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지하철 2호선. 학과 점퍼를 입은 여대생들의 대화 일부다. 요즘 부쩍 손석희 앵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보도하는 시선과 방식이 다른 방송과 비교해 차별화될 뿐 아니라 월등하다는 반응이다. 시청률도 눈을 비비게 만든다. JTBC ‘뉴스9’의 시청률은 최근 4~5%로 치솟아, 종편에선 이미 적수가 없고 MBC ‘뉴스데스크’ 턱밑까지 추격했다. 마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때 발 빠른 재난보도로 스테이션 이미지 를 구축한 YTN을 보는 것 같다.
손석희의 친정인 MBC를 비롯해 KBS, SBS 보도국은 시청자를 야금야금 빼앗아가는 손석희가 곱게 보일 리 없다. 한 MBC 보도국 기자는 “하루 빨리 세월호 국면이 끝나길 바라고 있다. 이러다가 뉴스데스크가 JTBC에 덜미를 잡히는 건 아닌지 다들 초조해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10초간 정적, 실종자 가족과의 약속, 닷새간 같은 의상 등이 화제가 된 뒤 SNS 에선 “요즘 대한민국 컨트롤타워는 다름 아닌 손석희”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뉴스9’이 이렇게 호평 받게 된 또 다른 동력 중 하나는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이다. 수년간 이 프로를 진행하며 쌓은 시행착오와 노하우, 신뢰자산이 고스란히 ‘뉴스9’ 브랜드의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손석희는 당시 정치 경제 뿐 아니라 국가적 재난 사고 때마다 쓴 소리를 아끼지 않으며 권력 기관에 대한 감시자로서 언론인의 본분에 충실했다. 또 서민과 사고 피해자들을 감싸는 인간미도 잊지 않았다.
당시 ‘시선집중’을 거쳐 간 PD가 10명도 넘는데, 간혹 제작진의 준비가 소홀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손석희의 불호령이 떨어지기도 했다. 평소 화를 내지 않는 성격이지만, 프로답지 않은 일처리 앞에선 ‘미스터 버럭’으로 돌변해 연차 낮은 PD와 작가들이 마음고생을 하기도 했다. 뒤끝 없이 먼저 다가가 다독여준 덕분일까. 당시 혼나며 호흡을 맞췄던 작가들이 ‘뉴스9’으로 대거 헤쳐모인 것도 팀워크 원인 중 하나다.
손석희는 세월호 참사 초반 구조된 여고생과의 부적절한 인터뷰로 후배 기자가 물의를 빚자, 직접 나서서 “모든 게 잘못 가르친 제 책임”이라며 총대를 매기도 했다. 이 진정성 있는 사과 덕분에 사태는 진화됐고 이후엔 오히려 “나도 저런 선배 밑에서 일하고 싶다”는 댓글이 줄을 잇기도 했다. 타인의 허물을 덮어주고 대신 책임지려 하는 리더의 인간미가 돋보인 사례였다.
뉴스가 넘쳐나는 공급 과잉 시대, 손석희는 지금 우리에게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 더 필요한지 냉정하게 선별해 이를 깊이 있는 논평과 함께 보여주고 있다. 요즘 전 세계 보도국의 지향점은 기자와 뉴스 소비자가 함께 뉴스를 만드는 양방향 오픈 뉴스룸이라고 한다. 앞으로 객원이나 몇몇 전문가 연결이 아닌 일반인의 집단 지성을 활용한 뉴스 제작을 손석희 앵커에게 기대하는 건, 신뢰와 평판이 자산인 언론의 기본에 가장 근접한 인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