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어깨를 두드리며
나는 그를 모른다.
급박한 상황에 아이들 등록금 만들어놨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는 걸로 봐서 가장의 책임을 다하는 사내라는 것만 안다.
그 통화 하나만으로도 그의 전부를 안다.
가정에 충실한 사내가 바깥에서 사이코패스로 지내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제 가족만 챙기고 남은 나 몰라라 하는 이기주의자도 여럿이긴 하다.
여기서의 충실하다는 말과 챙긴다는 말의 온도차는 적도와 남극이다.
당연하게도 그는 목숨을 잃었다.
도망친 선장이 젖은 돈을 말리고 있을 시간에 그는 사람들 끌어내고 엎어진 선내를 뛰어가다가 들이닥친 물에 휩쓸렸을 것이다.
사고 한 달만인 5월 16일 시신으로 발견됐다.
신체가 온전했을 리 없다.
신원확인은 아내가 아닌 형이 했겠다. 흰 천이 씌워진 시신 앞에 서는 순간 심장은 얼음으로 변한다.
들추는 순간 지옥문이 열린다. 그 순간으로부터 평생 벗어날 수 없다. 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확인했던 안치실을 나 역시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선원 가족이었기에 말 못할 아픔이 많았겠다.
선원들 먼저 탈출했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가족은 숨도 쉴 수 없었겠다.
직무를 다했다는 증언이 나왔을 때야 비로소 아내는 울음을 터트렸겠다.
남편이 죽었는데 순간 안도하게 되는 아이러니를 설명할 길 없다.
혹시나 했는데 목숨을 잃은 것이 분명하니 다시 절망했겠다.
두 아들도 아빠가 비겁하지는 않았다고 주먹 쥔 손으로 눈물을 닦았겠다.
유족은 조의금도 받지 않았단다.
형편도 넉넉잖으면서 고인의 평소 뜻을 반영했단다. 원망스런 부분도 있었겠다.
개만도 못한 것들이 선원이라고 배를 몰다가 도망가고 남편은 하나라도 구하겠다고 뛰어다니다가 목숨을 잃었으니 원망이 왜 없겠는가.
다 함께 죽었다고 덜어질 슬픔은 아니다만 사람 마음이 이렇다.
징역살이를 하는 한이 있어도 남들은 살아 걸어 다니는데 내 남편, 내 아버지, 내 동생은 목숨을 잃고 한 달이나 지나 바라볼 수 없는 모습으로 돌아왔으니 세상에 대한 원망이 없을 리 없다.
그의 주검이 발견된 사흘 후 세월호에 걸려있었을 사무장 임명장이 18km 떨어진 해역의 낭장망(囊長網)에 걸려 발견되었다.
이승의 업무가 끝났으니 이제 천국의 유람선 사무장으로 임명됐다는 신의 뜻일까.
나는 임명에 반대한다.
그의 임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스물이나 남았는데 돌아왔으니 임무를 마치지 않았단 말이다. 유족들께 죄스럽지만, 이 글을 쓰는 현충일 오늘까지 열다섯이나 돌아오지 않고 있으니 영혼이나마 다시 내려가 그들을 데려오라고 부탁드린다.
얼이 빠져 허깨비처럼 팽목항을 서성거리는 가족들이 있으니 끔찍하더라도 한 번만 다시 내려가라 부탁드린다.
그대는 사무장 아니신가.
비겁하지 않았던 사무장 아니신가.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예감으로 아이들 등록금을 걱정했던 가장 아니신가.
젖고 허물어진 어깨에 다시 짐을 올려 죄송스럽지만 양대홍 사무장, 그대가 절실하다.
그대의 어깨를 두드리는 심정을 이해하리라 믿는다.
그 많은 선원 다 소용 없고 오로지 그대 하나뿐이다.
* 형편이 곤란한 분들은 할 수 없고요. 어쩔까 망설이시는 분들은 오늘 저녁 청계광장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