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살다가 이상한 사람 A를 만났어요.
그 이상한 사람 A는
1. 전라도 사람
2. 여자
3. 공대 출신
4. 외동딸
이런 특성을 갖고 있었어요.
제가 살다가 또 이상한 사람 B를 만났어요.
그 이상한 사람 B는
1. 경상도 사람
2. 여자
3. 공대 출신
4. 딸만 있는 집 둘째
이런 특성이 있었어요.
살다 보니 또 이상한 사람 C를 만났어요.
누구나 이상한 사람 세 명 정도는 만나잖아요? ㅎㅎ
그 이상한 사람 C는
1. 서울 사람
2. 여자
3. 공대 출신
4. 오빠 있고 막내
이런 특성이 있어요.
그리고 저는 그 뒤로 공대 여자들은 좀 이상한 거 같더라.
이런 말을 하고 다니게 됐어요.
그리고 막 주위 사람들한테 말하면 보통 공감 안 하는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만 저랑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맞아 맞아 공대 나온 여자애들은 좀 그렇더라, 이기적이고... 이렇게 맞장구를 쳐요.
그럼 '공대 나온 여자는 이상하다' 이런 편견이 생겨나죠.
사실은 공대 나온 여자 중에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 훨씬 더 많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이상하지 않은 사람은 드러나지 않아요.
왜인지 아세요?
보통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을 만나거나 불쾌한 경험을 했을 때만 그 사람의 특성을 조목조목 따져보거든요.
이상하지 않은 사람은 어떤 특성이 있는지 따져보지 않아요.
그리고 이상한 사람들의 특성들을 분류해서 어떤 편으로 몰아넣으려고 하는 거죠.
내가 이상한 사람 A, B, C를 만났는데 그 사람들이 다 공대 나온 여자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어.
이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내가 아는 사람 D, E, F, G, H, I도 사실 공대 나온 여자예요. 근데 그 사람들은 안 이상해서 제가 그냥 생각을 못 하고 있거나 그 사람들이 공대 나왔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거일 수도 있어요.
이상한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이 왜 그런 이상한 짓을 했는지 그 이유나 원리를 파악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에요. 굉장히 복잡한 매커니즘으로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는 그냥 쉬운 방법으로 눈에 띄는 특성을 집어내서 그거 때문이라고 생각하려고 해버리죠. 그게 제일 쉽고 간편하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편견이 생겨나는 거구요.
제가 다른 글에 덧글에도 적었지만, 그런 편견을 방치하고 공감하면 안 되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우리는 누구나 그 편견에 피해를 받는 소수자에 속할 수 있어요.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서
나이가 찼는데 결혼을 안 해서
결혼을 했는데 직장이 없어서
아이를 가졌는데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딸만 있는 집에서 태어나서
오빠가 있어서
동생이 없어서
외동이라서
특정 지역에서 태어나서
돈이 없어서
공부를 잘 못해서
요리를 못해서(^^;)
등등등등....
너무나도 많죠.
여기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나는 강남 한복판에서 태어나 재벌집 아들이고 군대도 특전사로 다녀왔고, 좋은 대학 나와서 못 하는 게 하나도 없고....
뭐 이 정도 사람 아닌 이상은
(뭐 심지어 이런 사람도 돈 많은 집 아들은 성질이 드럽더라... 하는 편견에 희생될 수 있겠죠? ㅋㅋ)
우리는 누구나 어떤 편견의 피해를 받는 카테고리 중 하나에 속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그 편견의 대상이 내가 아닐지라도, 편견에 공감하거나 편견을 조장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내가 어떤 나쁜 일을 당했을 때, 내게 피해를 준 사람의 어떤 특징이 너무 또렷하게 눈에 들어오고 저런 사람들은 다 이러나! 하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어요. 누구나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걸 진짜 믿고 퍼뜨리기 시작하면, 언젠가 그런 편견들이 늘어나고 돌고 돌아 나한테까지 피해를 줍니다.
이상한 사람 A를 만났다면
아 A는 이상한 사람이구나.
하면 됩니다.
A 같은 사람들은 다 이상할 거 같다...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요새 그런 편견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글이 너무 자주 올라와서
입바른 말인 줄 알면서도 말씀드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