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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추억’ 여든 간다.

꺾은붓 조회수 : 1,207
작성일 : 2014-07-29 16:01:20
 

                       세 살 ‘추억’ 여든 간다.


  “세살 ‘버릇’ 여든 간다.”는 우리 옛 속담을 요새 대학교수와 내각에서 한 자리 한다고 거들먹거리는 것들의 세계에서 유행한다는 “표절”이라는 것을 해 보았습니다.

  그것들 세계에서는 표절 한 번 못 하면 사람 축에도 안 끼워주고 표절을 많이 할수록 능력 있다고 평가한다니 저도 이제 사람 축에 끼이게 되었습니다.


 해방되고 6.25전쟁이 발발하기 2년 전에 충남당진이라는 곳에서 바늘 하나 꼽을 땅이 없는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났으니, 굶어 죽기 딱 알맞은 조건을 타고 났으나 굶어 죽지 않을 팔자를 타고 났는지 8살 때 다 헤진 걸레 옷 걸치고 때가 덕지덕지 붙은 몸에 코밑에 서산 어리굴젓만한 콧물덩어리 매달고 검정고무신 질질 끌며 어머니 손을 잡고 서울 왕십리로 올라와, 그때부터 서울사람이 되었고 굶어 죽지 않고 모진 목숨이 붙어 있어서 지금 제가 살아 있을 수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까막눈이었고, 어머니는 현대식 학교 정문도 못 보고 자라신 분이었지만 서당훈장을 하셨던 외할아버님이 동네학동들을 가르치실 때 어깨 너머로 귀동냥해서 배운 한학(漢學)은 논어 맹자를 줄줄이 낭송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엄한 유학자이셨던 외할아버님은 3.1만세운동 때는 장터에서 “황제(고종)폐하!”를 부르시며 통곡을 하다가 왜경에게 잡혀가 곤욕을 치르기도 하셨다 하며, 여자들은 글공부를 하면 안 된다고 남의 집 자식(사내아이)들은 사랑방에 모아놓고 논어맹자를 가르치시면서, 정작 당신의 따님은 서당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해 어머니는 어깨너머 귀동냥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지금 제가 인용하는 모든 글과 문구와 중국과 조선의 역사는 모두다 어머니의 입 가르침으로 배운 것들입니다.

  아- 어머니!


  왕십리 판잣집 살던 그때가 자유당정권이 마지막 발악을 하던 시기로, 무허가 판자촌 동네에서도 저녁을 먹고 나면 동네어른들이 삼삼오오 바윗돌에 모여 앉아 시국토론이 벌어졌고 저는 그것을 어머니가 그랬듯이 귀동냥을 했습니다.

  그때 가끔 고향에 가 보면 같은 또래의 고향친구들에게는 이승만과 이기붕이 하늘이 내린 우리민족의 구세주였지만, 저는 왕십리 어른들의 시국토론에서 들은 게 있어 이승만과 이기붕은 당장 때려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들이었습니다.

  그때는 서울과 농촌 간에 정보유통이 거의 안 되던 시절로 돌아가는 여론이 이랬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초등학교 6학년 때 4.19혁명이 터졌습니다.

  4월 18일은 하루 종일 우중충하고 약간 서늘한 날씨였습니다.

  학교(왕십리에 있는 동명초등학교)수업이 끝나고 교문을 나서는데 한반 친구의 어머니께서 정문 앞에 서서 아들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 때는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로 안팎으로 다 벌이를 해야 되는 형편에 다 큰 6학년 아이를 어머니가 학교까지 마중을 나온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던 시절입니다.

  문안(그때는 서울이라 해도 왕십리는 촌 동네나 다름없었고 4대문 안이 진짜 서울로 ‘문안’으로 불렀음)에서 전쟁이 나서 아들을 마중 나왔다는 것입니다.

  시내에서 전쟁이 났다는 소리를 듣고 약간 지대가 높은 학교정문에서 문안 쪽을 바라보니 검은 연기와 벌건 불기둥이 치솟고 있었습니다.


  고픈 배를 움켜쥐고 집으로 돌아와 허겁지겁 보리밥 한 술 뜨고 나서 어른들의 시국토론을 엿듣기 시작했습니다.

  고려대학교학생들이 시내에서 한바탕 ‘데모’라는 것을 하고 학교(안암동)로 돌아가다 동대문 시장 앞에서 자유당의 사주를 받은 정치깡패 이정재가 풀어놓은 깡패들이 고대생형님들을 무작위로 난타를 해 수많은 학생이 죽거나 다쳤고, 울화가 치솟은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합세하여 동대문경찰서를 불살랐다고 했습니다.

  학교정문에서 보았던 불기둥이 바로 동대문경찰서가 불타는 장면이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날(4.19혁명일) 학교에 가 보니 정문은 굳게 닫혀있고 무기한 휴학을 한다는 안내문이 게시되어 정문을 막고 있었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공부에 목숨을 걸던 시절도 아니고 공짜로 무기한 방학을 한다니 어린 소견에 얼마나 신이 났겠습니까?

  그날부터 왕십리 성동경찰서 4거리부터 을지로6가 간의 길을 헤매며 시내에서 트럭을 타고 머리에 흰 붕대를 감고 태극기를 휘날리며 “이승만 물러나라!”와 “독재타도!”를 외치는 어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더러는 시내로 진군하는 한양대학교 형님들에게 잔돌을 주어다 주는 심부름을 하며 일주일 정도를 보냈습니다.

  드디어 4월 26일 이승만은 영언지 한국말인지 분간이 안 되는 어눌한 말로 “하야”라는 것을 발표하고 낙산 밑 이화장에서 얼마인가 머물다 이역만리 화와이로 추방을 당했습니다.


  비록 4.19혁명의 최대접전지 문안의 데모대에는 참여를 못 했지만 변두리 왕십리 거리에서 들러리는 섰습니다.

  그런 환경과 추억 속에서 자란 제가 어찌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의 독재에 환호하는 것은 고사하고 고운 눈길이나마 보낼 수가 있겠습니까?

  나이도 있고 어버이연합에 머리통 하나 보태고 한 두 시간 태극기 흔들어대며 그들이 박수 치랄 때 박수쳐 주면 뒷골목으로 들어가서 봉투를 나누어 주는 것을 왜 모르겠습니까만 당장 굶어 죽을지언정 어찌 그 짓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어쭙잖은 글로 그들이 요구하는 연설문을 써 주면 칙사대접 받으면서 거들 먹 거릴 수도 있겠지만 일본도에 목이 당장 떨어질지언정 어찌 그 짓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 어릴 때 추억이 자연스럽게 저를 촛불시위대에 머리통 하나를 보태게 했고, 저들의 표현을 빌리면 ‘전문 시위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관절염으로 무릎이 시원찮고 어릴 때 하도 굶고 자라서 그런지 체격도 작달막하고 힘도 별로 없어 앞에 서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며 맞서는 것과 같은 것은 제 몫도, 적성도 아닙니다.

  시위대의 주변을 서성이며 시위가 전개되어가는 것을 한 발 떨어져서 조망을 하고, 시가행진이 시작되면 주변에서 박스 판때기나 스티로폼 판을 하나 주어 그날의 상황과 어울리는 짤막한 격문을 써서들고 지친 시위대에게 힘들 솟게 하고, 가슴을 서늘하게 하고, 웃음을 짓게 하는 것이 제 소임입니다.

  그러다가 너무 기가 막히고 울분이 치솟는 일을 당하면 격문을 경찰의 눈  앞에 들이대다 몇 번 엮여 들어가 난생처음 검찰과 판사를 짓씹으며 재판이라는 것도 받아보고 없는 돈에 벌금도 여러 번 물어보았습니다.

  비록 못 생겼고 정국이 돌아가는 내막을 깊이는 모르지만 아내는 저의 그런 행동을 이해하고 벌금 내는 것에 군소리를 안 하고, 혹시라도 벌금을 안  내서 못난 남편이 감방살이를 할 까봐 벌금딱지가 배달되면 저도 모르게 아내가 벌금을 대납하여 줍니다.

  그러고는 제가 집회하러 나가면 “애국질”하러 나간다고 합니다.

  제가 하는 행동이 “애국질”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 말 듣는 것이 과히 기분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때 고대생들을 무더기로 순국하게 했던 이정재는 소대문형무소 교수대에 목이 매달려 죗값을 치렀고, 저는 오늘도 살아 이 짓거리를 하고 있습니다.


  촛불시위에 나오시는 어머님 아버님들!

  가끔가다 초중학교 다니는 자녀들의 손을 잡고 나오십시오!

  그리고 격렬한 시위 현장은 피해 평화적으로 시가행진을 할 때 자녀의 손을 잡고 오순도순 같이 따라 걸으며 어른들이 왜 이러고 있는지 자녀에게 다정하게 설명을 하여 주십시오!

  그보다 나은 역사교육은 없습니다.

  그보다 나은 산교육은 없습니다.

  그 자녀, 평생 그 기억을 잊지 않을 것이며, 성공과 출세여부와는 별개로 일생을 올곧은 사람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부모로부터 그런 산교육을 받고 자란 어린이가 뒷날 형편이 궁하다 해도 어찌 <어버이연합>이나 무슨 <여편네 연합>같은 데를 기웃거리겠습니까?


  비록 우리세대는 이렇게 살다 간다 해도 어찌 우리의 자식들에게까지 이런 세상을 물려줄 수가 있습니까?

  그들만은 밝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아가도록 해야 할 것이 아닙니까?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산교육을 시켜 주십시오!

  학원에서 수 천 시간 닦달을 당하는 것 보다 훨씬 나은 교육이 될 것입니다.


  아- 어머니!

  못난 이 자식은 오늘도 이러고 있습니다.

IP : 119.149.xxx.55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ㅇㅇ
    '14.7.29 4:58 PM (110.70.xxx.92)

    이런 좋은 글에 왜 댓글이 없나요?
    너무 재미난 옛날 얘기 한편같아
    슬며시 미소지으면서 읽다가
    뭉클 해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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