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도 항해사도, 어른도, 남자도 아니다. "여자와 어린이 먼저"라는 '버큰헤이드호의 전통'에 따라서다.
이 전통은 16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52년 영국 해군의 수송선 버큰헤이드호가 남아프리카로 가던 중 케이프타운 66km 전방에서 암초에 부딪쳐 침몰하게 된다.
승객들은 630명이었으나 구명보트는 60명을 태울 수 있는 단 세 척뿐. 180명밖에 구조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령관 시드니 세튼 대령은 주로 신병들인 모든 병사들을 갑판 위에 모이게 한 뒤 부동자세로 서있게 했다. 이어 여자와 아이들을 3척의 구명보트에 태우게 했다.
여자와 어린이를 태운 3척의 구명보트는 침몰하고 있던 버큰헤이드호를 떠났고, 군인들은 세튼 대령의 명령에 따라 끝까지 움직이지 않고 서있었다.
그리하여 사령관 세튼 대령을 포함한 436명이 그대로 수장됐다. 이후로 "여자와 어린이 먼저"라는 전통이 세워졌는데, 그 배의 이름을 따서 '버큰헤이드호의 전통'이라고 부른다.
배가 항해 도중 재난을 당하거나 비행기가 불시착을 할 경우 "버큰헤이드 호를 기억하라"는 전통은 이때부터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탈출과 구조의 불문율이 됐다.
버큰헤이드호의 전통은 그로부터 얼마 뒤 또 다른 해상 재난사고 때도 빛을 발했다.
승객 1,515명을 태운 영국 수송선 엠파이어 윈드러쉬호가 알제리아 해안 77km 해역을 지나다 보일러가 폭발하는 사고가 났다. 화재로 인해 배가 가라앉을 위기에 처했다.
역시 구명 보트가 제한된 인원만을 태울 수밖에 없었다. 사령관이던 로버트 스코트 대령은 병사와 승객들을 모두 집합시켜놓고 일장 연설을 했다.
"지금 우리는 버큰헤이드 연습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구명정을 지정 받을 때까지 갑판 위에서 움직이지 말고 서 계십시오!".
엠파이어 윈드러쉬호 선상의 남자들은 한사람도 예외 없이 버큰헤이드호의 전통을 지켰고, 여자와 어린이가 구명보트에 다 타고난 후 약간의 자리가 남았다.
스코트 사령관에게 "이제 누구를 태울까요?"라고 묻자 사령관은 이렇게 얘기했다. "물론 장례식 순서를 따라야지. 제일 젊은 사람부터!".
승객 1,515명 가운데 여자 125명과 어린이 87명, 병약자 17명이 먼저 탑승했고 구명보트의 마지막 빈자리는 스코트 사령관의 명령대로 젊은 순서대로 채워졌다.
군인과 연장자들은 배가 멀어질 때까지 부동자세로 선상에 서 있었다. 구명보트가 눈에 보이지 않게 되자, 사령관은 병사와 선원들에게 바다에 뛰어들도록 지시했다. 절대 구명보트로 헤엄쳐 가지 말라는 명령도 떨어졌다.
얼마 뒤 인근 해역을 지나던 배가 와서 최후의 생존자까지 구출하기까지, 4시간 동안 단 한 사람도 구명보트로 헤엄쳐가지 않았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천 명 이상이 숨질 뻔 했던 엠파이어 윈드러쉬호의 해난 사고에서는 보일러 폭발 사고로 숨진 네 명의 보일러 기사 외에는 한 사람도 생명을 잃지 않았다.
1912년 4월 14일에 일어난 타이타닉호의 침몰 사고를 살펴봐도 마찬가지로 '여자와 어린이 먼저' 전통이 지켜졌다.
승선자 2,208명 중 1,523명이 숨지고 711명만이 구출된 최악의 해양참사였으나 '버큰헤이드호의 전통'대로 제한된 구명보트에는 여자와 어린이부터 승선했다.
어른들과 선장, 항해사, 기관사를 비롯한 승무원들은 단 한명도 구명보트에 타지 않았다. 영화 <타이타닉>에서처럼 승무원들은 여자와 어린이를 먼저 탈출시키고 자신들은 배와 함께 수장된다.
서로 탈출하려고 혼돈의 상황에서도 갑판에서 연주를 한 일곱 명의 악사들은 영화에서처럼 실제로 침몰 순간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배와 함께 물속에 잠겼다.
한국에서도 인기리에 상영된 영화 <타이타닉>을 본 한국의 영화팬들은 죽음을 맞이하는 그들의 용기와 희생, 자제, 숙연함에 박수를 보냈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제 보니 '버큰헤이드호의 전통'은 영국이나 미국 같은 '딴나라 얘기'였나보다.
◈ 우리는 선장과 어른 먼저…
우리 세월호는 어땠나. 선장 이준석(70) 씨는 가장 먼저 탈출했고 항해사와 기관사도 선두에 서서 탈출했다. 아이들은 선실에 대기하라고 내버려둔 채였다.
어른들은 70%가량 구조됐지만 단원고 학생들은 23%만 구조됐다. "여자와 어린이 먼저"라는 '버큰헤이드호의 전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180도 다른 '룰'이 적용된 셈이다.
입을 가진 국민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선장과 항해사 등 세월호 승무원들의 후안무치한 형태를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특히 대한민국의 엄마들은 "그들을 절대 용서해선 안 된다"며 분노한다.
대한민국 국민은 아직 그처럼 지키기 어렵고, 고귀한 전통을 지킬 자격이 없는지도 모른다. 용기와 담대함, 배려와 자제 없이는 '버큰헤이드호의 전통'이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