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복미사 보니 더욱 부끄럽네요.
평소 가끔 토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그 많은 타임마다 있는 주말미사마다 나가기 싫어 뒹굴뒹굴 하는 내 자신과
서슬퍼렇던 정순왕후시절 비밀리에 모여 미사를 들이던 그 분들을 비교하면서 참 부끄러웠거든요.
(발각되면 바로 끌려가서 고문과 죽음인데도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모여 미사를 들였다고 해요.)
자신의 목숨뿐만 아니라 가문의 멸문지화까지 받아들이면서 그렇게 천주교를 갈구한 그 분들
100년이라면 길기도 또 짧기도 하지만..
그 100년 사이 비교도 안 될 만큼 너무나 풍족해졌지만
또 저렇게 목숨을 거는 가문을 멸할 정도의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없는 것 같아요.
아마도 저 100년전의 시대는
태어나면서 양반 천민 노비 서자 얼자 적자..이렇게 정해저버린 운명의 굴레를
천주님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천주학을 통해서 바꿀수 있다는 믿음때문이었을까요?
만인이 평등하다는 천주학의 이념을 절대 받아들일수 없었던 당시의 권력층들이
끊임없이 정조에게 천주학을 벌하라고 지적을 했는데
정조의 쏘쿨한 대답
"정학이 바로 서면 사학은 저절로 없어질 것이다."
이 한마디로 천주학( 사실 서학의 개념이 강했죠...)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인 정조에게도
다시 고개숙여지구요.
정조의 이런 대답때문에...당시 권력층은 발을 동동 굴렸다고 해요.
왕이 된 후에도 지배계층으로 부터 여러번 목숨을 잃을뻔하는 등 왕으로써의 권력기반이 약했지만
서학은 대세이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지배층에게 암묵적으로 지시했던 멋진왕같기도 하구요..
이렇게 기득권을 놓치 않으려는 권력층에 맞서
든든한 버팀목으로 천주학=서학이 들어오도록 유도했던 정조가 갑자기 죽어버린 것도
울나라는 참 복도 없는 것 같아요.
이 후 바로 천주학 탄압되고 세도정치(최악의 정치형태) 시작되버리고 고종집권후 일제로 넘어가 버리죠..
엉뚱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새어 나갔는데
암튼 오늘 복자들 그림 보니 좀 부끄럽다는 생각들었습니다.
정조 생각도 났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