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우연히 검색 이런분도 다 계셨구나!싶네요.
공안과 조회수 : 2,340
작성일 : 2014-06-08 20:42:39
공병우(公炳禹, 1907년 1월 24일(음력 12월 30일) ~ 1995년 3월 7일)는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안과 의사로, 한글 기계화 운동을 펼쳤다.
본관은 김포(金浦)이며 평안북도 벽동에 유복한 집안에서 팔삭동이로 태어났다.
1938년 한국인 최초로 안과 전문 의원인 공안과를 개원한 의학 박사였으며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강압적인 창씨개명 정책에 대한 반발로 스스로 '금일(오늘) 공병우 사망'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해방 이후부터는 사재를 털어 한글기계화운동에 주력하면서 세벌식 글자판 개발과 보급에 더욱 전념했고 1949년 최초로 실용적인 기계식 타자기를 개발했다.
공병우박사는 그 무렵의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재야에서 실력을 떨치던 젊은 프로그래머였던 강태진, 정내권, 이찬진 등과 교류하였고, 이들을 지원했다.
이들은 한글문화원에서의 인연으로 훗날 한글과컴퓨터를 창업했으며, 국산워드프로세스인 아래아한글을 개발하였다.
그는 군사정권하에서 세벌식자판과 조합형코드가 IT 표준으로 정착되지 못한 현실을 안타까워 했으며 과학적으로 한글을 모두 표현하지 못하는 완성형 코드를 비판하고 조합형 코드를 지지하였으며 한글의 창제원리에 맞지 않는 네모 글자꼴의 한글 글꼴들의 획일화를 비판하였다.
그 이전에는 다섯벌식과 네벌식 글자판 타자기가 나와 있었으나 실용적인 제품은 없었으므로 공병우 타자기가 나오면서 일반에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1960년대 말 박정희 정부에서 타자기에 네벌식 글자판이 표준으로 채택되었고 1980년대 전두환 정부 때 컴퓨터에 두벌식 자판이 표준으로 채택되면서 글자판의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1995년 3월 7일, 사망했다. 향년 89세.
나의 죽음을 세상에 알리지 말고, 장례식도 치르지 말라. 쓸 만한 장기는 모두 기증하고 남은 시신도 해부용으로 기증하라. 죽어서 땅 한 평을 차지하느니 그 자리에서 콩을 심는 게 낫다. 유산은 맹인 복지를 위해 써라.” — 공병우의 유언 1995년 3월 7일
IP : 58.143.xxx.236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플럼스카페
'14.6.8 8:46 PM (211.36.xxx.159)네..이 분 유명하신 분인데^^;
지금은 모르겠지만 예전엔 삼벌식 자판 있었어요.2. ~~
'14.6.8 8:50 PM (58.140.xxx.106)공병우타자기 유명했는데..
어릴 적 친구가 다니던 공안과 그 분인 줄은 몰랐었네요 ㅎㅎ3. 破心中賊難
'14.6.8 9:00 PM (110.47.xxx.157)자판때문에 그 분에 관해서 들어는 봤습니다만,
유언이 더 ...흥미롭습니다.4. 참으로
'14.6.8 9:12 PM (175.212.xxx.244)훌륭하신 분들이 많았네요..예전에는 말이죠.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