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게..60년대 후반 70년대 초반에 이화여대 나왔다면 그당시는 돈만 있음 갈수 있는 학교인가요?
제 친구가 그런식으로 얘기 하길래 궁금한거예요..
그래서 여기다 물어봅니다..
기부금입학으로 가는 경우 말고 돈만 있음 그 당시 이화여대 들어갈수 있었나요??궁금한게..60년대 후반 70년대 초반에 이화여대 나왔다면 그당시는 돈만 있음 갈수 있는 학교인가요?
제 친구가 그런식으로 얘기 하길래 궁금한거예요..
그래서 여기다 물어봅니다..
기부금입학으로 가는 경우 말고 돈만 있음 그 당시 이화여대 들어갈수 있었나요??그게 말이 되나요?
으이구, 진짜 몰라서 물어요?
친구 좀 가려서 사귀시징..
한심 ㅋㅋ 오프에선 이런 소리 마세요
경기여고 이화여고 등 명문여고 입시가 치열했고
거기 졸업한 공부 잘 하던 분들이 이대로 대거 진학했죠.
지금보다 이대 위상이 훨씬 높았던 시절 아닌가요?
당시엔 이대 영문과가 최고 인기라서 서울대 갈 성적 되도 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들었어요.
뭐 지금처럼 다들 대학가던 시절은 아니니 돈이 좀 있는집 딸중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이 갔을겁니다.
음...저희 어머니가 부산여고 이화여대 나왔는데 제 친구가 그렇게 얘기하니 살짝 기분이 나쁘더라구요..그래서 물어봐요..ㅠㅠ
기부금입학은 우리나라에 공식적으론 없습니다
위에 글대로 그 당시면 고등학교부터 서열화 되던 시기였어요.
이런 소리 오프에서 하심 정말 망신감이에요.
친구도 참 창피한걸 모르네요
이대가 등록금이 더 비싸지도 않았는데
무슨 돈만 있음.. 인가요?
팔십년대에도 한 학기에 몇 십만원이었는데요.
이대 영문과는 그 당시 경기, 이화여고에서 중간 쯤 되면 갔어요. 서울대와는 비교가 안 됐죠.
그래도 돈만 있으면 갈 수 있다는 건 말이 안 되고요. 지금 보다 오히려 위상이 높았을 수도 있는 게 공부 잘해도 여자니까 공학 보다 그냥 이화여대 가는 분위기도 꽤 있었거든요.
헛소리도 정도껏 해야 들어주죠. ㅋㅋ
60년대 말 ~ 70년대초가 무슨 시대냐 하면
고교평준화 이전 입니다.
이때 지역 명문고 -> 서울 명문대 출신들을
현재에 비유하자면
대치동 -> 외고 -> 명문대 정도 됩니다.
원글님 어머님이 이대 나온걸 알면서 그런거라면 친구가 인성도 개차반인가보네요. 부러운걸 까내리고 싶은 심보. 멀리하세요
그 당시면 지금보다 이대 위상이 훨씬 높았던 시절 2222
가끔 인터넷에 70년대인가 80년대인가 조선일보 배치표 캡쳐한거 떠도는데요, 그거 보면 이대가 연고대랑 겹치게도 나와요. 돈주고 간다는게 말이안되죠. 게다가 이대는 기부입학 이런거 안받아주기로 유명한 학교에요. 교수임용할때도 좀 부정적인 의미로 고지식하게 뽑고요.
그리고 예전엔 대학가기 쉬웠다 돈만 있으면 갔다 이런 말들 가끔 하시는 분들 있던데, 전혀 사실 아니에요.
저희 친가 외가가 양쪽 다 교육에 미친 집이었고 식구들이 다 70년대 대학나온 사람들인데, 재수까지 하고 공부해서도 지방대도 가고 그랬어요. 그때도 대학 가기 힘들었어요..
울 엄마 이대 60년대 중반 학번, 저 80년대 후반 학번...
울 엄니는 경북여고 나오셨고 동기생 대다수가 이대 갔다고 해요.
저보고 늘 하시는 말씀이 넌 우리 시대였으면 이대 근처도 못갔다고.... ㅠㅠ
경기여고랑 이화여고는 레벨이 다릅니다
서울대와 이회여대차이
예,,,이대 사범대 교육학과 입학할땐 톱으로 입학하셨어요...뭐 지금은 몸아픈 할머니지만...쌤나서 그렇게 얘기했나보네요..ㅠㅠ
그 시절 4년제 대학은 고교생의 20% 정도 밖에 가질 못했고요
대다수는 먹고 살기 위해 고교를 마치면 취업했습니다.
열폭도 그 정도가 되면 예술이네요 ㅋㅋㅋ
부산여고-이화여대 출신을 그리 깎아내리는 그친구란 ㄴ 의 엄마는 얼마나 거룩한 학교 출신이라하던가요?
78년도에 제 친구가 ( 백~ 속옷)
미대 조소과 엄청 큰 액수로 기부금 입학했어요~
친구들 사이에선 공공연한 비밀••
과 나름...
입시문제에서 무파동 인지 뭔지 일어나고 난리도 아니었던 때 인가요? 예비고사,본고사에 전,후기 대학으로 나뉘었던...그땐 대학 가기 정말 어려웠을 걸요?
당시에 서울대나 이화여대 둘 다 기부금 입학 없었습니다.
의외네요. 불가능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어머나, 제 언니도 70년대에 이대 사대 교육학과 갔어요. ^^
그 땐 본고사라는게 있어서 더 어렵지 않았나 싶은데.
그때도 이화, 덕성, 동덕, 성신, 수도여사대,
등등 학교 많았어요.
돈만 내면 된다면 왜 다른 학교를 갔을까요.
아닐겁니다.
80년대 학번 중애 전교 꼴지도 유명여대 음대는 가더군요
친구 이모가 음대 교수였다긴 했어요
윗분 말씀데로 80년대 초,중 정도까지는 음미체는 돈으로 살짝 갈수는 있었어요
70년대나 80년대초 까지는 음악 미술 체육은 공부는 못해도 실기만 잘하면 명문대도
갈수는 있었어요 다 그렇다는것은 아니고 그중 몇명정도는요...
그러나 그외의 과는 돈으로 이대를 간다는건 ㅋㅋㅋㅋ 웃기는 짬뽕입니다.
그때는 그렇지는 않았어요... 몰라도 참 한참 모르는 친구네요.
물론 지금보다는 쉬웠다봐요
그땐 딸을 대학보내려는 부모가 많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나 설령 그렇다해도 내가 친구라면 그렇게 말하지는 않앟을거 같네요
답답하네요. 공식적으론 없었어도 뒷문 입학 많았어요.
그당시 학교 다녔는데 보통 3대1 또는 4대1 의경쟁을 하고 들어와서 기부는 이대인경우는 전혀
없었지요. 입학을 68년에하고 문리대 생물학과를 72년도에졸업 하고 고등학교때 공부를 반에서
5등안에 들었는데 첫해에 떨어져서 그당시 종로에 있는 대성학원에서 재수를 해서 들어왔답니다.
그때는대학이 많지않고 학생들이 전쟁이후라 많았지요. 그때도 좋은대학가기가 지금처럼 어려웠답니다.
보통 한반에 70 명이 넘었어요 한학년이 보통 8 반이지요 . 보통 아침에 조회 서면 고등학교만 천오백
명 가까이 교복입고 한시간정도 서있곤 했어요. 그때는 여자 고등학교 경기 이화 숙명 등 아주 일류
학교라 국민학교때부테 부모들이 과외공부를많잇켜답니다 . 보통 단임선생님 한테 과외 하곤 하였지요.
그때는 형제자매가 보통 다섯 이상이라 아들이나 장녀 중심으로 과외도 시키고 담임 선생님 한테가서
그때는 와이로 라고 하곤 했는데 그때도 교육열이 높았지요.
전 79학번이고요,
공식적으로 기부금입학이란 제도 자체가 없지만...유명 사립대 뒷문으로 들어간 동창들 여럿 있어요.
공공연하게 재단 친인척에게 티오가 나온다는 말도 있었고요.
신설대학은 정원의 반이 뒷문으로 들어온 학생이란 말도 있었던 시절이지요.
극소수이긴 하지만 유명사립대 뒷문입학이 가능했던 시절입니다.
6~70 년대는 더 심했겠죠.
윗님 글보니 보결생이라는 단어가 생각나네요.
어릴적에 들었던 뒷문으로 대학가는 학생들을
가르켰던 거 같은데 그런 말이 있었던거보면
암암리에 부정입학 가능했겠네요.
그 시대 소수의 사람들의 경쟁률도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체계가 잡힌 시대도 아니었고 누구나
대학가는 시대가 아니어서 가능했었을 듯함.
그당시에는 사회; 모든 분야에서 빽이면 뭐든지 다 통하는 시대 아니었나요? 동사무소에 가서 증명서 하나 띨려고 해도 아는 사람이 있거나 급행료를 지불하면 빨리 나오고, 자동차 면허 딸려면 뇌물을 주어야 하고..
그 당시 입시제도에서만은 부정이 없었다고 생각하시는건가요?
어느정도 권력과 돈이 있는 사람들 자제들은 이대뿐 아니라 소위 명문대 입학이 쉬웠죠.
꼭 뒷문으로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앞문으로 들어간 경우도 반칙하고 들어 간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지금처럼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죠.
특히 교수및 학교 교직원 자제분들 그 덕을 많이 봤습니다. 실제로 본고사 가산점 제도도 있었구요.
아무리 점수가 않 좋더래도 당황하지 말고 입학원서 여러장 써서 지원하는 과는 "공란"으로 두고 학교 관계자에게 제출하면, 마감후 그 분이 알아서 제일 경쟁률이 약한 또는 미달된 과에 접수 시키면 상황 끝...
그 당시에는 복수 지원 금지 였기때문에 이때는 물론 명문대에서도 미달되는 과가 꼭 나왔습니다.
일단 들어가면 졸업은 시켜주던 시절이니 들어가서도 아무 문제 없이 잘다니다, 졸업하더군요.
알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이었습니다.
그 당시 대학마다 본고사가 있어 돈 있는 집안은 그 대학교수에게 개인 과외했습니다. 그분이 본고사 출제위원이 되구요. 답안을 외우고 시험 보는 학생이 당근 유리했겠죠.
딸들은 공부를 잘 시키지 않던 시대라 있는집 딸들간의 경쟁중에 잘하는 사람들이 갔겠죠..
예전에 한 친구 자녀 입학관련 장관직 임명 전에 사퇴한
사람도 있었어요. 부정이 왜 없었겠어요.
알음알음 특히 재단, 교직원, 윗 몇 댓글 다 맞다고
알고 있어요.,
청강생 제도 못들어보셨나봐요. 당시 유명 사립대 전부 다 있었는데요. 똑같이 입학해서 공부해요. 다만 문교부에 학생 이름이 등록 안되었을뿐. 다 똑같았데요.불법도 아니였다는데요. 유명 사립대들이 이렇거 재정을 메꿨다는데요.
입시비리로 잡혀간 교수도 꽤 돼서 방송도 탔는데
그럼 나 뒷문으로 들어갔어요~
여기다 글 쓰겠어요?
90년대에도 정원외 몇명으로 ( ) 안에 숫자가 있었어요
선생, 공무원, 은행직원 등 직장도 알음으로 가능했어요
요즘 입시레슨도 그런거잖아요
블라인드 테스트는 무슨..
교수가 직접 가르쳤는데 자기 제자 화풍 연주풍 모르겠나요?
교수면 대학교에서 가르쳐야지
새끼제자 두고 누구 라인이라는 둥..
돈 주면 다 들어가는 게 이대라고 하면 연고대는 더하면 더했겠죠....
엄마가 60년대 후반에 이대 다니셨어요 어느날 속상해서 오시더니 교회 모 집사가 그 시절 이대는 줄만서면 갔다고 했다면서 열받아하시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담에 그 무식한 집사 만나면 물어보라고. 줄만 서면 되는 걸 당신은 왜 바보같이 줄도 안 서서 고졸이냐고.
줄을 서야하는데 그 줄이 금줄이니까 돈이 있어야 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