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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저도 어릴 때 고양이 키우던 이야기 좀 할게요...

미미 조회수 : 1,466
작성일 : 2014-04-01 09:01:06

어릴 때 외할아버지랑 함께 살았어요. 어느 날 외할아버지께서 산책 나가셨다가 거의 죽어가는 고양이 한 마리를 들고 오셨어요. 동네 조무래기들이 얼마나 못살게 굴었던지 다리가 끊어지고 온 몸이 상처투성이였어요. 마침 어미 소가 죽은 송아지를 낳은 것이 있어서 외할아버지는 그것을 끓여서 고양이를 먹였어요. 아마 우리 집과 인연이 되려고 그랬나 봐요. 동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외할아버지께서 조무래기들 손에서 고양이를 구해낸 것도 그렇고 고기가 귀하던 시절에 고양이가 먹을 고기도 생긴걸 보면요. 그렇게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한 녀석에게 저는 “미미”라는 이름을 지어줬어요. 그땐 고등어 태비가 뭔지도 몰랐는데 얼룩덜룩한 무늬가 참 예쁜 아이였어요.

쥐는 고양이가 집사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라는데 그땐 그걸 몰랐어요. 녀석도 은혜를 아는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쥐나 새를 다른 사람에게는 안 주고 항상 외할아버지 방에만 가져다 놓았어요.

제가 초경을 할 때 부주의로 피가 새서 바닥에 몇 방울 떨어졌어요. 그걸 발견하신 엄마가 갑자기 고양이를 잡고 야단치시는거에요. “이놈으시끼, 또 쥐를 물고 다녔어? 피가 떨어진 것 봐. 쥐는 밖에서 먹고 들어오라고 했어 안 했어?” 그땐 어린 마음에 내가 한 짓이 들키지 않아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 잘못 없이 혼난 고양이는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얼마 안 되는 용돈으로 소세지를 사서 고양이에게 주곤 했어요. 평소엔 도도하던 녀석이 소세지 먹겠다고 앵앵거리며 바지가랭이에 매달리는게 그렇게 좋았거든요.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얘는 다른 고기를 안 먹고 소세지만 먹는 애였어요. 우리 집에 놀러올 때마다 고양이 소세지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가곤 했었는데 세월이 많이 흐른 뒤에 이런 얘길 하더군요. “그땐 정말 고양이가 부럽더라. 너도 알잖아 우리 집이 가난해서 소세지 마음껏 못 사먹는다는걸. 자존심때메 차마 고양이 소세지 달란 말 못했다.” 그 친구랑은 지금도 잘 지내고 있어요.

미미는 새끼 다섯 마리를 낳고 약 먹은 쥐를 잘못 먹고 한 달만에 죽었어요. 죽을 때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요. 힘없이 축 늘어져 끊임없이 경기를 일으키면서도 고개를 새끼들 쪽으로 돌리고, 숨이 끊어질 때가 되니 고양이 눈에 파리들이 얼마나 많이 몰려들던지. 새끼들 걱정 때문에 죽으면서도 눈을 못 감았어요. 아빠가 고양이 시체를 뒤뜰 나무아래에 묻는 것을 보면서 펑펑 울었어요.  

IP : 58.245.xxx.116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슬프네요..
    '14.4.1 9:16 AM (203.233.xxx.130)

    고양이 정말 생각보다 굉장히 정이 많고 키워보면 틀리다는 걸 알게되더라구요.

  • 2. 우리집 나비...
    '14.4.1 9:21 AM (124.49.xxx.81)

    제가 태어나서 처음 동거했던,
    잘 생긴 턱시도 냥이도 그랬어요.
    늘 동네 건달마냥 건들거리며,족제비며...딴집 고양이랑 배틀 붙던녀석,
    어느날은 꿀벌을 건드려 앞발이 솥뚜껑처럼 커져서는 아프다고 핥아대서 백옥같이 뽀얀 왕
    발.
    지는 아파죽고,식구들은 웃겨죽고...
    그녀석도 어느날 약먹은 쥐를 어케했는지,
    노란물을 게워내고 마비가 되더군요.
    근데,울고불며 동물병원가서 주사 한대 맞춰 대려왔더니 비척,비척 일어나 가족들을 두고 집을 나서더군요.
    뒤 한번 돌아보고,한걸음 옮기고...또 돌아보고
    어른들이 자기죽을 자리 찾아 가는거라고 못 잡게 하셔서,온가족이 통곡하며 보내줬어요.
    정말 잘 생겼던 내 생애 첫 고양이...

  • 3. 타이타니꾸
    '14.4.1 9:33 AM (180.64.xxx.211)

    고양이들은 죽을때 자기 죽을자리를 찾아간다네요.
    그래서 예전엔 키우던 고양이가 죽는걸 못봤는데
    몇년전에 키우던 고양이가 마루에서 죽었어요. 아파서 자연사인데 그대로 보니 정말 못보겠더라구요.
    한달여를 울다가 두마리 입양..또 한마리..지금은 세마리를 키웁니다.
    영악하고 귀엽고 애교도 많고 좋아요.

    동물도 영혼이 있는거고, 영원히 같이 살면 좋겠어요.

  • 4. ㅠ.ㅠ
    '14.4.1 9:38 AM (1.236.xxx.49)

    밖에 다니는 고양이는 그렇게 농약이나 약먹은 쥐땜에 무지개다리를 건너더라구요.
    자꾸만 상상이 되서..;;;; 슬퍼지네요.
    외할아머님 따뜻한 맘씨에 고양이 많이 고마와 했겠지요.
    우리집에도 길에서 구출되어온 아기고양이가 벌써 이년째 동거 하고 있어요.
    전엔 몰랐던 고양이의 매력에 매일매일 새로운기쁨을 알게되네요.
    묘연이라고 하지요. 우리 복덩이 .. 헤어질 그날까지 잘 키우려해요.
    동화같은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 5. 고양이 정말 사랑스러워요
    '14.4.1 9:46 AM (223.62.xxx.250)

    전에는 고양이 하면 무섭고 싫다는 느낌에
    (왜그랬나 몰라요.. 고양이를 악한으로 그리는 설화나 민화 때문이었을까요)
    강아지만 어렸을 때부터 주구장창 키웠는데
    어쩌다 고양이를 키우고 난뒤로는 그 매력이 정말
    어마무지하더라구요.

    무심한듯 찾아오는 애교, 타고난 귀여운 얼굴,
    부드러운 몸과 털 (개는 뻣뻣하게 느껴질정도)
    나긋나긋한 울음소리, 가끔 보여주는 허당같은 모습...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워요 ㅠㅠ

  • 6. 그러게요
    '14.4.1 9:47 AM (1.236.xxx.49)

    특히 우리나라 어른들은 고양이 눈을 참 무서워 하셔요. 나쁜 징조라 여기는지 ..요물이라 생각하는지
    직접 키워보니 다 아닌데 말이예요. 만나는 사람들 다섯중 셋은 다 무서워 해요.;;;;

  • 7. chubee
    '14.4.1 10:45 AM (132.3.xxx.80)

    원글님 얘기에 저도 애잔하게 떠오르는 길양이가 있네요 다롱이라고 부르던...
    산동네 살때라 제가 집에 가는 동안 어찌아는지 평지부터 어디선가 나타나 걸음걸음 다리 사이로 몸을 부비며 길따라 지붕들이 즐비한데 저는 좁은 길로 다롱인 지붕으로 집에까지 같이 걸어가곤 했어요
    밥을 챙겨줬었는지도 잘 생각 안나고 잘해주지도 않았는데 그땐 동물을 좋아하지 않을때라 그럼에도 강아지같이 그렇게 따랐더랬죠 저고 가끔 쏘세지를 줬었던거 같아요
    그후 이사가게되어 다롱이와 인사도없이 헤어졌는데 지금은 동물애호가가되어 깡패강쥐들만 4마리 키우네요지금같음 집에 데리고 살며 호강시켜 줬을텐데 두고두고 생각납니다

  • 8. 여기요
    '14.4.1 11:03 AM (211.34.xxx.202)

    우리 미키 . . . 지금 생각하면 삼색이 길고양이었는데
    아기를 가지는 바람에 집에 들어와서 집고양이가 되었어요
    우리 미키도 아가들 낳고 매일 마당에 머리만 있는 쥐를 놓아서 아주 기겁을 했어요
    쥐약 먹은 쥐를 먹는 바람에 무지개다리 건너갔지요
    한참만에 찾았는데 그모습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동생이랑 얼마나 울었는지 동네서 초상난 줄 알겠다며 혼났어요
    아 보고싶다 우리 미키 지금이면 잘해줬을텐데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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