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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못 돌아간다(펌)

... 조회수 : 2,909
작성일 : 2014-05-13 20:40:27

[이명수의 사람그물] 이제 못 돌아간다

내 자식이, 부모형제가 눈앞에서 죽었다. 처음엔 분명히 살아 있었다. 살릴 기회가 충분했다. 하지만 단 한명도 살리지 못했다. 그렇게 300여명이 학살당하듯 수장되는 현장을 수천만명이 느린 화면으로 지켜봤다. 희생자 대부분은 열일곱 꽃봉오리들이었다. 어떻게 잊나. 사고 한달여 만에야 검찰은 ‘해경이 즉각 진입했으면 다 살릴 수 있었다’고 결론 내렸다. 그걸 이제 아나.


세월호 참사에서 사람들 무릎을 꺾은 치명적인 2차 트라우마는 정부의 무책임하고 무능한 대응과 거기에 장단 맞춘 언론의 부도덕함이었다. 내가 눈앞에서 지켜봤고 확인한 사실을 그들은 아니라고 도리질했다. 내가 지각한 사실과 상반된 정보가 계속 입력되면 현재감각에 문제가 생긴다. 내가 이상한 건가, 혼란스럽다. ‘당신 눈을 믿으면 되나. 정부 발표를 믿어야지.’ 그렇게 정부와 언론은 합작해서 겁박하듯 타이르듯 사람들의 분노와 절규를 외면했다. 그 결과 세월호 트라우마는 더 지독해졌다.


세월호 주인이 대통령도 아닌데 왜 정부 탓만 하느냐, 유족이 무슨 벼슬도 아닌데 이렇게 생난리를 쳐도 되느냐고 게거품을 무는 작자들까지 생겼다. 생난리를 친 것도 없지만, 미친 질문에 한번만 정상적으로 대답해준다. 그래도 된다. 그런 때 그런 슬픔과 고통을 충분히 받아주라고 공동체가 있고 국가가 존재하는 것이다.


자식이 눈앞에서 학살당하듯 죽었다. 그런 상황에서 부모로서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 생각하면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지옥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사회라면 무엇보다 먼저 유족을 배려하는 게 옳다. 하지만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수재민이나 사회불만세력 정도로 치부했다. 난민수용소 같은 체육관에 방치했고 대통령 면담하러 온 유족들을 경계하며 물대포부터 준비했다. 대통령은 머리를 틀어올리는 중이었어도 아이들 영정을 품에 안은 유족들이 찾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산발한 채로라도 달려나와 손잡았어야 했다. 대신 경찰은 학익진 대형으로 유족들을 거리에 가뒀다.


자식 잃은 부모들은 이제 아이들과 돼지갈비를 먹으러 갈 수도, 목욕탕을 갈 수도, 용돈을 줄 수도 없다. 다 사라졌다. 그 일상으로 못 돌아간다. 오전에 아이의 사망신고를 한 부모가 오후에 찾아와 ‘내가 미쳤나 보다. 너무 빨리 했다’고 통곡하며 사망신고를 취소해 달라고 한다. 한 엄마는 ‘없는 집에 너같이 예쁜 애를 태어나게 해서 미안해. 엄마가 지옥 갈게 딸은 천국에 가’ 피울음을 토한다.


그런 이들에게 언제까지 슬퍼만 할 수 없지 않으냐며 경제도 위축되었으니 빨리 털고 위기를 극복하자고 말하는 건 미친 짓이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사람 앞에서 유산배분을 논하는 꼴이다. 수백명의 주검이 묻혀 있는 땅 위에 놀이동산 짓는다고 밝은 사회 오지 않는다. 그렇게 잊혀질 일이 아니다. 지금은 더 슬퍼해야 한다. 정상적인 애도의 과정이다. 어느 시인은 울음의 끝에 슬픔이 무너지고 길이 보인다고 했다. 유족들의 슬픔에 합일할 수 있어야 우리가 내놓는 해법은 정확해진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세월호 침몰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세월호 트라우마의 파괴력이 그런 정도다. 이제 우리는 세월호 침몰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걸 인정하고 그다음에 무얼 할 수 있는지 찾아야 한다. 업보처럼 견뎌내야 한다.


하지만 지금 무엇보다 먼저여야 할 것은 애도다. 아이들이 컴컴하고 차가운 바닷속에서 꽃송이로 훨훨 날아올라야 한다. 남아 있는 사람들 마음속에 그런 느낌이 있어야 한다. 모든 새출발에 대한 논의는 그다음부터다. 거기서 시작돼야 한다.


이명수 심리기획자
IP : 218.37.xxx.156
1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14.5.13 8:53 PM (175.210.xxx.243)

    구구절절 동감합니다.
    시신을 못찾아 아직 장례도 못 치른 가족이 많은데 슬픔을 잊자고 말하는 대통령이란 작자의 주둥아리를 비틀어버리고 싶네요.

  • 2. ...
    '14.5.13 9:22 PM (61.254.xxx.53)

    네.
    저도 구구절절 동감하고 또 동감합니다.

  • 3. ...
    '14.5.13 9:23 PM (61.254.xxx.53)

    이 글을 좀 더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해서 댓글 더 달아요.

  • 4. ...
    '14.5.13 9:25 PM (61.254.xxx.53)

    맞아요. 우리는 이제 세월호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그 정도로 충격이 큰 사건입니다.
    300명이 수장된 것도 충격이고 고통인데,
    우리는 정부가 국민을 얼마나 하찮게 여기고 무시하는지...
    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이제는 정말 낱낱이 다 알게 되었습니다.

  • 5. ..
    '14.5.13 9:27 PM (59.15.xxx.181)

    저도 더 많은분들이 읽어보시라고 댓글답니다...


    가슴이 먹먹해서...

  • 6. ...
    '14.5.13 9:36 PM (218.37.xxx.156)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36599.html

  • 7. ...
    '14.5.13 9:39 PM (124.50.xxx.5)

    다시 그때로 돌아갈수만 있다면...이 많은 국민들은 이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해야하는가? 삶이 휘청거린 느낌이다.

  • 8. 우리 모두
    '14.5.13 9:40 PM (211.238.xxx.132)

    읽어봐야 할글입니다.

  • 9. 아휴
    '14.5.13 10:36 PM (211.228.xxx.235)

    정말로 못 돌아가게 만든 사건입니다.

  • 10. 11
    '14.5.13 10:46 PM (121.162.xxx.100)

    아침에 읽고 내내 가슴아파서 종일 답답한체.보냈어요

  • 11. 아....
    '14.5.14 9:52 AM (121.152.xxx.208)

    욕하고 싶어요..

    이 미친놈의 세상에 태어나 가난이 죄가 되는 나라에 태어나
    가난때문에 일찍 철들었던.. 고왔던 아이들아.. 잊지않을께. 죽을때까지.

  • 12. ...
    '14.5.14 10:03 AM (61.250.xxx.253)

    맞아요. 몇백명이 죽은 그 자리. 삼풍백화점 자리에 주상복합을 지을 때부터 이 모든 것이 예견 된 건지도 몰라요.

  • 13. .............
    '14.5.14 11:26 AM (1.251.xxx.248)

    죽은 아이들이 이나라를 살릴 거라는
    강대영 잠수사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대로는 안됩니다.

    아이들을 살려낼 수만 있다면 나라가 썩어빠져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이미 꽃같은 아이들을 잃었습니다.
    그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다 까발리고 처벌해야 합니다.
    아이들아 미안하다. 몇천만번을 말해도 또 미안하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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