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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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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인생 어쩌면 좋을까요?

답답해서 조회수 : 3,579
작성일 : 2014-07-02 23:15:00
철들고 나서 한번도 아버지를 인정한 적이 없어요.  자라는 내내 단칸방 신세를 못면할 정도로 가난했던게 직접적인 이유이긴 했지만, 더 끔직했던건 한가족의 가장이라는 사람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가져본 적이 없고, 사기치고 도망다니면 빚쟁이들이 집으로, 제 학교로 찾아오는 그런 상황이었죠. 자존심 하나로 버틴 악몽같은 성장기. . 무슨 일만 생기면 사라져서 며칠이고 몇달이고 안나타나는 비겁함의 표본 같은 사람을 부모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저런 인간하고 이혼하지 않는 엄마도 이해 안됐어요.

아마 제가 이제껏 결혼 안한 이유 중 하나에 이런 성장배경도 있지 않나 해요.  

치매 할머니 수발해 가며 엄마는 혼자 동동이면서 우리를 키웠지만 딱히 독하지도, 능력이 있던것도 아니라 학교 등록금 한번 제때 못내면서 정말 힘들게 살았어요.  그런 날들을 못버텨낸 동생은 어릴때부터 방황하다 결국 나이 마흔이 되도록 제밥벌이도 못하네요. 

어찌 어찌 저는 대학 졸업하고 기반을 잘  잡았지만 대학 졸업할 무렵에 아비라는 사람은 또 사고치고 잠적해서 이번엔 몇년을 잠적했고 그때부터 가족 부양은 온전히 제 몫에다 늦깍이로 삼류대학 들어간 동생 등록금 용돈까지 다 댔죠.

그러다 제가 외국에 몇년 나가 있었는데 가기전 엄마한테 첨으로 마련해 준 전셋집에 저 떠나기 무섭게 나타나서 은근슬쩍 빌붙는 아비의 모습에 전 도무지 분을 삭이지 못했어요. 엄마는 악한 사람은 아니니 용서하자고 제게 빌었지만 전 도저히 그럴수 없었어요.  다행히 저는 이미 독립했으니 얼굴 자주 마주칠 일이 없었고 어쩌다 보게되도 전 말한마디 건네지 않았죠. 

모진 년 독한 년 소리를 들었지만, 그때부터 최근까지 십여년을 악몽에 시달리다 흠칫 깨는 날이 많았어요. 아비가 전세 보증금 (나중엔 엄마 집 사다드린 후엔 집문서) 담보로 잡혀서 다 들어먹는 그런 꿈을 수도 없이 꾸면서, 어릴적 트라우마가 이렇게 평생을 따라다닐수도 있다는걸 알았죠. 

그러다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남은건 아버지와 동생. 이 무슨 업보인가 싶었지만 돌아가신 엄마를 위해 그래도 기본은 해야겠다 맘을 먹고 엉성한 가족 흉내를 내며 살고 있는데 최근에 아버지 병치례를 몇달 했어요. 자식이라는게, 가족이라는게 뭔지, 사경을 헤매니 매일 아침저녁으로 병원에 안가볼수 없더군요. 회사일도 당연히 지장 많았구요. 

대학병원을 거쳐 요양병원에 입원시켰는데 경제적 부담도 부담이고 ( 몇달간 거의 이천만원이 나갔네요) 치료 가능한 병이 아니라 언제고 이 사단을 겪을수 있답니다. 이번에 고비를 넘기면 집에 가겠지만, 언제든 다시 아플수 있는 병이라 끝낼 기약도 없는거죠. 

돈은 벌면되고 다행히 그럴만한 여력도 되지만 이런 마음의 전쟁을 어떻게 버텨야 할지 막막해요. 이렇게 하는게 더 많이 잘해주지 못해 안타깝기만한 엄마의 유지 (엄마는 사실 저하고 마지막 말도 한마디 못나누고 허망하게 가셨지만)를 받드는 걸거라고 담담히 맘을 먹어보다가도 한번씩 가슴에 열불이 나요. 

가만 있어도 엄마 생각에 눈물이 흐르고, 병원에 기계적으로 갔다 화난 표정으로 한숨만 쉬다 오는 제가 가엽기도하고 짜증나기도 해요. 인생이 저당 잡힌 느낌이 이런걸까 싶고. 

이 상황을 계속할수 있을지, 해야 한다면 스스로를 어떻게 달래야 할까요? 하도 답답해서 이밤에 주절거려 봅니다. 
IP : 211.36.xxx.20
9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과연
    '14.7.2 11:18 PM (178.191.xxx.98)

    엄마의 유지일까요? 차라리 엄마의 업보겠죠. 그걸 왜 원글님이 짊어지려하나요?
    엄마 인생 엄마대로 끝내세요. 도돌이표 하지 마시구요.

  • 2. 백림댁
    '14.7.2 11:19 PM (84.191.xxx.146)

    님이 굳이 돌보지 않으셔도 아버지는 기초생활보장지원 대상자에 들어가시는 듯 하네요.

    그렇게되면 병원비도 무료이고 주거비+생활비 수십만원 정도는 지원이 됩니다. 추석과 설에는 명절지원금도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3. 어쩌나
    '14.7.2 11:35 PM (110.70.xxx.134)

    원글님!
    마음 아프네요.
    저라면 원글님처럼못할 것 같아요

  • 4. 대견해요!
    '14.7.2 11:37 PM (221.151.xxx.174) - 삭제된댓글

    댓글 달고 싶어서 로긴했어요.
    어린 나이부터 집안에 등불 역할을 하며 살았군요.
    어른 아이로 자랐을 원글님의 어린 시절 그 아이를 안아주고 싶네요.
    그래도 똑소리나는 원글님이 있어서 어머니는 든든하셨을 것 같아요.
    가슴에서 열불이 나는 원글님에게 제가 뭐라 말할 수 있을까요?
    그저 원글님이 부디 조금 더 편안하기를~
    대견해요^^

  • 5. 저도
    '14.7.3 1:19 AM (125.186.xxx.65)

    원글님, 잘 이겨내고 살아오신거, 너무 대견하네요!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 노릇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우셨을까요....
    이제, 님을 위해서, 나를 가장 중심에 두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세요.
    부모는 낳은 이상 책임과 의무가 반드시 있는 것인데.....
    아버지에게 최소한만 하세요.
    아버지대신 가장의 의무를 짊어진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괴로운지 전 제 남편을 통해 알아요.
    아주아주, 기본 만 하세요.

  • 6.
    '14.7.3 5:08 AM (122.36.xxx.75)

    나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을 버리세요
    나아니어도 살아져요 ‥내가 다해야 된다는 생각도 버리시구요
    마음의짐 내려 놓으시고 나를 위해 사세요
    힘내세요

  • 7. 둥이
    '14.7.3 8:31 AM (211.229.xxx.53)

    원글님과 아주 비슷한 사례로 어떤 철학자에게 상담을 한 내용이 있는데, 원글님이 꼭 들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여기 82쿡에 싫어하시는 분들이 많은거 같아서 좀 신경은 쓰이는데, 꼭 한번 들어보세요
    팟빵 들어가셔서 벙커 1특강 들어가셔서
    강신주의 철학 상담 들으시면 되요
    원글님의 사례 상담 내용이 몇번째 에 나오는지
    기억이 안나는데,원글님이 꼭 꼭 들어보셨으면 해요
    어떻게 살아야할까요? 에 직설적으로 해답을 (상담을) 주는 내용이었어요

  • 8. 콩민
    '14.7.3 8:49 AM (115.143.xxx.50)

    인생이 어떻긴요... 너무 훌륭하네요...존경합니다

  • 9. 윗님..
    '14.7.3 9:43 AM (1.222.xxx.115)

    위에 백림댁님 잘못 아시고 계세요.
    자식이 소득 있을 경우에, 일정 금액 이상이면 부모가 기초생활수급 대상이 안되어요.
    이 경우엔 원글님이 소득이 어느 정도 되시기에 불가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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