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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 아침 6시.
자고 있던 장동원 노조 경기지부 경기지역지회 신흥분회장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제주도 수학여행을 떠난 막내딸 애진이가 새벽부터 깨어 친구들과 재잘대다 아빠한테 전화를 걸어왔다.
평소 애진이의 같은 반 친구들과 허물없이 지낼 정도로 딸과 사이가 좋은 장 분회장이지만 근무를 마친 피곤함에 날 밝으면 통화하자며 전화를 끊고 다시 잠을 청했다.
이때만 해도 장 분회장과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생인 애진이가 겪을 참담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예상치 못했다.
딸의 전화가 다시 걸려온 시각은 8시 50분. 목소리가 사뭇 달라져 있었다.
“아빠, 이상해. 배가 막 흔들리고 기울더니 배에 컨테이너가 떠다녀.”
배가 기운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든 장 분회장은 해양경찰 전화번호를 알아보기로 하고 일단 전화를 끊었다.
20분이나 지났을까. 다시 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애진이는 해경전화번호를 알려주는 아빠에게 배에 물이 들어온다며 불안해했다. 깜짝 놀란 장 분회장이 어떻게 하라는 방송은 없냐고 묻자 그저 “가만히 있으라”는 말뿐이라고 대답했다. 장 분회장은 친구들과 지체 없이 갑판으로 올라가라고 소리쳤다.
장 분회장은 바로 진도로 향했다. 내려가는 중에 아내에게서 학생 전원을 구출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년간의 노조 활동을 경험한 장 분회장의 답은 간단했다. “언론을 믿느냐?” 장 분회장이 진도에 도착할 무렵 연락두절로 애태웠던 딸에게서 드디어 전화가 왔다. 기쁨은 잠시, 애진이로부터 들은 침몰선 탈출기는 기가 막혔다.
아이들은 해경도, 선원도, 누구의 도움도 바랄 수 없었다.
애진이는 배에 타면 먼저 비상구와 구명조끼 위치부터 확인하라는 아빠의 말을 새겨들었었다.
눈여겨 봐두었던 캐비닛에서 스스로 구명조끼를 꺼내 친구들과 나눠 입었다.
서로 끌어주고 올려주며 탈출을 시작해 천신만고 끝에 갑판에 다다라 차가운 바다로 뛰어 들었다.
추위와 겁에 질린 아이들을 구한 건 고기잡이배 어부였다.
어부는 아이들을 인근 거차도 마을회관으로 데리고 갔고 애진이는 마을회관 전화로 아빠에게 생존사실을 알렸다.
진도 종합실내체육관에 도착한 장 분회장은 생존자 명단을 뒤졌지만 딸의 이름이 없었다. 해경에 물어봤지만 더 이상 구조자는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거차도에 있는 딸과 통화까지 했던 장 분회장이 재확인해보라고 했지만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장 분회장은 다시 전화를 걸어 온 애진이와 함께 있는 친구 30여 명의 명단을 하나하나 받아 적어 해경에 전달하며 아이들을 데려올 것을 요구했다. 결국 장 분회장과 세월호에서 탈출한 막내딸이 재회할 때까지 국가가 한 일이라고는 엉터리 명단 작성과 거차도에서 팽목항까지 배편뿐인 셈이다.
장 분회장의 분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입원한 병원 13층에서 자살시도까지 하려는 생존자를 위해 누구도 책임지거나 조치하려하지 않았다. 생존자를 위한 치유기관과 치유 프로그램을 제안한 것도 장 분회장을 비롯한 생존자 가족이다.
장 분회장은 생존자의 감정기복이 아직 심각하다고 한다. “아이들끼리 있을 때는 웃고 떠들지만 밤에 각자 방으로 들어가면 울고, 토하고, 심지어 기절도 합니다. 우리 막내는 씩씩한 편이지만 탈출 때 본 자판기에 깔린 학생이 자꾸 생각난다고 하더군요.”
생존해 돌아온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속보 경쟁에 내몰린 언론사 기자들이었다. 검찰은 생존 학생에게 진술서를 받겠다고 덤볐다. 교육당국은 아무 대책 없이 우선 수업을 정상화하겠다며 상황을 덮기에 급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