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시댁 벌초에 다녀왔어요.
당일 아침 새벽 5시에 시부모님을 픽업하여 시골 근방까지 갔더니
저는 잠이 부족해 혼미한 상태에서 머리아픈 광경이 시작되었어요.
손위 누님댁에 들르고 싶어하시는 시아버지와 시누이 집에 가기 싫으시다는 시어머니 실갱이가...
저희 시어머니, 평소에 나는 되고 너는 안된다 식의 사고방식이신 분이라
저한테는 늘 시댁이 이젠 너네 집이라는 얘길 하시면서, 정작 본인은 시누이 불편하다고 하시더군요...ㅡㅡ
결국 아버님 승. 시고모님댁에 들러서 시고모님 내외분과 같이 선산에 오르기 시작했죠.
원래는 그냥 단순(?) 성묘인줄 알았으나, 실제로 가봤더니 그 곳은 입구부터 아마존 밀림같이 울창했어요.
아버님 형제분들 중 돌아가신 분들도 있고 또 저희 나이대인 자식들도 묘에는 잘 찾아오지 않는가봐요.
시아버님은 형제 중 유일하게 서울에 사시는 분인데다 장사를 하시고, 결정적으로 운전을 못하시는터라
명절은 물론이고 성묘도 자식 도움 아니면 갈 수가 없으세요.
말씀이나 좀 해주셨으면 긴 바지에 편한 신 신고 갔을텐데
긴 검정색 원피스에 단화를 신고 가서 모기에 정말 신나게 물어뜯기면서
과일, 물, 간식 셔틀 시작...
남편이 오늘 하루 효도하는 셈 치자고 부탁에 부탁을 해서 정말 마음을 다잡고
매너모드 on하고 며느리룩에 미소 장착하고 군소리 없이 했지만...
벌초하는 내내 잔심부름 하며 제가 싫어하는 레파토리가 시작되었어요. ㅜ.ㅜ
시고모님과 시어머님 두 분이 며느리 사위 둘 다 있는 분들이라 죽이 척척 맞으시더라고요.
다 키워보니 딸이 좋지만 결국 나중에 내 병수발 할 사람은 며느리다.
아무리 그래도 딸은 남 주는거고 며느리가 내집 사람이지.
자식들이 요번에 뭘 사줬다. (저는 신혼 초 황당한 일을 여러 번 겪고 명절과 생신만 챙김)
저는 영혼없는 표정으로 아, 네네...^^
하여간 장장 일곱시간에 이르는 벌초 대장정을 마치고 땀범벅에 거지꼴로 절 몇 번 했어요.
늦은 점심이라도 먹고 가라고 붙드시는 시고모님에게 시어머니께서 차 막힌다며 미소로 만류하시고 서울로 출발...
그리고는 차에 타자마자 불편한데 사람 잡는다며 짜증을 부리셨어요..;;;;시누이가 편하겠느냐고.
남편이나 저나 피곤에 쩔어서 거의 쓰러지기 일보 직전 서울에 도착했는데,
이번엔 시어머니께서 저희더러 시댁에 들렀다가 씻고 밥도 먹고 천천히 좀 쉬었다가 가라고 하셨어요.
남편이 "아까 고모가 밥 먹고 가라고 할 때는 그냥 나오시더니 왜 저희는 붙잡으세요?" 했더니
너는 시누이가 올케한테 하는거랑 엄마가 자식한테 하는거랑 같냐며 벌컥 하시더라구요.
그러면서 저한테 "얘, 너 들렀다 갈거지?" 라고 하시길래 예의바르게 거절했어요.(속으로 빵터짐..)
그리고 집에 가서 씻은 뒤 남편과 둘이 실신... 다음날 일어나보니 12시간을 스트레이트로 잤어요.
한 줄 요약하자면 암튼 다음에도 벌초 가야 한다면 남편 혼자 가는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