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에 천만 서명 탑을 쌓아요.
박진(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딸이 있다. 열다섯 살, 중학교 2학년. 교복 입고 학교 간지 이제 두 해가 되었다. 처음으로 슈퍼마켓에 혼자 가보겠다면서 뛰어가던 뒷모습이 엊그제 같다. “엄마, 나 다녀왔어” 돌아와 품 안으로 쏙 뛰어 들며 용맹하게 들썩이던 숨소리가 마치 조금 전 같은데 교복을 입었다. 그래서 그런가 보다. 4월 16일 이후, 괜찮지 않았다. 교복 입은 어린 탑승객들이 딸과 겹쳐 보였다. 툭 치기만 해도 후두둑 눈물이 떨어졌다. 버스에서도, 사무실에서도, 침대에 누워서도 그랬다. 한 아이의 십 오년, 뱃속에 간직한 순간까지 십 육년을 모조리 기억하기 때문이었다. 내 검지 손가락을 온 힘 다해 부여잡던 갓난아기 때, 백화점 바닥에 누워 엉엉 떼를 쓰던 순간, 고대하던 아이돌 콘서트에 다녀와서 흥분을 감추지 않고 떠들던 입, 엄마가 정말 밉다고 엉엉 울던 눈물까지 고스란히 침몰했음을 눈치 챘다. 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에게 더 이상 슬퍼하거나 기뻐하거나 싸울 수도 없는 단절의 순간이 왔다는 것이, 마치 내 일처럼 느껴졌나 보다. 6살 지호 엄마는 “모두 우리 지호만할 때가 있었겠지 싶어서 지호가 예쁠 때도 목이 멘다.”고 말했다. 우리는 아마도 그래서, 세월호가 이렇게 슬픈가 보다.
슬픔이 넘쳐 진도 체육관, 팽목항, 안산 분향소, 그리고 전국 각지 분향소에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었다. 누구는 미안하다고 했으며, 누구는 잊지 않겠다고 했다. 안산과 청계광장에서 밝혀진 촛불은 “끝까지 밝혀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 사이에도 DNA가 아니면 가족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의 소식이 끝없이 들려 왔다. 마을 전체에 불 켜진 집이 몇 없는 동네 소식이 전해졌다. 아르바이트생이지만 선원이라는 이유 때문에 차마 실종된 자식 이름을 크게 부르지도 못하는 가족 이야기가 전해졌다. 조리사였던 따뜻한 아버지 이야기, 엄마 아빠, 오빠가 자기만 놔두고 이사 갔다고 우는 5살 어린 소녀, 살았기 때문에 죄인처럼 살아간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도 들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슬픈 기념일 들을 하나씩 보냈다. 그렇게 우리는 사망자와 실종자, 생존자들 모두 30일 넘게 이어진 기다림에 삶이 풀썩 내려앉고 있음을 전해 들었다. 그 와중에 반성과 모색을 기대했던 대통령이 담화문을 발표했다. 최종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했다. 하지만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구조한다는 이야기 한마디 없었다. 규제 풀린 배에 탄 생명들이 침몰했음에도 ‘경제 개혁 3개년 계획...’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마무리 지었다. 고삐 풀린 경쟁 정책, 안전보다 이윤을 앞세운 규제 완화와 규제 개혁으로 점철된 경제 혁신 3개년 계획과 비정상의 정상화는 누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였는지 알 수 없는 메아리가 되었다.
대통령 담화문의 빠진 말들을 가족들이 찾겠다고 나섰다. 가족들은 〔세월호 참사 철저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한 나라 건설을 위한 특별법 제정 등 촉구 천만인 서명〕을 받아 달라고 요청했다. 대통령의 특별법 수용은 가족들의 요구와 달랐고, 많이 부족했다. 대통령 면담 자리에서도 가족들은 정말 듣고 싶은 말은 듣지 못했다. 가족들의 참여나 성역 없는, 대통령도 포함하는 진상 조사하겠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하지 않았다. 대통령, 국회, 언론에게도 요구하지만 지금 가장 가깝게 고통 받는 이웃 곁에 앉은 우리 귀에도 말한다.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모든 국민 여러분께 요청드립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저희의 요구에 동참해주십시오. 서명을 해주시고, 권유해주시고, 받아주시고, 진상규명을 위한 천만인 서명운동에 나서 주십시오. 저희는 사고 첫날부터 국민 여러분의 힘을 보았고, 그 힘을 믿습니다.” 그들의 요구는 어렵지 않다. 이유역시 분명하다. “저희는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고, 모든 사람의 안전이 보장되는 나라를 만들고 싶습니다. 국가에 대한 믿음과 사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싶습니다. 참사로 희생된 수많은 소중한 생명은 오랜 기간 차디찬 바다 밑에서 우리의 치부를 하나씩 하나씩 드러낸 영웅들입니다. 이들을 단순한 희생자, 피해자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영웅으로 만들 것인가는 온전히 살아있는 자들의 몫입니다. 모두 함께 힘을 모아주십시오.” <http://sign.sewolho416.org>
고통의 얼굴을 한 타자의 울음소리에 응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의 고통이 낯선 것이든, 익숙한 것이든 고통은 자체로 정체 없는 낯선 것이기 때문이다. 세월호의 피해자들과 또는 멀리서 가슴앓이를 하는 이 시대의 누군가들은 지금 만나는 고통의 정체와 해결책 모두를 정확하게 알기 쉽지 않다. “고통 받는 사람들은 자기 고통을 말할 수 없다. 그래서 고통 받는 사람이 자기 고통을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최근 만난 「단속사회」 저자 엄기호는 말했다. 오는 24일 6시에 청계광장에 다시 촛불이 밝혀진다. 그때 청계광장에 천만 서명 탑을 쌓아 올리면 어떨까. 오는 이들이 20명씩 서명 란을 채워서 서명용지를 가져오면 좋겠다. 대통령 담화에서 담지 못했던 해결의 실마리를, 우리가 잃어버린 ‘사회’에서 찾았으면 좋겠다. 하나의 생명이 담고 있는 온전한 세계의 갖가지 빛을 지키고 싶다. 이제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절대로 이런 일을 되풀이 하지 말라고 가르쳐준 3백여 명의 사람들, 사랑하는 딸이며 아들이었고 부모였으며 친구였고 노동자였던 그들 모두에게 우리가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첫 번째 행동이다.
그리고 오늘도 기도 한다. 어두운 바다에서 이제 제발 돌아와 주시라. 어서 돌아와 가족 품에 안겨 주시라. 당신들 눈물이 마르기 전까지 참사는 끝나지 않았다. 그 약속 기필코 지켜 주리라. “딱 한걸음만 더” 매일 가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