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당내에서 40여명에 불과했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찬반 토론만 20여차례 한 일입니다. 모든 의원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냈었는데 유시민에게 꼬득임을 당했다기엔 김근태 본인의 지적 수준을 너무 무시하는게 아닐까 싶어요. 어차피 유시민 까들이 김근태의 입장이 어떻게 되든 알바 아니지만.
그만큼 이상과 현실. 그리고 외교 방법론에서 가장 복잡했던 사안중의 하나입니다.
무조건 찬성했던 보수파와, 가장 강력했던 찬성론자인 정동영 계열의 입장. 그리고 무조건 반대했던 임종석등의 486 강경파야 원칙이 간단하니 김근태와 유시민이라는 복잡했던 사람들의 입장만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이런 이들의 고민을 생각하다 보면 찬성 반대 모두 이해되기 마련이니.
01년 9월에 911 테러가 일어났고. 한달뒤 부시 정부는 알카에다를 지목한 후 배후지인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합니다.
이런 안보정국 속에서 높은 지지로 연임에 성공합니다.
그리고 비둘기파인 파월이 실각하고 콘돌리자 라이스-딕체니-럼스펠드의 네오콘이 부시정부의 정책을 독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는 UN의 조사에도 불구하고 이라크를 침공한 부도덕한 일을 저지른게 사실이고 세계 평화를 위해선 돕지 않는게 옳은 일이었을겁니다.
문제는 한반도의 뇌관 역시 폭발 직전이었다는데 있습니다. 부시가 취임 직후 북한의 재래식 무기를 트집잡고, 북한과 부시정부 모두 제네바 합의를 무시한채 꼼수-경제재재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이라크-이란-북한을 악의 축으로 부른 일도 있었습니다.
이라크전을 성전이라고 표현했듯이, 이란과 북한도 손볼 대상으로 생각하고 압박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전엔 협조하고 북한 문제는 남한이 목소리를 내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파병은 하되 비전투병을 안전한 지역에 파병하고. 대신 북한에 대한 군사적 침공은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부시와의 기자회견에선 부시측 외교팀이 불쾌함을 표시했던 북한에 대한 유화적 제스처를 다시금 요구했고.
독도-과거사 문제로 트러블이 있었던 고이즈미와도 연계해 선제적 무력 행사를 반대한다는 공동 입장을 표명해 콘돌리자 라이스의 선택지를 줄여버린 일도 있었습니다.
미군의 재배치에 협조하는 대신 전시 작전권을 환수하는데 합의한 일이나 한미 FTA를 협상하며 개성공단의 자유무역지대 인정을 요구한일은 다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 미국의 방침에서 우리와 상관이 적은 일은 요구를 받아들이는 대신 우리와 관련이 있는 남북 문제는 우리가 목소리를 강하게 내서 소외되지 않는다- 전 이 방침이 맞다고 생각합니다만.
정부가 아닌 국회의원들의 경우 자연인으로서의 입장과 지역구를 가진 정치인으로서의 입장. 정부가 추구하는 국익을 판단해야 하는 입장이 서로 충돌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근태의 경우 최대한 당론을 융합해서 통일된 선택을 하자며 여러번 회의를 열었고, 이런 반대 입장을 드러내야 정부가 미국 요구를 따라주는게 얼마나 의미깊은 일인지 알수 있다는 입장이었습니다만 결국 반대했습니다.
유시민의 경우 당론으론 정부와 대통령이 추진한 일이기에 찬성해야 하지만 개인의 소신때문에 반대투표를 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유시민의 경우 자연인으로서의 입장을 접고 노무현을 옹호한 일이 정말 많습니다. 그래서 고마워 하기도 하고 그래서 다음 세대의 정치인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대구에서 노무현이 그렇게 비난을 받아도, 토론에서 노무현과의 관계가 있는데 대구에 왜 나오느냐는 공격을 받아도 내 정치적 아버지가 노무현인데 밖에서 욕을 먹고 다닌다고 내가 같이 할순 없다는 말을 할때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자기 입장보다 노무현의 입장을 우선한 결과 -말을 이리저리 바꾼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수 없고 이 지적은 언제나 발목을 잡을겁니다.
안희정이 노무현의 부채를 해결하려다 감옥을 간 것과 달리 더 안티들을 모으기 쉬운 행동이기도 하고... 당장은 더 돋보이는 위치에 있기에 질투를 모으는 일이기도 했으니까요.
유시민은 팀으로 정치를 하지 못했다는 비판은 타당하지만, 유시민처럼 최선을 다해 이슈파이팅에 나선 적이 없는 이들이 유시민의 인기를 질투하고 왜곡하는건 참담한 일일겁니다.
진보정당으로 갈때도 대통령 후보가 욕심나서 갔다는 일부 486들-그리고 그에 영향을 받는 기자들의 지적은 한심하더군요. 그렇게 정치를 모르고 선동을 해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