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 집에 주치의까지 두고 사냐구요?
네. 저 그런 여잡니다. 상시근무 주치의를 두고 살죠. 바로 제가 키우는 8살 수컷고양이얘깁니다.
고양이가 뭔 닥터냐구요?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댔는데, 고양이똥 3년정도 치우니 제게 고양이주치의가 생겼습니다.
8년 전 아파트 지하 주차장 보일러실 문에 끼어서 울던 생후 한달 된 녀석을 데리고 와서 키웠는데,
예전에 키웠던 개와는 달리 요 녀석은 별다른 재주는 없더라구요. 그냥 좀 활발하고 크게 운다(?) 정도.
아, 또 하나 있다면 똥쌀때 외마디 비명을 좀 잘 질러요. "아악!" 하구요. 고양이도 변비가 있나 싶어서
좀 지켜보는데, 그냥 습관인 것 같아요. 대소변은 잘만 싸거든요.(더러운 얘기 죄송 ㅜ_ㅜ)
아무튼 데려다 키운지 4년쯤 되었을까요? 어느 날 제가 싱크대 상부문을 열고 치우다가 잘못해서
그 문짝에 이마를 땋! 하고 찧었어요. 제가 "아!!!" 하고 크게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 주저 앉았죠.
눈 앞에 별이 번쩍 하더군요. 안방에 있던 남편이 놀라서 뛰어나와서 같이 한참을 수선을 떨었는데,
우리 두 사람보다 훨씬 더 시끄러운 것(?)이 있는거에요. 우리집 고양이녀석이었어요.
손으로 이마를 감싸고 주저 앉은 제 얼굴에 촉촉한 핑크색 코를 들이밀며 냄새를 맡더군요.
입으로는 계속 야웅야웅 하면서요. 그 시끄러운 기세에 수선떨던 남편도 웃고 저도 아픈 와중에도
어이없는 너털웃음이 나더군요. 한참을 저랑 같이 앉아서 제 얼굴을 들여다보며 냄새도 맡고 그러다가
제가 웃으니 기지개를 펴고 다른 곳으로 가더군요.
두번째는 욕실에서 나오던 남편이 미처 발바닥에 뭍은 물기를 완전히 안닦고 나오다가 쭉 미끄러졌어요.
또 "아악!" 하며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다리가 발레리나처럼 쫙 찢어져서 그 살벌한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데 어느 새 저보다도 빨리 달려간 고양이 녀석이 바닥에서 찡그리고 있는 남편의 얼굴을
냄새 맡으며 열심히 살펴보고 있더군요. 괴로워하며 고개를 좌우로 젓는 남편의 얼굴을 따라 지 고개도
열심히 움직이면서 말이죠. 남편은 고양이 녀석이 얼굴을 들이대고 있어서 마음껏 아파할수도 없었대요.
저게 뭘 알고 저러나 싶어서 한번은 실험을 해봤죠.
가짜로 "아!" 하며 아픈 척을 하면서 침대위에서 뒹굴고 있으니 고양이 녀석이 휙 하고
달려오더군요. 너무 웃긴 것이 늘어져 자고 있으면 우쭈쭈쭈 아무리 침 튀기며 혀를 차면서 불러도
털끝하나 움직이지도 않던 녀석인데 아프다는 비명 한마디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오는 것 있죠.
왜 그럴까,이유가 뭘까, 갑자기 어느 날부터인가 닥터(?)된 것일까? 하고 남편하고
고민해봤는데, 한가지 결론이 나왔습니다.
4살 되던 어느 겨울에 고양이허피스에 걸렸거든요. 사람으로 치면 감기 같은 것인데
치료를 안하면 죽을 수도 있는 병이어서 우리집은 비상이었었죠.
극성이다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회사에 휴가까지 쓰고선 고양이 녀석을 들쳐업고
병원을 들락날락 거렸었죠. 어느 날은 녀석의 기운이 너무 없어서 수액을 맞추고 있었는데
힘없이 수그려진 녀석의 얼굴에 제 얼굴을 대었어요. 제가 어깨위로 꼭 끌어안고 서로의 얼굴을
맞대고 한참을 있었죠. 그때 뭐랄까 좀 희한한 것이 느껴지더군요. 제 사랑이 흘러가고 녀석의 사랑도
마주 흘러와서 사랑의 물결이 서로 만난 느낌?
그 뒤부터였을 거에요.
그 전에는 늘 발치에서만 자던 녀석이었는데 꼭 제 베개를 같이 베고 얼굴을 대고 자더군요.
남편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둘째 남편이냐고도 해요. 잠든 제 얼굴에 녀석이 얼굴을 맞대고 자는 것이
너무 웃겨서 사진으로도 많이 찍어뒀죠. 남편하고보다 더 다정하다고요.
글이 많이 길어졌네요.
우리집 고양이 닥터. 꽤 쓸만하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