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표창원] 나쁘지만 강한 가해자와 동일시

ㅇㅁ 조회수 : 1,774
작성일 : 2014-06-15 21:53:06

[표창원의 단도직입]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사회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100&artid=201405272...

범죄나 사고 자체보다 주변인들의 부적절하거나 몰지각한 언행 때문에 발생하는 ‘2차 피해’, 혹은 ‘2차 트라우마’가 더 심각할 수 있다. ‘2차 피해’는 피해자나 유가족에게 일어나는 독특한 심리적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최초의 충격 이후 피해자들을 가장 먼저 사로잡는 것은 ‘도대체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겼지?’라는 ‘의문’이다. 그런데 이 의문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조사나 수사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피의자나 관계자들은 숨기고 감추고 회피하기 일쑤기 때문이다. 이는 곧 피해자의 ‘분노’ 감정을 촉발시킨다. 특히 분노를 쏟아부을 특정 대상이 확실하지 않은 경우 이 분노는 ‘모두’를 향하고, 때로 예상치 못한 방법과 상황에서 돌출하기도 한다.

분노와 거의 동시에 엄습하는 것이 ‘의심과 경계’다. 경찰이나 언론, 심지어 자원봉사자까지 모든 사람이 ‘가해자 편’ 같아 보인다. 이와 함께 ‘다 내탓이야’라는 불합리한 자책감이 발생한다. 이러한 복잡한 심리가 뒤섞이며 피해자들은 돌발적인 감정표출을 하다가 침울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겉으로 공격성과 분노를 보이는 피해자들의 내면은 무척 불안하고 취약하다. 피부를 모두 벗겨낸 생살처럼 아주 작은 접촉에도 심한 상처를 입거나 치명적인 감염을 당하기 쉽다. 복잡하고 독특한 ‘피해자화 현상’은 1940년대 독일에서 ‘멘델슨’과 ‘헨티히’의 연구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950년대엔 영국의 ‘프라이’에 의해 국가적인 대책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후 여러 나라에서 피해자보호법과 피해자헌장 등을 제정했고 1980년대에 이르러 유엔에서도 결의안이 채택된다.

우리나라 역시 일본의 뒤를 따라 피해자보호 제도를 도입했지만 형식에 불과했다. 오히려 피해자의 상처에 소금을 뿌려대는 ‘2차 가해’ 언행들이 끊이질 않는다. 성폭행 등 사건에서 종종 나타났지만, 세월호 참사나 5·18 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들에게서 두드러진다. 피해자를 괴롭히며 ‘2차 피해’를 유발하는 가해자들에겐 ‘공감능력 부족’이란 질타가 쏟아지지만 이들의 이면에 있는 심리적 원인을 이해하지 못하면 ‘피해자를 두번 죽이는’ 사회현상은 고칠 수 없다. 집단적으로 피해자와 소수자 등 약자를 괴롭히는 이면에는 ‘가해자와의 동일시’ 현상이 자리 잡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뿌려진 이 ‘악의 씨’는 당하기만 하는 피해자의 모습과 동일시할 때 엄습하는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퍼지기 시작했다. ‘나쁘지만 강한’ 가해자인 일제와 자신을 동일시할 때 ‘생존’과 ‘안전’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지는 집단적 경험을 했다. 그 경험은 전쟁과 군사독재를 거치며 거듭 ‘강화’되어 ‘내면화 과정’을 겪게 된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강한 가해자와 동일시’하라고 가르치는 ‘이상하고 잔인한 사회’가 되었던 것이다. 국회의원, 교수, 목사, 고위 관료 및 대학생 등 배울 만큼 배우고 알 만큼 아는 사람들마저 무심결에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2차 피해’를 야기하는 이면에 숨어있는 ‘집단적 정신 병리’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개별적인 ‘2차 피해’ 유발 가해자들에 대한 엄격한 처벌과 제재, 법과 제도의 개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국가적 태도와 합의’다. 독일이 가장 좋은 예다. 역대 총리들이 끊임없이 히틀러 나치의 범죄와 가해에 대해 사죄하고 히틀러와 나치 찬양을 범죄화하면서 ‘강한 가해자와의 동일시’ 그 자체를 금지하고 통제한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국가적으로 ‘강한 가해자’ 일제, 그리고 군사독재를 인정하고 찬양하고 지지해 온 모든 역사, 정치, 법, 경제, 사회적 제도와 관행을 뜯어 고쳐야 한다. 헌법 혹은 국가보안법을 개정해서라도 일제강점과 친일, 군사독재 찬양을 금지하고 범죄화해야 한다. 이러한 국가적 기조와 태도의 변화가 전제되어야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괴물 같은 우리 사회가 ‘정상화’되는 과정을 시작할 수 있다.

IP : 218.239.xxx.182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ㅇㅁ
    '14.6.15 9:53 PM (218.239.xxx.182)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100&artid=201405272...

  • 2. 아...
    '14.6.15 10:31 PM (14.47.xxx.165)

    ‘나쁘지만 강한’ 가해자인 일제와 자신을 동일시할 때 ‘생존’과 ‘안전’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지는 집단적 경험을 했다. 그 경험은 전쟁과 군사독재를 거치며 거듭 ‘강화’되어 ‘내면화 과정’을 겪게 된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강한 가해자와 동일시’하라고 가르치는 ‘이상하고 잔인한 사회’가 되었던 것이다.

    헌법 혹은 국가보안법을 개정해서라도 일제강점과 친일, 군사독재 찬양을 금지하고 범죄화해야 한다. 이러한 국가적 기조와 태도의 변화가 전제되어야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괴물 같은 우리 사회가 ‘정상화’되는 과정을 시작할 수 있다.

    -----------------------------------------------------
    글 옮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본 표교수님 글 중 가장 명문입니다.
    근원악을 몰아 낼 수 있는 핵심입니다.
    이런 사회가 되면 숨 좀 쉬겠습니다.

  • 3. 바른 주소입니다.
    '14.6.15 10:47 PM (14.47.xxx.165)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5272040585&code=...

  • 4. 미래는
    '14.6.15 11:57 PM (125.178.xxx.140)

    감사합니다. 일부 한국사회의 병리가 설명이 되네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389166 지금 피자 먹으면 맛 없겠죠? 5 .. 2014/06/17 1,291
389165 새누리 박상은, '세월호 1번 수사대상' 되나 2 파이프라인 2014/06/17 968
389164 초등중등 영어과외 뭘 가르치면 되나요? 3 영어샘 2014/06/17 2,270
389163 광주사시는 님들....서구 아파트 추천 좀 5 광주 2014/06/17 1,608
389162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에 나오는 아이들 2 ㅎㅎㅎ 2014/06/17 2,394
389161 세월호 특별법을 위한 신문광고에 참여해주세요 2 tara 2014/06/17 1,114
389160 문재인님 사진 보고 가세요~ 9 123 2014/06/17 2,155
389159 가죽소파냄세,어찌하면 빨리 없앨까요? 1 지독 2014/06/17 1,303
389158 친정아버지가 엄마에게 스맛폰으로 음악을 보내셨는데... 4 ........ 2014/06/17 1,997
389157 아르바이트 하실분 학생 및 주부 환영 4 백사형 2014/06/17 2,382
389156 어간장/국간장/멸치액젓 맛의 차이가 큰가요?? 4 간장 2014/06/17 7,427
389155 3천만원에 뒤바뀐 당락..교사채용 비리 적발 2 샬랄라 2014/06/17 1,621
389154 노후원전 폐쇄와 탈핵문제에 야당 의원들이 나섰네요 8 키키 2014/06/17 1,108
389153 울 애가 저보고 엄마 인생에서 가족외에 가치 있는 거 찾아보래요.. 7 엄마독립 2014/06/17 2,561
389152 생리량을 늘리는 좋은 방법 혹시 있을까요? 9 임신원함 2014/06/17 5,104
389151 제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게 맞는 표현인가요? 3 레이첼 2014/06/17 4,295
389150 20년 다닌 직장에서의 갑작스런 퇴직........ 6 오래된 유령.. 2014/06/17 3,583
389149 소비를 절제하고 살림줄이는방법?에관한책 27 ... 2014/06/17 6,678
389148 매실알이 초록색이 아니고 하얗게 변했어요 5 rrr 2014/06/17 1,596
389147 박그네 입국금지 !! 2 역시 네티즌.. 2014/06/17 1,699
389146 소고기무국이 왜 쓰게 될까요? ㅠㅠ 9 미고사 2014/06/17 7,762
389145 밀대봉으로 아이를 처벌하는 중학교 16 학교 2014/06/17 1,575
389144 오십견 나을 수 있나요? 13 ㅠㅜ 2014/06/17 4,220
389143 [긴급호외발사] 구원파 장로 문X원은 문창극 동생이라는 놀라운 .. 4 lowsim.. 2014/06/17 2,142
389142 인사참사 틈타 교육감 직선제 폐지 확정한 대통령자문기구 5 세우실 2014/06/17 1,5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