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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여러어머님들! 이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꺾은붓 조회수 : 792
작성일 : 2014-07-25 22:26:22
 

             여러어머님들! 이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구체적인 날짜와 시간과 통계수치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어서 인터넷을 검색하여 비교적 정확한 자료를 인용치 않고, 필자의 머릿속에 있는 대로 정리를 하니 혹시 틀리거나 정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더라도 그 점은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한강인도교 폭파!

  6. 25가 발발하자 이승만은 KBS 녹음 팀을 불러 “정부(이승만)는 서울에 남아 국군과 서울시민과 함께 서울을 지킬 것이니 군•관•민이 힘을 합쳐 서울을 사수하자!”는 요지의 녹음을 하고, 그 즉시 시민들의 눈을 피해 몰래 서울역으로 달려가서 대구로 도망을 칩니다.

  그 시각은 인민군이 국군의 저항에 막혀 38선을 넘어 그리 많이 남하를 하지 못한 시각이었습니다.

  너무 멀리 도망간 것을 염치없게 생각한 비서진이 이승만을 달래 다시 대전까지 기어 올라와서 KBS로 하여금 미리 녹음하여 두었던 것을 이승만이 서울에서 생방송으로 낭독을 하듯 라디오 방송을 하게 했습니다.

  그 시각 한강에 둘뿐인 다리(①기차 철교, ②인도교 ; 오늘날에는 한강대교로 부름)중 차량과 사람이 다닐 수 있는 한강인도교는 남부여대하여 서울을 빠져나와 특정한 목적지도 없고 반겨줄 사람도 없는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는 피난민 행렬로 다리가 미어터질 지경이었습니다.


  그 순간 꽝!

  한강인도교를 타고 인민군이 남하할 것을 염려한 정부는 육군공병감 모 대령에게 무조건 인도교를 폭파할 것을 명령합니다.

 명령을 받은 군은 망설이고 자시고 할 것 없이 피난민이 다리에 접근을 못 하도록 통제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피난민으로 미어터지는 한강인도교 폭파를 단행합니다.

  폭파 순간 몇 사람이 다리와 함께 수장이 되었는지는 정확한 통계도 없고, 가장 적은 수치가 800여명에서, 많게는 1만 명 이상으로 추정을 할 뿐입니다.

  그 당시는 현재와 같이 인구조사나 주민등록이 정확치를 않았고, 또 피난은 한 사람 한 사람 가는 것은 드물고 대개가 일가족이 집단으로 피난을 가기 마련이기 때문에 전쟁이 끝나고 한강다리 폭파로 수장된 인원의 집계를 내려고 해도 일가족이 모두다 수장이 된 경우는 하늘만 알고 인간의 힘으로는 정확히 알아낼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6.25가 발발한지 3년 1개월 2일 만에 반듯한 직선이던 <38선>은 서쪽은 남으로 내려오고 동쪽은 북으로 밀고 올라간 구불구불한 155마일의 <휴전선>으로 이름을 바꿔 분단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9.28서울 수복과 휴전이 되고 한강다리 폭파에 여론이 들끓자 이승만은 다리를 폭파한 공병감을 희생의 제물로 삼아 사형을 시켜 여론을 잠 재웠습니다.

  그리고 저는 도망가고 이승만의 “서울사수!” 거짓방송에 속아 피난을 가지 않았거나, 피난 갈 힘도 없어서 서울에 남아있다 인민군이 내려왔을 때 그들에게 찬물 한 바가지라도 건넨 시민은 무조건 “부역자”라는 딱지를 붙여 무차별 살육을 자행합니다.


  해방이후 이승만이 자신의 종신집권기반을 다지기 위해 학살한 양민의 총계가 103만 명이라는 자료가 있지만, 6.25전쟁기간 중 한강다리 폭파가 이승만이 저지른 대표적 만행이고, 미군이 저지른 대표적 만행이 <노근리 사건>입니다.

  얼마 전에 사형을 당한 공병감의 유가족이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국가를 상대로 재심을 청구하여 “무죄”판결을 받아 내기는 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때 공병감의 판단도 썩 옳았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한강다리 양안에 군을 세워 통행인을 엄격히 차단하고, 긴박한 상황임으로 군의 제지에 불응하는 몇 사람은 본보기로 희생을 시키고서라도 피난민이 다리를 다 빠져 나가고 나서 폭파를 했어야 옳았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폭파명령에 불복종을 하고 명령불복종 죄로 사형을 당하였더라면 뒤에 재심을 청구하여 다시 무죄판결을 받음과 함께 서울시민에게는 영웅으로 오래오래 기억되었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6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르고!

  한강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평화재향군인회>라는 단체에서 한강다리를 폭파한 그 만행을 잊을 길이 없고, 그때 돌아가신 서울시민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한강대교 중간에 있는 섬(중지도)의 남측 다리 밑에서 조촐한 위령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말이 위령제지 뜻있는 시민 대여섯 사람이 신문지 위에 수박 한통, 막걸리 몇 병 따라 올리고 절 올리는 게 그마나 60여년 만에 정부의 잘못을 빌고, 억울한 넋들을 위로하는 위령제입니다.

  필자도 재작년에 그 위령제에 참여를 하였습니다.


  여기서 잠간 중지도를 개략적으로 설명하겠습니다.

  용산에서 영등포를 향하여 다리를 1/2쯤 지나면 다리 한 가운데 있는 여의도 면적의 1/10쯤 되는 섬이 중지도입니다.

  다리 왼편(상류)쪽의 면적이 좁고 거기에는 수양버들 몇 그루와 잡초가 제멋대로 자라고 다리에 바짝 붙어 헌병초소가 하나 있으나 군이 상주하여 지키지는 않는 것 같았습니다.

  박정희가 1961. 5. 16미명에 쿠데타를 일으킬 때 그 다리로 탱크와 군을 몰고 서울로 올라왔고 그 시각 헌병초소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헌병사병이 쿠데타 군을 저지하고 검문을 하자 박정희는 물문곡직 그 헌병을 사살하고 서울로 진입 시청 옆에서 검은 안경을 끼고 도끼눈깔로 국민을 째려보는 것으로 쿠데타를 성공시킵니다.

  헌병 한 명을 사살한 것은 들은 얘기라 정확한 것인지는 자신을 못 하겠습니다.

  그리고 반대편(강 하류 쪽)은 박원순 시장시절에 주말농장을 조성하여 작은 밭으로 나뉘어져 반듯하게 정리된 주말농장이 있습니다.

  면적은 상류 쪽 보다 하류 쪽이 훨씬 넓고, 상류 쪽은 작은 야산 같은 봉우리를 이루고 있고 하류 쪽은 넓은 들판과 같습니다.


  재작년 필자가 그 위령제에 참여하고 중지도를 대략 살피고 돌아와서 서울시에 바로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하류 쪽 평지를 여러 조각으로 쪼개 주말농장을 하고 있는 들판에는 우리의 고유 재래식 농사를 짓는 초가집 한 채를 짓고, 논밭을 조성하여 소와 쟁기로 논을 갈고 손으로 모를 내는 등 우리고유의 농사방법으로 농사를 짓는 농지로 조성을 하고 나서, 서울시에서 희망 농가를 엄선하여 시민과 학생들에게 우리 고유의 농사방법을 견학하는 장소로 만들고,

  건너편 상류 쪽에는 한강교 폭파당시 수장된 원혼들을 추모하는 추모공원을 조성하고, 가능하다면 헌병초소 앞에는 박정희 쿠데타 군을 저지하다 순국한 헌병사병의 동상이라도 세우자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헌병 한 명이 쿠데타 군에 사살된 것이 분명하다면 그는 혈혈단신으로 내란병력을 저지하다 순국한 용사인 것입니다.

  물론 제안서는 이렇게 간략하게 기술한 것은 아닙니다.

  한강교 폭파의 역사적 실상과 희소하지만 남아있는 자료를 정리하고 그날의 참상 사진 등을 전시하고 국가의 만행을 역사에 고발하는 내용을 새긴 비석이나 입간판 등을 세우고, 헌병의 동상 앞에는 그 헌병이 순국한 사연을 기록해 놓자는 내용이 있고,

  건너편 재래농지에는 우리의 전통 농사방법을 상세히 설명하는 입간판을 세워 어린 학생들이 우리의 조상님들이 어떻게 농사를 지으셔서 오늘의 우리가 있게 되었는지를 가르치자는 내용들입니다.

  그리고 한강교 폭파 위령제는 정부주관으로 하는 게 옳겠지만 이 정권에서 그런 것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니, 우선은 서울시에서라도 서울시민이 희생된 것이니 서울시주관의 위령제를 지내다가 언젠가는 국가의 위령제로 격상을 시키자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울시의 답변

  “안 된다!”였습니다.

  그 중지도는 한강다리가 폭파되고 나서 다리를 다시 건설할 때 인공으로 만든 인공 섬이어서 역사적인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고, 헌병동상과 건너편 재래농사단지와 서울시주관의 위령제에 대한 답변은 일절 없었습니다.

  조금은 허탈하고 안타까웠습니다.


  설사 중지도가 인공 섬이면 어떻습니까?

  이 세상 어디에 있는 추모공원이 되었던, 전적비가 되었던 인공이 아닌 것이 어디 있습니까?

  중지도가 없었다면 조그만 인공 섬을 만들어서라도 추모공원을 조성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정부가 양민에 대하여 저지른 만행을 기록 보존하고 널리 알림으로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겠끔 하는 교훈이 될 터인데도 말입니다.


    올해에도 6월 28일 오후 3시 평화재향군인회에서 추모제를 올렸습니다.

   필자도 꼭 참여하고 싶지만 그날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인 박근혜정권의 난정에 저항하는 민주노총의 집회와 시위가 그 시간과 겹쳐 그것을 응원하느라고 참여를 못 했습니다.


  필자와 한강인도교의 인연

  고향인 충남당진에서 8살인지 9살 때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어머니 손을 잡고 서울 왕십리로 올라왔습니다.

  처음으로 버스와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신길동 어느 친척집에 들러 점심을 얻어먹고 영등포에서 전차를 타고 노량진에서 내려, 한강대교를 걸어서 건너 , 다시 용산에서 전차를 타고 왕십리에 도착하여 그 때부터 서울시민이 되었습니다.

  그때가 서울시민이 50만(?) 정도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얘기를 하면 서울이 고향인 사람도 다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영등포에서 전차를 타면 막 바로 한강다리를 건너 왕십리까지 갈 수가 있는데 왜 전차에서 내려 한강다리를 걸어서 건너느냐는 것입니다.

  예, 바로 그겁니다.

  그 당시가 1955-6년경으로 한강철교는 어찌되었는지 모르겠고, 6.25때 폭파된 한강인도교는 아직 재건설이 안 되어 목제보트(미군용 보트였을 것 같음)를 길이로 2열 배열을 시키고, 그 위에 합판을 깔아 부교로 우선 걸어서 사람을 통행시켰습니다.

  출렁거리는 그 부교를 어머니 손을 잡고 건너온 기억이 생생한데 사람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하니 증거를 들이 댈 방법이 없으니 진실이 거짓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당시는 너나없이 가난했던 시절로 전차표 한 장이 아쉬웠던 때로 바로 한강다리 옆에 살지 않는 한 한강다리가 폭파되고 나서 어떻게 재건설 되었는지는 상세히 모르니 그런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학교 1학년 해맑은 어느 날

  뚝섬에서 통학하는 한반 친구가 밤중에 한강 하류에서 총성이 나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헛소리를 들은 것이려니 했습니다.

  오전수업이 끝나자 세상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군사혁명>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박정희의 5.16내란이었습니다.

  그때는 오늘날과 달리 이렇게 정보의 유통이 느렸습니다.

  한반 친구가 밤중에 들었다는 총성이 바로 인도교 초소 헌병이 박정희반란군을 저지하다 사살당하는 총성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서울이 이렇게 한산하고 조용했습니다.

  한강대교에서 쏜 총소리가 멀리 뚝섬(현 성수동)에서도 한강물위를 타고 전파가 되어 들렸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대포를 쏴도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중지도에 재래농사단지 조성은 몰라도, 추모공원은 꼭 건립하였으면 좋으련만!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IP : 119.149.xxx.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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