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보기엔 멀쩡한 집입니다.
자상하고 잘생긴, 돈 잘 버는 전문직 남편과 똘똘하고 귀여운 아이들.
남편은 주말마다 아이들 데리고 놀러나가고 저는 맛있는 음식을 준비합니다.
속으로는 제가 좀 많이 힘듭니다.
예전에도 속이 썩어 문드러져서 여기 글 남기고 힐링 받은 적 있었어요.
완벽주의자에 컴퓨터나 차가 고장나도 다 제 탓 하는 말빨 겁나 좋은 남편이거든요.
거기에 더해서 저를 많이 억압하는 편입니다.
말다툼을 할 때 스스로도 인정했듯이 지기 싫어서 저를 꽉 눌러버리죠.
한번도 물건을 던지거나 신체적 위해를 가한 적은 없지만 정신적으로 힘들어요.
자신이 하루 종일 정말 단 5분도 제대로 못 쉬고 힘들게 일하기 때문에
제가 친구들과 노닥거리며 노는 것도 그닥 좋아하지 않구요.
남편이 그나마 좋게 생각하는 딱 2명의 전문직 친구들 정도만 만나는 것을 그나마 허락합니다.
음...이 허락이란 표현은 좀 그렇네요.
어쨌든 다른 친구들 만나는 건 그닥 기꺼워하지 않죠.
그리고 또 하나, 일전엔 이것 때문에 싸웠죠.
제가 하는 카카오스토리와 밴드를 싫어합니다.
결혼 전 싸이월드도 싫어해서 탈퇴했었는데 이제 카스와 밴드를 탈퇴하라고 합니다.
저는 지난 4년동안 바깥출입을 못 했어요. 아파서요.
그런 제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출구를 버리라고 하니 정이 뚝 떨어졌습니다.
전같으면 그러지 뭐 하며 쿨 하게 탈퇴했을텐데 이번에는 싫다고 오기부렸습니다.
사실 카스나 밴드 제대로 하지도 않습니다.
밴드 아이콘에 미확인 건수가 90개 넘게 찍히도록 들어가보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제가 밴드를 통해 동창 남자아이들과 말을 섞는게 싫다고 합니다.
저 나이 40에 아이 낳고 푹 퍼진 아줌마예요. 아파서 나가지도 못 하구요.
남편에게 날 봐. 그런 걱정 안 해도 되잖아.라고 해도 그냥 싫대요.
난 그래도 계속 하고 싶어. 이러고는 일주일째 냉전 중입니다.
저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할까요.
저 자의식도 강하고 엄청 활달했었어요. 혼자서도 잘 놀고 여럿이서도 잘놀고.
친구들 넓게 두루 만나고, 동네 가게 사장님들이랑도 친해서
대학교때도 친구들이 지역유지라고 놀렸었는데 지금은 참 다르네요.
남편과 사는게 갑갑해서 그냥 잠시 떨어져있어보자고 했었어요.
남편도 당장은 그러자 나도 힘들다 그러더니
다음날은 그냥 흐지부지 넘어가네요.
아마 아이들이 걸려서 그랬을 것 같아요.
남편도 저랑 사는게 많이 힘들거예요.
독일병정같은 남편과 달리 저는 미국히피예요.
남편은 딱딱 정돈되어 있어야 하지만 저는 모든걸 흐트러뜨리죠.
남편은 힘들게 일하면서도 아침 5시 30분~6시면 일어나지만
저는 아줌마 두고 집에서 아이 키우면서도 아침 7시 넘어야 일어나요.
이것도 그나마 남편의 끊임없는 질책에 정신 좀 차려서 그런거고 원래는 더 못 일어났어요.
학교다닐때는 그나마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없어서 제가 공부를 좀 했지요.
직업은 남편과 같은 전문직이라 헤어져도 그냥저냥 입에 풀칠은 할 것 같네요.
그나마 저의 장점이라면 편하고 부드러운 성격이요.
누구랑 만나도 친해질 수 있고 잘 이야기 할 수 있어요.
아이들도 따뜻하게 품는 편이구요.
사이 좋았을 때 남편이 제 그런 면이 고맙다고,
저더러 인품이 정말 훌륭하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