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당시 6살이였는데 지금은 벌써 중등,초등 두아이의 엄마가 되었네요..
살던곳은 전남대에서 그리 멀지않은 임동과 신안동경계쯤이였는데
집 뒤쪽으로는 기차가 다니지않는 기찻길 있어 아이들 항상 여기모여놀고그랬습니다.
타지에 나와살다보니 지금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여 구글링해보니
제가 살았던 집도 그대로이고 작은 단독주택들이 조밀조밀 그리 변한게없네요.
4차로?인지 가물가물하지만 나름 큰 도로에 넓은 세차장이 있고 바로 뒷쪽에
초록지붕 2층집이 제가 어린시절 10년 살았던 집입니다.
부모님 많은 고생하시며 처음 장만했던 큰집이여서 정말 좋았던 그 곳에도 5.18민주화항쟁의 아픔이 있습니다.
유치원도 다니지않던 6살이여서 잘 알지 못했지만
분명 6.25같은 전쟁이 다시 반발한거라 생각해서 무서웠던 기억은 뚜렷하네요.
엄마,아빠가 잡혀갈까봐 계속 부모님 뒤만 졸졸따라다니고
엄마는 동네분들과 주먹밥만들어서 시위하던 분들께 가져다드리고
근처 슈퍼도 문닫고 즐겨보던 만화도 하지않고 기찻길에 친구들도 없고해서
한동한 정말 심심했었던 그때가 5.18민주화항쟁이란걸 나중에 알았습니다.
저녁에 좁은뒷방에서 두꺼운 솜이불덮고 다섯가족이 지내야했고
문닫은 세차장에서 밤마다 들리는 총소리가 정말 무서웠던 기억..
그래서 우리집 담벼락에는 총알 흔적은 많았습니다.
빨갱이괴물이라 생각했던 북한군이 우리집에도 처들어올까봐 두려웠던
전기도 안 들어오는 그 새까만 밤은 잊혀지지않습니다.
중간중간 시민군들 피신해오면 물도 주고 화장실도 쓰시고했는데....
암튼 더 기억해보고싶지만 이것말고는 생각나는게 없네요..
초중고 학교다니면서 같은 학급에 5.18로 가족을 잃은친구들 항상 있었습니다.
그래서 타지에 나와 살고있지만 광주친구들 만나면
우리들만 느낄수있는 말로 설명안되는
서글픈 공감대같은 끈적끈적한 뭔가가있는듯합니다.
나중에 대학교에서 성당에서 5.18관련 다큐를 보면서
얼마나 처절하고 끔찍했는지 한동안 충격에 정신줄놓은적도있었네요..
뭐..지금은 가족들 만나면 가끔 어렸을때 살았던 그집
담벼락 총탄흔적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지만
내가 그런 서슬퍼란 시간을 지나왔다는게
정말 슬프고 속상합니다.
뭐...자유게시판이여서
요즘 나라 돌어가는 꼴에 분노하다가 옛날생각나서
잠시 끄적여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