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방관도 악업이다 - 박노자 교수님 글 하나 더

Dharma 조회수 : 1,126
작성일 : 2014-04-30 15:13:53
방관도 악업이다 (<금강신문> 기고문) 불교 관련 글 2013/03/23 23:32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58363


밑에다가 첨부한 것은, 제가 며칠 전에 <금강신문>에 기고한 내용읍니다 (출처: http://www.ggb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154 )... 이 기고문에서는 제가 연기론적 특색이 강한 불교의 언어로 아주 단순한 생각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구조적인 사회-정치적인 폭력이 행사되어지는 場에서는, 그 폭력에 저항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그 폭력을 묵시적으로 긍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그런 생각입니다.
-------
나는 며칠 전에 나의 〈동아시아 종교와 철학〉이라는 강좌를 듣는 학생들에게 불교 원론을 가르쳤다. 근본오계를 소개하면서 불살생계가 맨먼저라고 이야기하자 어떤 학생이 “왜 하필이면 불살생계가 먼저냐”고 물었다. 나는 생명을 죽이는 것이 망령된 말이나 도둑질, 음주보다 훨씬 더 많은 원한을 만들고 더 많은 악업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불교는 살생 그 자체는 물론이고 살생하려는 마음, 즉 살의(殺意)까지 문제 삼는다고 덧붙였다.

한데 과연 칼을 들고 타인의 신체를 찌르는 것만이 살생인가? 직접적인 살생 못지 않게 어떤 약자를 죽게끔 놓아두고 신경을 끊는 간접적 살생 내지 살생 방조 역시 같은 악업을 발생시키리라고 본다. 두 해 전 32세의 최고은 감독이 병과 굶주림으로 사글세방에서 고통스럽게 죽었을 때 이는 자연사라기보다 사회적인 타살이었다. 즉, 약자를 보호하는 시스템도 마련해주지 못한 이 사회 전체가 최고은을 간접적으로 살생한 셈이다. 이 악업은, 정글 식의 사회적 룰을 당연지사로 여기는 우리 모두에게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과연 우리가 이러한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살생한 사람이 최고은뿐인가? 가난한 독거노인이 병과 배고픔으로 유명을 달리하는 것은 신문에 단신으로 처리되거나 아예 그 어떤 반향도 일으키지 않는다.

지금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두 명이 벌써 백일 훨씬 넘게 송전탑에서 농성하면서 점차 건강을 잃어가고 있다. 자신의 목숨을 갉아먹으면서 그들이 요구하는 것이 법원 판결에 따르는 비정규직들의 정규직화인데, 이 요구를 묵살하고 있는 회사의 태도를 우리 사회의 다수는 당연하게 여기는 모양이다. 이 회사의 회장인 정몽구 씨와 그 아들 정의선(부회장) 씨가 지난 3년 동안 주식배당금으로 가져간, 이 회사의 모든 비정규직들의 정규직화 비용을 훨씬 초과하는 1888억원도 우리 사회에서는 당연지사다. 한쪽에서는 목숨을 걸고서 자신의 고유한 권리를 찾아야 하는 것이고, 또 한쪽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부를 계속 축적해나간다. 이와 같이 탐욕과 자기애, 폭력으로 충만한 시공간에서는 계속해서 간접적 살생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다.

불자가 된다는 것은 말로만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불교의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의 논리대로 생각, 그리고 행동도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 인드라망처럼 복잡하게 모두 다 얽히고 설킨 이 사바세계에서는 ‘나’만 직접적인 살생을 안한다고 해서 살생의 악업을 피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모든 법들이 상생의 인연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불교의 관계론적 논리 차원에서는 타자들과 완전하게 단절돼 있는 ‘나’는 없다. ‘나’와 같은 땅을 밟고 같은 공기를 마시는 ‘나’의 이웃들이 강자의 폭압으로 인해서 송전탑 농성과 같은 거의 절망적 형태의 상황으로 내몰린다면, 그리고 ‘나’는 어쩌면 저 노동자들의 피눈물과 땀으로 만들어진 자동차를 타게 될 수도 있다면, 방관과 무관심이 결국 ‘나’도 약자를 괴롭히는 강자와 함께 악업을 짓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처가 되는 길은 꼭 산간의 암자에만 있지 않다. 지금, 여기에서, 기득권자들의 폭력과 착취를 멈추게 하는 데서도 불제자가 되는 길은 열려 있다.
IP : 108.14.xxx.138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단테 신곡?
    '14.4.30 3:18 PM (114.205.xxx.124)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

  • 2. oops
    '14.4.30 3:26 PM (121.175.xxx.80)

    부처님께서는 만생명에 높고 낮음이 없으며 만생명이 틀리고 옮음없이 저마다 자유로움을 헤아려 선언하셨죠.


    내 숨결, 내 손길, 내 발길 하나 하나가... 티끌만치라도 생명의 본질인 그 평등과 자유를 향해 나아가기를 빕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393663 인테리어 관련 금액, 아는 분 계실까요? 1 음... 2014/07/01 1,260
393662 황산태러 5살 태완이 공소시효 연장 청원 6 캐디 2014/07/01 1,839
393661 pt하신분들 도움 좀 주세요 4 pt 2014/07/01 1,703
393660 흔한 파워블로거지 상대법 2 2014/07/01 4,157
393659 월세집 방충망교체 세입자가 해야하나요?? 8 .. 2014/07/01 5,850
393658 미국 여행을 부모님과 같이 한다면 어디가 좋을까요 7 123 2014/07/01 2,231
393657 제휴콘도라는게 있나요? 3 경찰공무원 2014/07/01 931
393656 486들 취직 쉬웠다는거 동의하세요? 50 87학번 2014/07/01 5,582
393655 서방 등골빼먹는 X 이라는 욕 12 딸넷맘 2014/07/01 3,893
393654 [잊지말자0416] 눈 밑 주름 궁극의 해결방법은 뭘까요? 에혀 2014/07/01 1,393
393653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 실망이에요.... 9 opus 2014/07/01 3,925
393652 헬스장에서 미국아줌마랑 싸운 썰 46 미즈오키 2014/07/01 17,986
393651 한약먹고 효과봤으면 한번 더 먹어야 하나요? 3 독특 2014/07/01 1,735
393650 아이 짜증을 얼마까지 받아줘야 할까요? 14 .... 2014/07/01 3,222
393649 변비로 죽을순 없기에.. 2 어른으로살기.. 2014/07/01 2,002
393648 생각할수록 화가나네요ㅠ.ㅜ 30 vow 2014/07/01 5,649
393647 오늘 변비해소를 위해 먹은것들 23 ㅡㅡㅡㅡ 2014/07/01 3,436
393646 복부경락 받았는데요.. 3 수엄마 2014/07/01 3,014
393645 현금 2억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까요? 4 생각중 2014/07/01 2,832
393644 정미홍 또 세월호 망언…“알바 광고 모아뒀다. 고소·고발 준비”.. 1 세우실 2014/07/01 1,227
393643 임신하고 고기는 아들 ,딸은 과일이라는데 알려주세요~~ 42 미미 2014/07/01 25,679
393642 고등학생 아침 1교시지각하면 점수반영되나요 4 무단지각? 2014/07/01 2,535
393641 부모님이 맞벌이 하셨습니다. 30대중반입니다. 13 다정함 2014/07/01 4,822
393640 아이 필리핀으로 연수가는데 모기가 제일 걱정인데요.. 1 어떤모기장 2014/07/01 1,329
393639 이번 마셰코3는 영~별로이지 않나요? 32 마셰코 2014/07/01 7,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