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론이 정조에게 시시건건 발목을 잡아서
정조의 개혁이 끝내 실패하고
조선은 망했다가
정설처럼 나오는데.....
그런데
대동법 호포법 노비종모법 등등
이른바 조선의 개혁정책 이라고 하는 것들.....
전부 다 서인정권에서 나왔습니다
노소론 분리하고 그 자손들을 연결하면
노론 정권에서도 상당 부분 개혁 정책을 내놓았습니다
아니 조선에서 개혁이라 할만한 것에서
남인은 거의 다 반대했다고 보면 됩니다
영남 지방이 가장 늦게 실현된 것도
남인 그리고 영남 지방의 유림들의 인식을 고려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송시열도 지지한 대동법 호포법을 남인은 다 반대했습니다
호락논쟁 북학파 등으로 노론이 점점 성리학 유일주의를 벗어날 때
남인 계열은 무덤덤했습니다
그리고 학풍 역시
이이의 영향을 받은 서인은
군자가 될 수 있는 자질을
학문하는 누구나에게로 넓혔으나
이황의 보수 학풍 영향 받은 남인은
그냥 군주로 좁히는 퇴보적 해석을 했습니다
실지 남인파 실학자들의 주장은
삼대(하 은 주)로 돌아가자는 복고적 개혁이 강합니다
노론은 상대적 진보이고요
그리고 정조 역시
노론의 학문 해석을 학문적으로 지지했습니다
정조 자체가 문체반정을 일으켜 성리학 외의 사상이나 기예는 이단시했던 사람이지요
노론의 영향으로 필요한 서구 문물 수용에는 부담없이 수용했으나
성리학적 사상으로 아닌 건 아니다 로 못 박아 버렸습니다
정조의 목표는 애민이었고
애민을 위해서는 서구 문물 수용도 거리낌이 없었으나
조선의 국체를 바꾼다 정도에는 절대 반대했습니다
결론은
노론이 문제여서가 아니라
조선 그 자체의 한계였고 정조도 그 한계를 넘을 생각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