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펌) 껍데기의 나라를 떠나는 너희들에게

추모시 조회수 : 1,006
작성일 : 2014-05-02 22:26:25

껍데기의 나라를 떠나는 너희들에게
-세월호 참사 희생자에게 바침


권혁소 (시인. 강원 고성중 교사)

 

어쩌면 너희들은
실종 27일, 머리와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수장되었다가
처참한 시신으로 마산 중앙부두에 떠오른
열일곱 김주열인지도 몰라
이승만 정권이 저지른 일이었다

 

어쩌면 너희들은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에서
머리채를 잡혀 어떤 저항도 할 수 없이
욕조 물고문으로 죽어간 박종철인지도 몰라
전두환 정권이 저지른 일이었다

 

너희들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고향은
쥐라기 공룡들이 살았던 태백이나 정선 어디
탄광 노동자였던 단란한 너희 가족을
도시 공단의 노동자로 내몬 것은
석탄산업합리화를 앞세운 노태우 정권이었다

 

나는 그때 꼭 지금 너희들의 나이였던 엄마 아빠와 함께
늘어가는 친구들의 빈 자리를 아프게 바라보며
탄가루 날리는 교정에서 4월의 노래를 불렀다
꽃은 피고 있었지만 우울하고 쓸쓸한 날들이었다

 

여객선 운행 나이를 서른 살로 연장하여
일본에서 청춘을 보낸 낡은 배를 사도록 하고
영세 선박회사와 소규모 어선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엉터리 안전 점검에 대기업들이 묻어가도록 하고
4대강 물장난으로 강산을 죽인 것은 이명박 정권이었다

 

차마 목 놓아 부를 수도 없는 사랑하는 아이들아

 

너희들이 강남에 사는 부모를 뒀어도 이렇게 구조가 더뎠을까
너희들 중 누군가가 정승집 아들이거나 딸이었어도
제발 좀 살려달라는 목멘 호소를 종북이라 했을까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절규하는 엄마를 전문 시위꾼이라 했을까

 

집권 여당의 국회의원들이 막말 배틀을 하는 나라
너희들의 삶과 죽음을 단지 기념사진으로나 남기는 나라
아니다, 이미 국가가 아니다
팔걸이 의자에 앉아
왕사발 라면을 아가리에 쳐 넣는 자가 교육부 장관인 나라
계란도 안 넣은 라면을 먹었다며 안타까워하는 자가
이 나라 조타실의 대변인인 나라
아니다, 너희들을 주인공으로 받드는 그런 국가가 아니다
그러니 이것은 박근혜 정부의 무능에 의한 타살이다
이윤만이 미덕인 자본과 공권력에 의한 협살이다

 

너희들이 제주를 향해 떠나던 날
이 나라 국가정보원장과 대통령은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했다
머리를 조아렸다,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을까, 그래서였나
그래서 세월호의 파이를 이리 키우고 싶었던 걸까
아아,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이제 막 피어나는 4월의 봄꽃들아

 

너희들의 열일곱 해는 단 한 번도 천국인 적이 없었구나
야자에 보충에 학원에, 바위처럼 무거운 삶이었구나
3박 4일 학교를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흥분했었을 아이들아
선생님 몰래 신발에 치약을 짜 넣거나
잠든 친구의 얼굴에 우스운 낙서를 하고 베개 싸움을 하다가
선생님 잠이 안 와요, 삼십 분만 더 놀다 자면 안 돼요
어여쁜 얼굴로 칭얼거리며 열일곱 봄 추억을 만들었을
사랑하는 우리의 아이들아
너희들 마지막 희망의 문자를 가슴에 새긴다
학생증을 움켜쥔 그 멍든 손가락을 심장에 심는다

 

이제 모래 위에 지은 나라를 떠나는 아이들아
거기엔 춥고 어두운 바다도 없을 거야
거기엔 엎드려 잔다고 야단치는 선생님도 없을 거야
거기엔 네 성적에 잠이 오냐고 호통 치는 대학도 없을 거야
거기엔 입시도 야자도 보충도 없을 거야
거기엔 채증에는 민첩하나 구조에는 서툰 경찰도 없을 거야
거기엔 구조보다 문책을, 사과보다 호통을 우선 하는 대통령도 없을 거야
어여쁜 너희들이 서둘러 길 떠나는 거기는
거기는 하루, 한 달, 아니 일생이 골든타임인 그런 나라일 거야

 

따뜻한 가슴으로 꼭 한 번
안아주고 싶었던 사랑하는 아이들아
껍데기뿐인 이 나라를 떠나는 아이들아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눈물만이 우리들의 마지막 인사여서 참말 미안하다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부디 안녕


 

IP : 175.123.xxx.53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권불오년
    '14.5.2 10:32 PM (121.130.xxx.112)

    ㅠㅠㅠㅠㅠㅠㅠㅠㅠ 미안하다 얘들아ㅠㅠㅠㅠ

  • 2. ㅜㅜ
    '14.5.2 10:37 PM (182.222.xxx.189)

    ㅠㅠ
    너무 눈물나네요..

  • 3. 진짜...
    '14.5.2 10:38 PM (1.224.xxx.85)

    눈물나네요...
    ㅠㅠㅠㅠㅠ
    어떻게하면 변할수 있을까요..

  • 4. ,..
    '14.5.2 10:40 PM (1.240.xxx.154)

    82 안들어 올려고 했는데
    또 눈물이...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가슴이 또 미어지는구나

    이제 당분간 82 접속 안하겠음 ㅠㅠㅠ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381354 세월호 유가족이 몽준이 아들 고소 44 1470만 2014/05/19 8,790
381353 영국인들의 시위모습... 5 슬픔보다분노.. 2014/05/19 2,382
381352 남자닭은 실제 경영에 참여했던 사람이긴한가요? 14 딸랑셋맘 2014/05/19 1,482
381351 대국민 담화관련 노회찬 트윗 11 .... 2014/05/19 3,250
381350 정몽준이 방금 서울시 재난 안전대책 재원조달방법을 민자유치라는데.. 6 허걱...... 2014/05/19 1,246
381349 동영상 - 성난 kbs 사원들 길환영 사장 출근저지 성공, 차량.. 7 lowsim.. 2014/05/19 1,409
381348 닥 담화문 전문입니다 . 근데 ..영상 어디서 보나요...?? 2 .. 2014/05/19 786
381347 십오년 만에 토익 공부하고 있어요 1 2014/05/19 978
381346 나이스 가입이나 활용 등에 대해 문의드려요... 교육 2014/05/19 885
381345 해경 해체는 특검 피하기 위한 꼼수 10 니 속을 꿰.. 2014/05/19 2,614
381344 눈물은 왜 안닦아요? 25 dd 2014/05/19 3,483
381343 최승호 PD "역시 KBS문제는 일언반구도 없어&quo.. 1 샬랄라 2014/05/19 1,154
381342 서울시 토론회 듣고있는데 몽즙안녕~ 2014/05/19 841
381341 저 분홍색 옷 입은 여자 누군가요? 3 바람처럼 2014/05/19 2,745
381340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치후원금센타...시장후보기부는 언제부터 되나.. .... 2014/05/19 561
381339 몽청이 애쓰고 있어요 쯔쯧........ 7 slsksh.. 2014/05/19 1,584
381338 몽즙이 하는 말 3 .... 2014/05/19 1,357
381337 특검하라고 6 다 필요없고.. 2014/05/19 763
381336 가식으로 가득찬 눈물 뚝뚝 흐르는 거 보니 소름이 끼칩니다. 5 그레이매니아.. 2014/05/19 1,319
381335 닭들의 생쑈에 부치는 송가 ..... 2014/05/19 779
381334 청 > 처로 승진하는거에요. 5 .. 2014/05/19 1,419
381333 아이디 도용 (나에게도 일어나는 일) 2 그네하야 2014/05/19 698
381332 우린 이미 울거 다 알고 있었잖아요~ㅎㅎ 2 쯧쯧 2014/05/19 1,259
381331 박원순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 첫 TV 토론 열려 '표심 영향력.. 6 세우실 2014/05/19 1,162
381330 김진표, 남경필에 ‘백지장差’ 역전 10 탱자 2014/05/19 2,4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