공모전 등에 많이 참가했고, 학생 기자 활동도 했었다.비슷한 맥락에서 발표, 토론 능력도 일찍부터 키워두는 게 좋다. 문과생은 말이 많으면 혹은 어려운 말을 많이 쓰면 말을 잘 하는 거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오산이다. (학교다닐 때나 지금이나 이런 사람들 만나면 짜증나고 피곤하다.) 쉬운 말로, 정확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익히라. 그리고 그런 점에서 사람 상대하는 게 일인 문과생에게는 매일, 매순간이 자기 스킬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다.
(3)마지막으로 과학적 사고와 정량적 사고를 배워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전문적인 직종은 모두 이 두 가지를 사용한다.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고, 실험하며, 데이터를 가지고, 분석하고, 논의한다. 가끔 의료, 법률, 금융, 기술 등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들과 만나서 얘기를 해도 말이 통하는 데, 필드는 다르고 전문적인 지식은 다르지만, 사용하는 관점과 방법론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진정한 전문성은 ‘방대한 지식’이 아니라 ‘과정에 대한 세밀한 이해’고, 그걸 가능하게 하는 기초적인 능력이 과학적 사고와 정량적 사고다. 냉정하게 평하자면, 이걸 배우지 않고 대학을 졸업했다면, 고등교육을 받았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이상은 내가 생각할 때 문과계열 학부생이 익혀야 할 기본적인 실력이다.그럼, 이런 기본적인 실력만 가지고 충분한가? 그렇지 않다. 문과는 진로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자기가 찾고 만들어야 한다. 이상적인 건 2~3학년 때가지는 열심히 찾고 4학년 때는 전력으로 집중해 그 진로로 나가는 것이다.2~3학년 때 항상 같은 학교, 같은 학과 친구들과만 놀지 말고 더 극단적인 경우에는 동네친구에게로 회귀하지 말고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보고 그들에게 진로에 대해서 많은 질문을 던져라. 사람들이 괜찮으면 그들이 주는 조언도 나쁘지 않다. 한 사람의 말에만 너무 귀 기울이지 말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종합하다보면 그리고 자기가 직접 여러 기회를 활용해서 방학을 이용해 현장을 구르다보면 감이 잡힌다. 당장 눈 앞에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 원래 그런 게 인생이다. 자기가 갖고 있는 인생 계획, 커리어 계획은 그냥 가설이라고 생각하고 여러 정보들을 종합하면서 세밀한 부분을 다듬어 나가자.
공부와 마찬가지로, 4학년 때 중요한 건 그동안 탐색한 것에서 더 넓히지 않는 것이다. 이 때부터 중요한 건 ‘포기하는 것’이다. 커리어는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 정말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나머지를 잘라내는 것이다. 어느 회사에 들어가고, 어느 학교에 들어가고, 어느 시험에 합격하고, 이런 건 목표가 될 수 없고, 기본은 ‘내 업이 무엇이냐는 것에 대한 이해’다.예를 들어, 영업하는 사람은 어느 조직에 있든, 업의 본질은 같다. 상품을 이해하고, 사람을 이해하고, 그래서 그 상품이 필요한 사람에게 그 사람이 받아들이기 가장 쉬운 방식으로 파는 것이다. 취직이든, 고시든, 유학이든 그 과정을 그렇게 자신의 업을 깨닫고, 자신의 가치를 내게 관심있는 상대방에게 설득하는 과정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인다면, 당연히 스트레스는 있지만, 배우는 것 역시 많다.
좀 더 보충설명을 하자면, 인생의 모든 문제를 오직 ‘나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말자. 요즘 많은 학생들의 고민인 취직만 해도 일명 취업준비생(이하 ‘취준생’)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건 학생들을 채용하는 회사나, 실업률을 낮춰야 하는 정부나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공통적인 문제다. 이걸 나 혼자만의 문제라고 생각하면, 너무 답답하고 힘이 들지만, 함께 풀어나가는 문제라고 생각하면, 좀 더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좀 더 창의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능력도 생긴다. 문제 해결의 기초가 되는 관계 형성의 출발점이 된다.그리고 이런 마인드셋은 사회 진출의 관문을 넘어서도 항상 도움이 된다. 인생의 대부분의 문제는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상대방의 문제가 왜 나의 문제인지 알아가는 과정이 공감이고, 내 문제가 왜 상대방의 문제인지를 설명하는 과정이 협상이다. 문과의 역량의 알파와 오메가는 공감과 협상이다.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얘기는 스펙 중의 스펙은 ‘태도’라는 것이다. 당장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과는 일할 수 있어도, 기준이 떨어지는 사람과는 일하고 싶지 않다. 혹은 일에 서투른 사람과는 일할 수 있어도, 남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과는 일하고 싶지 않다. 이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 사회 생활을 경험한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실력이 떨어지더라도 꾸준히 노력하고, 학습하는 태도를 갖춘 사람들은 대성한다. 이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기준이 낮은 사람들은 문제를 지적해줘도, 그게 왜 문제인지 모른다. 이런 사람은 답이 없다. 물론, 이런 프로페셔널리즘의 문제는 당연히 문이과 합쳐서 다 중요하지만, 사람 상대할 일이 더 많은 문과는 더 신경써야 한다. 자신의 일과 관계의 기준을 높여야 한다.비슷한 관점에서 남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은 잘 되기가 그른 사람이다. 남을 배려하지 않는데, 남의 도움을 받기 어려우며,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실무에서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배려하는 능력이 떨어지면, 기업이 됐든, 정부가 됐든, 학교가 됐든 뽑기 싫다. 보통 일하는 사람들은 사람이 ‘나이스하다’라고 표현하는데, 다른 사람이 필요한게 뭔지 알고, 미리 그걸 챙겨주자. 내가 생각하는 걸 상대방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과감히 짐작하고 오해하지 말고, 계속 물어보고, 소통하고, 그런 보이지 않는 스킨십 능력을 키우자.
사실, 나는 남보다 자질과 능력이 떨어져서 위와 같은 내용을 깨닫는 데 1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후배들은 꼭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빨리 깨달을 수 있다면, 빨리 깨닫는 게 더 좋다.
당장 눈앞의 현실만 보면 교만해질 수 있고(상위권 학교, 상위권 학과에 들어가 신입생 혹은 저학년이라 지금 잘 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대다수의 고학년이라면) 절망할 수 있다. 그러나 문과가 갈 수 있는 길은 정해져 있지 않다. 자기가 찾고, 만들어야 한다. 나 역시 문과생으로서, 그게 괴로웠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과정을 통해 삶을 배웠고, 사람을 배웠고, 사회를 배웠다.
후배들에게도 그 과정이 역시 쉽지는 않겠지만,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배우는 것이 있다면, 결국엔 남는 것이 있다.
인간 삶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진 문과생답게 자신뿐 아니라 주변의 삶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삶을 살기를, 인격과 실력이 모범이 되는 이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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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koreaninternetpolicy.wordpress.com/2014/03/08/%EB%AC%B8%EA%B3%BC%EA%B3...
너무 공감되서 가져와 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