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라는 가정은 별로다
혼자 꾸궁쳐둔 맘에서나 일어날 일이다
후회되는 상황 전으로 옮아가 보기좋게 한판 뒤집기를 해도 그건 생각속에서나 일어나는 찰나다
그런데도 "만약" 이라는 미궁속으로 빨려들어가
부족한 지금의 현실을 상념으로 채운다
그렇게 한바탕 말도 안 되는 시간여행을 하고 나면 위안도 된다
불가능한 장애를 뛰어넘는 건 환타지라야 가능하니까 말이다
요즘 불쑥불쑥 "그때 만약"...을 되뇐다
살아 보니 알겠다
그 결정적 순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보잘것 없고 얼마나 가벼운 타이밍에 시작되는지를...
부재 중 전화 한 통이 내 인생을 바꿀 기회였단 것을
그 사람과의 식사 거절이 평생 있을까 말까 한 귀인을 놓쳐버렸다는 것을
마지막 그 말은 입에 담지 말아야 했음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얼굴을 감싸쥐고 와락하게 하는 순간들이 있다
운명이 갈라지는 길은 너무 평범하고 하찮다
동전 한 닢의 앞뒤는 던지는 자의 몫이다
게다가 후회를 전복시킨 마지막 결말은 언제나 꿈같은 나의 승리와 함께다
너무나 현명하고 지혜로우며 쿨하기까지 하다
그림을 지우고 다시 그리느니... 전혀 다른 그림으로 만들어내는 건 오히려 쉽다
뭐 하나 불필요한 감정은 없다고 본다
분명 끄나풀에 끌려 밖으로 튀어나왔을 테니까
만약이라는 가정을 지나 내가 왜 그곳으로 가려할까에 미치면
도돌이표는 멈춘다
감정을 헤매는 건 시간 낭비라 단정했던 적이 있다
뭔가에 끌려가는 기분 자체가 자존심을 건드렸다
급하게 봉했다
삐져나온 실오라기 하나가 언제나 문제였고 지저분하게 물고늘어졌다
되짚어가다 보면 만나게 된다
내가 정말 무엇을 피하고 싶었는지
8살에 받은 상처가 36에 찾아온다
그 손님을 다신 받지 않으려면 내 안으로 들여야 한다
당분간 '만약"에 빠져 공든 탑 무너진 내 회한을 위로하고 싶다
깨끗한 이별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