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줄 접어들던 어느 날
사진관에 가 반명함 사진을 찍었다
딱히 쓰일 곳이 없음에도 그렇게 1년에 한 번씩 사진을 찍었다
흔하디 흔한 셀카는 민망하고 지나치게 작위적인 표정에 나 스스로 놀라 멈췄다
무엇보다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흥미가 없다
한데 왜 꼬박꼬박 사진관까지 발품 팔아 그 짓?을 하는지
하루에도 수없이 보고 의식하는 얼굴이지만
가끔 정형화된 틀 안에서 객관적으로 날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시간의 저장이자 가늠하기 힘든 변화에 대한 아날로그 같은 기록이다
그렇게 몇 년치를 모아 주르륵 나열해 보면 ...보인다
미처 알아채지 못한 인상과 심정의 비밀이 조명을 받아 더 잘 드러나 있다
카메라 렌즈를 바라봤을 당시의 어색함과 긴장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경직됐지만 단정히 올라간 입매
부자연스런 시선처리로 곤혹스러웠을 때의 불편함이 경계심 가득한 눈빛에 그대로 살아있다
봄맞이 서랍 정리를 하다 우르르 쏟아진 증명사진들...
그 속에 내 유치원 졸업사진이 있을 줄이야...
뽀글거리는 파마에 노란 머리...아마 엄마의 강제가 빚은 내 유년의 어느 날이었을 거다
도전적으로 째려보는 눈에 앙 다문 입
뭔가가 디게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천진한 아이의 얼굴이기보단 일찍 철이 들어 세상을 좀 알아버린 냉소가 있다
나는 사진속에 박제돼 있지만 기억은 숨쉰다
과거의 회로를 찾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산타가 세상에 없다는 것
이쁜 아이가 선생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
어른들은 간혹 징그럽다는 것
최초의 컨닝이 이루어진 곳
후다닥 스친 기억의 잔재가 먼지처럼 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