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 가는 날이 우리 아들의 생일이었습니다. "생일날 수학여행을 간다"며 뛸 듯이 기뻐했죠.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부터 현관에 여행가방을 놓고 갖고 갈 물건을 하나씩 정리했습니다. 웃으며 떠나는 모습이 마지막이었어요. 당분간 많이 울 것만 같습니다. 아들이 보고 싶어서요. 그래도 현탁이가 웃던 그 모습을 위안 삼고 있습니다. 세탁소 일도 조금씩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아들을 보내고 그동안 찍었던 사진을 다시 펼쳐봤습니다. 아들에게 해준 게 너무 없었습니다. 진도에서 엄마들끼리 수학여행 보내면서 용돈을 얼마 줬는지 서로 물어봤습니다. 대부분이 '10만 원씩 줬다'는데 저는 2만 원밖에 못 줘 미안해 또 울었습니다. 그런데 현탁이를 찾았을 때 지갑에 2만 원이 그냥 있었습니다. "제주도는 물도 맛있으니까 맛있는 것 많이 사먹어"라고 했는데 용돈도 쓰지 못한 채 갔습니다.
우리 아이는 300mm짜리 신발을 신을 정도로 덩치가 컸습니다. 하지만 형편이 넉넉지 못해 유명 메이커 옷도 못 사줬습니다. 수학여행 가기 전에 아들 몸에 맞는 옷 사느라 아웃렛 매장을 몇 번이고 돌아다녔습니다. 아들이 언젠가 노스페이스 잠바를 사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가격이 50만 원이나 됐습니다. "그 돈이면 한 달 생활비라 안 된다"고 잘라 말했죠. 아들은 떼 한 번 안 쓰고 포기했어요. 그런데 사고 후 진도를 내려가니까 그 잠바 입고 다니는 사람이 너무 많아 또 눈물이 났습니다.
현탁이는 여느 아이처럼 "엄마 배고파"라는 말을 많이 했어요. 그럴 때마다 "너는 엄마가 밥으로 보이냐"고 타박했죠. 점심시간에 세탁소로 달려와 자장면 시켜먹고 가고, 친구들과 놀러갈 때도 돈 달라고 하고 그랬었습니다. 현탁이가 단원고 1학년 때 세탁소를 학교 주변으로 옮겼습니다. 아들이 혹시나 엄마가 세탁소를 한다고 부끄러워하진 않을까 걱정했더니 "엄마 난 괜찮아"라고 하더군요. '아들이 의젓하게 잘 자랐구나'라는 생각에 대견했죠.
수학여행 전날, 이상하게 아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습니다. 생전 처음이었어요. 쓰다가 마음에 안 들어 찢어버렸던 종이를 아직 갖고 있습니다. 겨우겨우 편지를 써 아들 몰래 가방 앞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듬직하게 잘 커줘서 고맙고 엄마는 네가 있어 정말 행복하다'라고 적었죠. 출발하던 날 지나가는 말로 "현탁아, 가방에 손수건이랑 다 넣었으니까 도착하면 어디에 뭐가 들었는지 꼼꼼히 봐"라고 했습니다. 그날 밤 통화에서 못 참고 제가 먼저 물었어요. "편지 봤어?"라고 했더니 아들은 무뚝뚝하게 "응"이라고 답하더군요. 고마우면서도 쑥스러웠던 모양입니다.
현탁이는 엄마를 편하게 해준 아들이었어요. 특별히 아픈 데도 없이 밥만 먹고 잘 컸습니다. 팽목항으로 내려갔을 때 캄캄한 바다를 향해 '행복은 이걸로 끝이다. 이놈아!'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여러분이 보내주신 따뜻한 마음들 정말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그 말밖에 드릴 말이 없네요. 아직 제 마음에는 현탁이가 자리 잡고 있어 사연들을 미처 다 읽지 못했습니다. 현탁이 방에 두고 천천히 읽어볼게요.
생각조차 하기 싫은 이 비극은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아직도 바다에서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가 많습니다. 이들이 하루빨리 돌아오도록 기도해주세요. 그래서 보내는 길이라도 온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그 마음들, 정말 고맙습니다.
현탁이 엄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