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담 하나, 긴급제안 하나
<여담하나!>
2014. 4. 16 이른 아침
500명 이상의 승객을 태운 세월호는 진도 앞바다에서 좌초상태로 기울기 시작했고, 청와대비서실 국정원 내각이 발칵 뒤집혔고, 5천만의 눈과 귀는 시시각각 물 밑으로 가라앉는 세월호를 생중계하는 TV긴급속보에 고정되었고, 이어서 전 세계가 세월호사고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사태변화를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건을 수습해야 할 최종책임자인 박근혜는 7시간 동안 오리무중이었다.
현재까지도 그 7시간 동안 박근혜가 한 일은 온갖 소문만 난무할 뿐 밝혀진 게 하나도 없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책임지고 안전하게 지켜주겠다고 선서하고 청와대로 들어간 박근혜로서는 직무유기를 넘어 직무의 포기였다.
뒷날 그 행각이 들어날 것이다.
그때 박근혜가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은 다음 두 가지 뿐이다.
첫째 극비정보를 통하여 김정은의 명을 받은 인민군인 휴전선 155마일에 걸쳐 불시에 남침을 강행하려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게 언론에 노출되고 국민이 알아버린다면 나라전체가 수습할 수 없는 대혼란에 빠질 것을 염려하여 박근혜가 비서실과 내각에 목숨을 걸고 비밀을 지킬 함구령을 내리고 바로 휴전선으로 달려가서 혈혈단신으로 인민군의 남침을 저지했거나, 김정은과 핫라인을 통하여 긴급 전화회담을 하여 북한군의 남침을 되돌리게 했다면 박근혜로서는 세월호 사고에 관계없이 7시간의 국정공백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있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했고,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둘째는 역시 극비정보를 통하여 아베란 놈의 명을 받은 일본해상자위대가 함정을 몰고 독도로 상륙하여 독도를 침탈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역시 국민의 동요와 혼란을 걱정하여 함구령을 내리고 긴급히 독도로 달려가서 혈혈단신으로 자위대를 막아 냈거나, 또는 역시 핫라인을 통하여 아베와 긴급전화회담을 갖고 자위대의 독도상륙은 물론 영해를 침범하지 않고 뱃머리를 돌려 일본으로 되돌려 보냈다면 역시 7시간의 국정공백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있다.
세월호에서 희생되신 304분의 생명도 귀중하지만 위 두 건은 5천만의 생명과 국가안위가 걸려 있는 사안이니 7시간 국정공백이 아니라 700시간 국정공백이 있었다 해도 당연히 국민들도 수긍하고 오히려 박근혜의 그 위대한 행위에 대하여 손바닥이 터지도록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날은 물론 그 뒤로도 며칠간 세월호 사고보다 더 큰 국내에서의 사고는 없었으니 위 2건을 빼고는 어떤 일을 했던 간에, 어떤 명분으로도 7시간의 국정공백에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설마하니 산케이 신문이 횡설수설한 대로 정 아무개 때문 이기야 하겠나???
내 장담은 못 하겠다만 위 2건과 비슷한 일이 있어서 그것을 혼자서 수습했고, 뒤늦게라도 국민들이 그런 것을 안다면 역시 혼란이 초래될 것을 염려하여 그의 장기인 입을 다물고 모르쇠 하고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긴급제안 하나>
군에서의 끈임 없는 가혹행위와 왕따, 또는 살인
이거 정부가 일벌백계, 군 혁신, 병영문화의 일신 등 사고가 날 때마다 수많은 대책을 쏟아 냈으나 개선되기는커녕 오리혀 사고는 더 빈발하고 있다.
윤일병 살해사건에서 보면 그를 살해한 선임병들이 인간인지 의심스럽다.
윤일병은 무리의 하이에나에게 둘러싸인 한 마리의 사슴이었다.
이제 어떤 부모들이 자식을 흔쾌히 군대에 보내겠나?
자식을 군대 보낸 부모는 단 하루도 발을 뻗고 편히 잠을 이룰 수가 없게 되었고, 전화벨만 울리면 온 집안 식구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것이고 그 때 부터는 날밤을 하얗게 새울 것이다.
징집을 당한 장정이 사람 죽이는 군대는 못 가겠다고 할 때 국가는 뭐라고 하고 군복무를 명할 것인가?
이제 신임병들에게도 최소한의 자구책을 국가가 강구해 주어야 한다.
훈련소를 마치고 자대 배치되는 즉시 모든 신병에게 실탄과 휴대용 소총을 지급하라!
그렇게 해서 최소한 선임병들의 살인행위에서 자구책을 강구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윤일병에게 실탄과 소총이 있었고, 윤일병이 최후의 순간에 자신을 폭행하여 죽음으로 몰아넣는 선임병을 사살했다면 그건 살인행위가 아니라 정당방위이고 인간으로서 당연히 취해야 할 자구책이다.
혹자들은 그러면 사고의 빈발을 염려할 지도 모른다.
천만에!
총과 실탄이 보급되는 최전방에서도 오발이나 실수로 인한 사고는 거의 없고, 22사단 임병장의 예에서 보듯이 자구책과 같은 사고도 그렇게 사고는 많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리고 더러 자구책에 의한 사고가 나더라도 윤일병의 예와 같이 억울한 윤일병이 죽는 것 보다는 윤일병의 자구책으로 살인마인 선임병이 죽는 게 국가나 사회로 볼 때 훨씬 낫다.
국가가 책임지고 신임병이나 왕따 당하는 사병들의 목숨을 지켜 줄 자신이 없다면 우리병영문화가 완전히 개선될 때 까지 한시적으로 모든 사병에게 24시간 실탄과 휴대용 소총을 지급할 것을 제안한다.
물론 받아들여질리 없는 제안이라고 생각한다.
오죽 답답하면 이런 제안을 하겠나!
아- 윤일병이여!
불쌍한 윤일병이여!
당신의 어린 생명하나 지켜주지 못한 5천만이 죄인이로소이다.
<추가로 덧붙이는 실화 하나>
나는 1948년생이니 6.25와 그 뒤의 상황은 잘 모른다.
그러니 아래 얘기는 어렸을 때 고향 어른들에게 들은 얘기다.
그 당시는 휴전이 되었어도 정국이 불안하고 인민군 낙오자도 산에 숨어 있거나 민가에 숨어 있는 자도 있고 하여 군인이 휴가 갈 때는 총과 실탄을 휴대하게 하고 휴가를 보냈다고 한다.
또 그 당시 경찰들은 대개가 일본의 순사를 하던 것들이 한국 경찰로 눌러앉은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왜정시대 순사기질이 남아 민간인들을 우습게보고 행패가 심했었단다.
고향동네 어떤 군인이 휴가를 오는데 그날이 고향 면소재지의 장날이었는데 버스에서 내리니 자신의 늙은 아버지가 젊은 순경에게 멱살을 잡혀 따귀를 계속 맞고 있더란다.
울화통이 치민 그 휴가군인이 즉시 소총에 실탄을 장진하여 그 못된 경찰의 골통에 대고 탕!
보나 마나 그 못된 순사 놈은 즉사!
그 뒤 그 군인이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 누가 꾸며낸 얘기를 한다고 할 까봐 제 고향이 충남 당진군 송악면 가학리이고, 송악면소재지가 있는 기지시리 장터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제가 어렸을 적 고향에서는 어른들끼리 모여 앉으면 수도 없이 그 얘기를 나누며 통쾌해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