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더위에 지친 군중들을 어떻게 위로를 할 방법이 없나?
2014. 8. 15 오후 시청광장!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시청광장 넓은 마당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주최 측에서 10만 관중 동원을 호언했지만, 이 더운 날씨에 그것도 한 낯에 얼마나 모이랴 했었다.
헌데 꾸역꾸역 모여드는 인파는 6.10항쟁의 그 날을 재현하는 듯 했다.
경찰추산 3만 명이었으니 시청을 빙 돌아가며 그늘이나 건물 뒤에 모여 앉은 군중들을 합산하면 줄잡아 10만은 되었을 것 같다.
10만에서 좀 빠진다 해도 경찰수만 명이 광장을 삥 둘러싸고 있었으니 경찰도 사람일진대 경찰의 머릿수를 합하면 10만을 훨씬 넘는 군중이었다.
물론 교황님의 눈에 보이지 않는 후광과 음덕이 작용했다 해도 예상외의 관중이었다.
그 자리에 모여든 시민 모두가 의외의 군중에 고무되고 놀라워했다.
그들이 들고 있는 피켓이나 외치는 구호는 각양각색이었어도, 압축하면 <특별법>을 유가족이 요구하는 대로 제정해서 이 나라에서 다시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일어날 수 없도록 하는 건강한 나라를 만들자는 몸부림이었고, “박근혜 퇴진!”, “사고 원인 규명”, “책임자 처벌”은 “건강한 나라”라는 김치를 담그는데 섞어 넣는 조미료와 양념일 뿐이었다.
해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구름이 많이 끼었지만 여름더위야 어디 가랴!
말 그대로 불볕 더위였다.
하지만 10만 군중은 행사가 진행되는 2~3시간동안 꼼짝도 안 하고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시청 앞 ~ 을지로 3가 ~ 종로3가로 이어지는 긴 긴 시가행진이 시작되었다.
그 감사한 군중들에게 무언가 시원한 기쁨을 선사하고 싶었다.
하지만 빈 주머니에 그들에게 시원한 얼음과자를 대접할 돈도 없고, 돈이 있다 해도 그 빽빽한 군중사이를 어떻게 비집고 돌아다니며 얼음과자를 그들의 손에 쥐어준단 말인가?
할 수 없이 한 꾀를 생각해 냈다.
옆에 나뒹구는 A-4용지 넉 장을 합친 것 만한 남이 버린 피켓 하나를 주워들었고, 다행히 피켓뒷면은 빈 백지상태로 있었다.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매직잉크를 꺼내 뒷면에 휘갈겨 썼다.
<희소식>
<시청광장 사진을 보고 박근혜가 비틀 → 아직도 제정신이 돌아오지를 안 했답니다.
더러운 세월 끝장도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 조금만 더 힘을 모읍시다!>
하고 써서 군중들이 시위를 해 나가는 프레지던트 호텔 건너편 교통신호등 컨트롤박스를 철거해 낸 높이 50cm쯤 되는 콘크리트 기초 대 위에 올라서서 양팔을 벌려 높이 들고 시위 군중들을 향해 펼쳐들었다.
꼬박 두 시간은 양팔을 높이 들고 기성세대로서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벌을 선 것 같다.
시가행진을 하시는 시민들이 너무나 기뻐하셨습니다.
그 기뻐하시는 모습들에서 내 팔 아픔도 잊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잘 나가던 시가행진대열은 청계3가 4거리에서 멈추고 <범국민 대책위>라는 사회자가 나와서 경찰이 승인한 합법적인 시위는 여기까지이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고 하고 방송차량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대로는 안 될 것 같았다.
다시 주변에서 박스 판때기 하나를 주워 아래와 같이 써서 길거리에 주저앉은 군중들을 향해 들고 다녔다.
<교황님께서 우리를 만나자고 하십니다. 청와대 뒤편 로마교황청 대사관까지 시가행진을 해 나갑시다!> 하고 써서 들고 다녔다.
물론 앞에서와 같은 반응이 왔다.
그때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웬 아가씨 하나가 옆에 달라붙더니 꼬치꼬치 캐 묻기 시작했다.
아가씨 ; 교황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필 자 ; ----
아가씨 ; 교황청대사관은 왜 가요?
필 자 ; 교화청대사관은 핑계고 거기가 바로 청와대 아니요?
아가씨 ; 그래도 교황청대사관으로 가자고 쓰셨잖아요?
필 자 ; 그냥 사진 찍었으면 딴 일 보시고, 나중에 딴 사람들과 같이 그 사진보고 얘기를 나눠 보세요!
그래도 그 아가씨는 곁을 떠나지 않고 줄기차게 질문을 던져 왔지만 무슨 대답을 해 줄 형편이 안 되었다.
집회 주최 측에서 청계천 3가에 버리고 간 시위 군중들을 삼삼오오 떼를 지어 보신각 앞마당으로 모여 철벽같은 경찰차를 향하여 “청와대로 가는 길을 비켜라!”외치며 노상농성에 들어갔다.
노상농성이 2-3시간 지속되었다.
경찰의 인내가 놀라웠다.
공갈방송은 해 대도 물대포도, 연행도 없었다.
모두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교황님의 위력이었을 것이다.
10시가 조금 넘어 보신각 앞 농성장을 벗어나 광화문광장의 유가족 농성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거기서 유가족들과 밤샘을 할 작정이었다.
아쁠싸!
오후 5시까지도 여러 개의 천막 밑에서 사람이 북적이며 농성을 벌이고 있던 장소는 말끔히 철거되어 정리가 되었다.
그곳에 힘없이 앉아있는 젊은 남성에게 물으니 경찰과 시복식 행사가 끝나면 다시 천막치고 농성장을 차리기로 하고 유가족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철거를 했단다.
아- 이 무슨 판단착오란 말인가?
교황님은 이렇게 말끔하게 정리된 광장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분이시라 했는데!
가장 낮고, 가장 가난하고, 가장 슬픈 사람들이, 가장 비참하게 사는 곳만을 찾아다니시는 분이라 했는데, 왜 울부짖는 유가족들이 비 가림만이라도 하기 위해 친 천막을 스스로 철거를 한단 말인가?
과연 시복식 행사가 끝나면 다시 엣 모습대로 천막을 치게 할 것인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다 힘없는 발걸음을 집으로 돌렸다.
다행히 마지막 전철이 남아있어 없는 돈에 택시를 잡아타지 안 해도 되었다.
지금은 교황님 후광으로 어떻게 버틴다만, 교황 가시고 난 뒤가 더 큰 걱정이다.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