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사랑한다]
“내일 책가방은 어떻게 합니까?” “가방이 터질 것 같아.” “난 캐리어 들고 간다.” “우리 돌아다닐 때 교복입고 다니나요?” “고데기 가져올 사람 없음?” “보온병에 술 가져간대요.”
그 악마 같은 배에 오르기 전, 대화방에서 나눴던 너희들의 재잘거림이 들리는 듯하구나.
수학여행을 앞두고 풍선처럼 들떠 있었을 모습도 눈에 선하구나.
배에 올라서도 넘실대는 밤바다를 보며 마음은 벌써 제주도에 가 있었겠구나.
친구가 터뜨린 폭죽을 보며 그 어두운 밤길을 별이 되어 달리고 있었겠구나.
준비해온 객실에 옹기종기 모여 깔깔대며 수다도 떨었겠구나.
그 옆에서 침 질질 흘리며 자는 친구를 흉보기도 했겠고, 평소 거리감 있던 새침데기와도 과자 부스러기를 함께 먹기도 했겠구나.
집에서 떠나올 땐 아끼던 운동화를 신고, 거울을 몇 번씩이나 다시 보고, 뭉그적대지 말고 빨리 가라는 아빠 성화에 툴툴거리기도 했겠지?
빠진 것 없는지 잘 챙기고 잘 놀다오라는 엄마 잔소리에 짜증 한 바가지도 퍼부었겠지?
그러면서도 부모님께 사다 드릴 선물 목록은 꼼꼼히도 챙겼겠지?
방황하고 실수 많았던 녀석도 있었을 테고, 술과 담배를 꼬불쳐간 녀석도 있었을 거야.
몰래 연애하던 녀석들은 선상에서 함께 들을 음악을 선곡해놓느라 밤잠을 설쳤을 거야.
꿈도 많았겠지.
수학여행을 계기로 더 열심히 공부하자며 입술을 앙다문 녀석도 있었을 거고, 춤꾼 노래꾼 이야기꾼 등 별 녀석들이 다 있었을 거야.
지난겨울에 알바를 뛰었던 녀석은 두둑한 주머니에 흐뭇했을 테고, 틈틈이 부모님 일을 거들던 녀석은 그 걱정에 차마 발걸음에 떨어지지 않았을 거야.
그런데 이 나라는, 우리 어른들은, 너희들을 구해내지 못했어.
너희들이 발버둥 치며 수장되는 동안에도 그저 지켜보기만 했어.
손가락이 골절되도록 발버둥 치며 엄마아빠를 부르고 살려 달라 외칠 때, 대통령도, 장관도. 정치인도, 해양경찰도, 군대도, 아무 역할을 못했어.
심지어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위해 노력해야한다”는 헌법조차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어.
그런데 우리가 너희들을 어떻게 보내니.
억울하고 미안해서 어떻게 보내니.
숨이 멎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 나라를, 우리 어른들을 믿고 기다렸을 너희들을 어떻게 보내니.
우리조차 이 땅에 태어난 게 억울하고, 이 땅에서 자식을 낳아 기른 것이 억울하고, 이 땅에서 국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억울한데 차마 어떻게 보내니.
이젠 살아 돌아오라는 말도 뻔뻔스레 못하겠다.
부디 잘 가라 얘들아.
미안하다...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