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다 같이 읽어보면 좋은 글일 것 같아서 퍼왔어요.

우리가 조회수 : 1,657
작성일 : 2014-05-03 22:07:49
2000년 7월 14일 그는 단발머리를 하고 수학여행을 떠난 여고생이었습니다.
3박 4일 여행을 마치고 부산으로 돌아가던 길에 버스는 빗길에 미끄러져 추락한 뒤 6대의 승용차와 함께 전소했습니다.
순식간에 번진 화염 속에서 13명의 친구들은 영영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14년이 지나고 부일외국어고 수학여행 버스 참사 생존자인 김은진 씨(30)가 세월호 희생자와 실종자, 그 친구와 가족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온 국민에게 간절히 호소하는 글을 보내왔습니다.

저는 2000년 7월 14일 부일외고 수학여행 참사의 생존자 김은진입니다.
방금 오전에 일 끝내고 인터넷에 접속했더니 (안산 단원고) 교감선생님의 비보가 제일 먼저 보이네요.
멀리 타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만무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뉴스를 보면 마음이 저려오는데, 그렇다고 귀 닫고, 눈 감을 수도 없는 일이라서 계속 뉴스만 찾게 됩니다.
아는 게 없고, 제가 할 수 있는 일도 없어서, 구호품을 보내는 것 말고는 무능한 제가 이러쿵저러쿵 얘기하기도 죄스러워서 아픈 마음만 부여잡고, 좋은 소식이 들려오길 바라고 있습니다.

지금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이 겪고 있을 참담한 사건과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감히 언급할 수도 없지만 그래도 유사한 고통을 아주 오래전에 그들 나이에 제가 겪었고, 차후 몇 년 몇 십 년 동안, 어쩌면 살아 숨 쉬는 평생이라는 기간 동안 그들이 견뎌야 할 고통의 무게를 제가 약소하나마 공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도 돌봐 주세요.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생존자가 살아남았기 때문에 견뎌야 하는 처벌이 죄책감입니다. 내가 보내지 않았다면, 내가 가지 말라고 붙잡았더라면, 이 지긋지긋한 ‘만약에’라는 가정(假定)이 평생을 따라다니면서 가슴팍을 짓누르며 숨도 쉴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

오래전, 저도 단발을 하고 교복을 입던 그날, 수학여행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했습니다. 고속도로 위를 달리던 버스들이 연쇄 추돌사고를 냈고, 화염에 휩싸인 친구들을 구해낼 수 없었습니다. 배 아파 낳은 자식의 사망 소식 뒤에 살아남은 부모들이 견뎌야 했던 처벌은 우울증과 이혼이었습니다. 스스로를 탓하고, 배우자를 책망하다, 결국 사망자 부모님 대부분이 이혼 또는 별거를 했고, 조부모님들은 손자, 손녀 사고 후 3년 사이로 많이들 돌아가셨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후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에게 잊혀지겠지요. 하지만 당사자 가족들이 겪어야 할 후폭풍은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바뀌어도 잠잠해지지 않습니다. 동생과 언니 오빠를 잃은 형과 아우들은 외로울 겁니다. 고통스러워하는 부모님을 볼 때마다 함께 슬픔에 잠기기도 하고, 감정이 격해지면 “내가 대신 죽었어야 엄마 아빠 마음이 덜 아팠겠지” 하며 어린 나이에 충분히 받지 못한 관심과 사랑이 그리울 겁니다. 모든 당사자에게 이런 참사는 처음이라 서로에게 실수를 할 거예요. 근데 모두가 취약한 상태라 평소라면 아무것도 아닌 말과 행동들이 비수가 되어 뇌리에 박힐 겁니다.

분노의 방향이 아직 외부일 때 전문가의 도움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타인에게 화를 내는 건 그 지속 기간이 매우 짧습니다. 정신없는 두어 달의 기간이 지나고, 외부에 분노하고 항의해도 어쩔 수 없음을 인식할 때 화의 방향이 내부로 향하게 됩니다. 분노할 땐 소리라도 치고,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합니다만, 스스로 책망하기 시작할 때부터는 입을 열지 않고,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스스로를 괴롭히다 (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단원고로 진학하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안산으로 이사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살아도 당신의 삶이 아닌 삶을 살게 됩니다.

목숨을 부지한 친구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데에는 피해 가족이 받는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아주 기나긴 시간이 소요됩니다. 많이 울 거예요. 저처럼 술을 많이 마셔 위 천공이 생길지도, 간헐적으로 생기는 행복감에도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기쁨을 온전히 만끽하지도 못합니다. 죄책감이 가져다주는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여정이 친구들 앞에 놓여 있습니다.

김은진 씨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바다를 보고도 공포를 떠올려야 하고, 안내방송이 나오면 건물 밖으로 뛰어나갈지 모릅니다. 제주도 땅은 평생 밟아 볼 수 없을지도 모르고요. 살아남은 급우들끼리도 서로를 피할 겁니다. 만나면 생각나거든요. 많은 단원고 학생이 자퇴를 할 겁니다. 살아남은 제가 그랬듯 제 친구들이 그랬듯 말입니다. 거대한 자연에 대항할 수 없는 본인의 무능력함을 앞으로 그들이 진출해야 할 사회 모든 전반에 적용할지 모릅니다. 매년 4월 16일이 되면 평소보다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아이들과 가족들이 있을 겁니다. 한국이 만들어낸 인재입니다. 모른 체하지 말아주세요.

사회에 부탁하고 싶습니다. 사건사고가 잊혀졌다고, 당사자도 괜찮을 거라 어림짐작하지 말아주세요. 지금껏 안부를 여쭙는 제 친구 부모님들은 여전히 아파합니다. 세월호 사고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족도 꼭 사회가 알아주세요. 오래전에 발생한 제 사고가 있던 시절은 사람들이 무지해서 어느 누구도 정신건강의학과 치료가 필요할 거라고 얘기해주지 않았습니다. 피해자 가족들 주위에 계신 분들이 꼭 힘이 되어 주세요. 잠이 오지 않는다 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하면, 머리가 아프다 하면, 2014년이 흐르고 흘러 2024년이 되어도 꼭 손을 잡고 함께 울어주세요. 보듬어 주세요. 그리고 전문가를 찾아 주세요.

저는, 사고를 당했으니 아픈 게 당연하고,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괜찮아 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절대 잊혀지지 않는 일들이 있습니다. 피가 나고 아물고 딱지가 되어 떨어져 나갔는데 그 흉터가 그대로 남아, 볼 때마다 열일곱 살 어린 내가, 그리고 이젠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는 내 친구들이 불쌍해서 눈물이 납니다. 치솟는 불길의 잔상이 망막에 맺히고, 검은 연기가 친구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모습이 여전히 어제 일처럼 식은땀이 납니다. 아스팔트 위에 누워 구급차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울기만 하던 나는 내 나이의 앞자리가 두 번이나 바뀌었는데도 그 누구 하나 지켜줄 수 없는 지금의 나에게도 화가 납니다.

‘이별’의 ‘원인’을 찾으려고 할 겁니다. 대한민국이 잘못을 했고, 여객선이 잘못을 했고, 선장이 잘못했다 탓할 겁니다. 바뀌는 게 없을 겁니다. 아프기만 할 겁니다. 책망할 원인을 찾다 찾다 결국에는 본인에게 귀인할 겁니다. 바다에 뛰어들지 못한 부모님들은 시간이 지나고, ‘진짜’ 뛰어들지 않았음에 괴로워하고 당신의 몸뚱이를 손바닥으로 주먹으로 칠 겁니다. 그러지 않게 해주세요. 살아남은 아이들은 친구들을 데려 나오지 않았음에 “자신은 평생 선한 존재가 될 수 없다”고 확정 지어 버릴 거예요. 내가 무언가를 이루고, 칭찬 받을 일을, 축하 받을 일을 이루어도, 나는 나만 도망친 비겁자라는 전제를 떨쳐버릴 수 없을 겁니다. 그러지 않게 해주세요. 내가 7월이 되면 스스로에게 벌을 주듯, 많은 아이들이 4월이 되면 봄을 즐길 수가 없을 겁니다.

대한민국이 잘못했다, 꼭 고개 숙여 사과해주세요. 외부를 탓할 때, 거기서 멈추게 해주세요. 책임자들이 책임을 피하면, 결국 남은 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내 잘못뿐입니다. 생존자들과 남은 가족들이 절대 자신을 탓하게 하지 말아주세요.

유튜브를 통해 학부모님들과 생전 제 할머니를 연상시키는 한 할머님의 울음소리를 들었고, 일 하다 말고 화장실로 뛰어가 아주 펑펑 울고 말았습니다. 그 소리치듯 우는 소리의 진동은 제게 있어 가장 잔혹했던 여름날의 악몽을 떠올리게 합니다. 진동은 제 온 피부를 덮고, 가시처럼 파고들어 가슴에 꽂힙니다. 왜 나를 살려주지 않았고, 왜 나를 데려 나가 주지 않았냐고. 왜 너만 살았냐고.

제가 평생 안고 살아가는 죄책감입니다. 세월호 사람들은 짊어지지 않게 해줘요.



2000년 7월 14일 오후 2시 40분경 경북 김천시 봉산면 경부고속도로 추풍령휴게소 부산 방향 하행선에서 부산 부일외국어고 1학년 학생들을 태운 수학여행 버스가 빗길에 멈춰 선 5t 트럭을 추돌했다. 이후 뒤따르던 관광버스 2대와 승용차 등이 연쇄 추돌했으며 당시 학생들을 태운 또 다른 버스는 이를 피하려다 15m 아래 언덕으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추돌 차량들이 전소하고 학생 13명 등 총 18명이 숨졌고 100여 명이 다쳤다.
IP : 175.193.xxx.115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marie
    '14.5.3 10:26 PM (110.70.xxx.104)

    아.......
    너무 가슴아프고 절망적인 날들입니다.......
    부디.....

  • 2. 맞아요
    '14.5.3 10:31 PM (175.223.xxx.45)

    당장 다치기만 해도 내가 거길 왜가서 다쳤을까
    왜 ? 왜 ? 이러게 되던데. ,,,,,

    어쩌면 좋습니까. ,,,

    정말 어쩌면 좋아요 ㅠㅠ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426506 그자는 올해도 제 생일을 기억못했어요. 16 그자 2014/10/13 3,946
426505 "박 대통령 외조카 대주주된 후 870억대 정부펀드 운.. 샬랄라 2014/10/13 625
426504 함 받고 나서 신부가 예비 시댁에 감사하다고 전화를 하나요? 4 궁금 2014/10/13 1,935
426503 세월호기억하기)마포 개인현수막 철거예정이라네요. 도와주세요 1 마이쭌 2014/10/13 550
426502 40대 취업준비생 컴퓨터활용 자격증 알려주세요. 1 지금부터 사.. 2014/10/13 1,529
426501 딸인데도 야동을 보네요~~ㅠㅠ 21 pmp야동 2014/10/13 10,000
426500 82쿡은 박근혜는 싫어하면서 부동산 열기에 동참은 잘하는거같아요.. 4 ㅇㅇ 2014/10/13 835
426499 절대 마트 계산대에서 사지 않는 것 37 절대로 2014/10/13 16,957
426498 동탄 2신도시 반도유보라 4.0 1 궁금 2014/10/13 2,704
426497 구스이불 질문드려요.(제발 봐주세요) 3 구스이불 2014/10/13 1,394
426496 렌트푸어, 하우스푸어,허니문푸어,에듀푸어 각종 푸어족양산 미친전세값 2014/10/13 781
426495 경주 보문단지....무례한 사람들 4 화성행궁 2014/10/13 2,105
426494 오늘 바람 ..좋다... 3 갱스브르 2014/10/13 917
426493 깍두기 담그는데 맛있게 담그는 방법 알려주세요. 조리법 풀어.. 2014/10/13 1,598
426492 요우커 "예뻐지려고 5천만원 주고 왔는데..짐짝 취급&.. 양악수술 2014/10/13 1,576
426491 마주쳐도 인사 안하는 사람.. 저도 그냥 인사 안하는게 날까요?.. 5 아우기분나빠.. 2014/10/13 3,740
426490 늦둥이 남편 받는건 없고 의무만 있네요 9 ... 2014/10/13 3,204
426489 디지털 피아노 소리가 훨씬 더 좋나요??? 5 2014/10/13 1,599
426488 날이 너무나 청명하네요.. 7 수도권 2014/10/13 1,189
426487 태풍 부는데 짜장면 시켜도 되나요? ... 2014/10/13 700
426486 산재로 인한 행정소송 3 2014/10/13 791
426485 요즘 대세인 책 쉽게 읽기 집값 폭락만.. 2014/10/13 877
426484 돌체구스토 커피는 어떤가요? dd 2014/10/13 473
426483 미국산 돼지고기 먹으면 안되겠어요;;; 7 세상에 2014/10/13 2,731
426482 엊그네 압구정 현대 경비원 분신 자살 14 아이쿠야 2014/10/13 6,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