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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의 공주들은 시집가면 어떤삶을 살았나요?

궁금해요 조회수 : 18,094
작성일 : 2014-03-31 21:25:48
조선왕조에서 공주들은 시집가면 
어떤삶을 살았을까요?
소위말하는 시집살이는 없었을것 같아요.
시아버지 시어머니도 공주님께 아침저녁으로 문안인사를 하지 않았을까요?


IP : 180.182.xxx.179
3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ㄱㄱ
    '14.3.31 9:28 PM (112.223.xxx.172)

    아침저녁 문안인사는
    신하가 왕에게도 안했습니다..

  • 2. ..
    '14.3.31 9:34 PM (115.143.xxx.41)

    일반적인 케이스보다 대접받았던건 맞는것같아요
    남편도 공주에게 높임말을 썼다고 어디서 본듯요

  • 3. 책에서도
    '14.3.31 9:36 PM (1.251.xxx.35)

    시집간 공주의 삶은 잘 못본듯하긴 하네요...

  • 4. ㅇ ㅇ
    '14.3.31 9:38 PM (211.209.xxx.23)

    궁금하긴 하네요. 이에 대한 사료는 없는가봐요?

  • 5. 박영효가
    '14.3.31 9:43 PM (14.52.xxx.59)

    부마였죠
    시집가면 사가에서 살고 궁에서는 못살아요
    시부모가 문안을 했을지는 모르겠고
    보통 여자처럼 살았을걸요
    원래 양반들은 부부간에 존대 깍듯하게 했을겁니다

  • 6.
    '14.3.31 9:44 PM (175.118.xxx.248) - 삭제된댓글

    조선시대 양반들은 부부간 서로 높임말 썼으니
    당연히 존칭어 썼겠네요ᆞᆞ
    그리고 저도 궁금합니다.

  • 7. 똑똑한 남자랑 결혼 못한걸로 알아요
    '14.3.31 9:45 PM (180.65.xxx.29)

    똑똑한 남자들은 세자의 신하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한량들과 결혼했다고 하더라구요
    그리 행복하지는 않았을것 같아요 시집 살이는 없었겠지만

  • 8. ..
    '14.3.31 9:47 PM (122.35.xxx.36)

    따로 집 마련해 살았어요. 부마랑 같이. 아비인 왕이 찾아오기도 하고 본인도 자주 친정에 가고. 그런데 명에서 자꾸 친영례하라고. 왕실에서 모범을 보이라고 해서 세종대왕이 자신의 딸인 정휘공주는 시집살이 시키기 싫어 , 대신 자신의 의붓동생인 숙신옹주를
    처음으로 친영례로 시집보내요. 의붓동생인 숙신옹주부터 아마 시집살이 한걸로 알아요.

  • 9. ..
    '14.3.31 9:48 PM (122.35.xxx.36)

    정휘아니라 정의 ㅠㅠ 오타네요

  • 10. 아버지 성향에 따라
    '14.3.31 9:50 PM (14.52.xxx.59)

    당대 제일 가는 권문에 시집가기도 하고
    제일 똑똑한 남자한테 보내기도 하고
    한량한테 보내기도 했습니다

  • 11. ..
    '14.3.31 9:50 PM (121.167.xxx.103)

    조선공주실록 이라고 신명호씨가 쓴 책 있어요.
    어떤 공주든 여염집 아낙보다 나았겠지만 그래도 삼종지도가 최고 이념인 조선시대인지라 어쩔 수 없이 여자의 삶을 살아간 듯 해요. 영조의 옹주들은 아버지의 지대한 관심아해 잘 살아도 일찍 죽었구요, 세조 딸인가는 남편이 엄청 바람펴서 왕이 불러 혼냈는데도 고쳐지지 않았다는 말도 있고. 왕의 관심도에 따라 시댁 대접도 달라진 것 같아요.현종은 시집간 동생이 천연두 걸렸는데 그 시아버지 불러 간호하게 하고... 뭐.

  • 12. 개나리1
    '14.3.31 9:54 PM (118.32.xxx.42)

    제가 읽은 바로는 문안 인사 안했어요.
    공주의 서열이 있었기 때문에 남편 보다도 품이 높았던 걸로요...

    간혹 공주의 남편(사위)를 볼때 사주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고요.

    집안에서 제일 높았기 때문에 집안 일도 안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 13. soo87
    '14.3.31 10:07 PM (116.39.xxx.36)

    부마들은 작첩(첩을 둠) 못했지요.
    공주가 먼저 죽으면 재혼도 못했고요.

  • 14. ^^
    '14.3.31 10:10 PM (39.119.xxx.21)

    공주도 시집살이 했대요 단지 강하게는 아니어도 시어른들어려워하고 그랬답니다

  • 15. 공주옹주결혼
    '14.3.31 10:16 PM (112.154.xxx.217)

    1. 원래 혼인하면 궁에서 나가살아요.
    세자 이외에는 왕자나 공주나 옹주나 다 그렇습니다. 결혼 전이라도 어느정도 나이가 차면 궁에서 나가요.
    결혼할때 아버지(왕)이 집 내려 주는 경우도 종종있어요.

    2. 부마는 원칙적으로 벼슬길에 못나가요. 벼슬을 받기는 하는데 그게 명예직이라 정치참여 못하지요.
    우리가 아는 외척이 왕의 외가(왕비친정)이나 부마(왕의 외사촌집)입니다.
    그래서 진짜 똑똑한 인물은 왕실과 혼인안하려고 하죠. 그런데 하는 경우는 후손을 보는겁니다.
    공주자식은 다음 왕이랑 외사촌(공주랑 세자랑 남매)... 그러니까 나중에 벼슬길에 엄청 잘나가죠.
    그게 2대 3대 갑니다. 우리가 잘 아는 추사 김정희(그 서예잘하는)의 증조부가 영조 둘째딸의 남편 입니다. (그러니까 영조사위가 추사의 증조) 증조부면 엄청먼거같지만 추사가 벼슬할때 그 덕을 많이 봤다고해요. 그리고 추사집이 그렇게 부자인게 옹주 시집오면서 가져온 재산을 바탕으로 한거구요.

    3. 부부존대하는데, 부마보다 공주가 더 높습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 남편보다 상석에 앉는 유일한 여자가 공주(옹주)입니다. 부마는 딱 하나 제약이 있는데 아내가 죽더라도 재혼을 못합니다.

    4, 시부모, 특히 시모랑 공주 며느리관계는 공주가 더 높습니다. 다만 조선 후기에 가면 공주에게 계속 시집살이 태클이 들어온다고하죠. 그래도 공주가 더 높습니다.

    5. 위에 친영례랑 시집살이쓰셨는데, 친영례는 남자집에 가서 혼인하는, 결혼식 형태이고 시집살이는 결혼 후 시집에서 같이 사냐 아니냐(합가여부)입니다. 친영례는 세종때 처음 실시한게 맞지만 계속되지는 않아요. 띄엄띄엄 합니다. 시집살이는... 공주마다 다르지만 같이살기도 따로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시어머니도 공주 모시고 살기 어렵죠...

    * 부마 재혼 문제는 굉장히 컸어요,. 가령 공주랑 부마가 결혼했는데, 어린나이에 소생없이 공주가 죽었습니다. 그 집에서는 부마가 자식이 없으니 재혼해서 아이를 낳고싶은데 왕이 끝내 허락을 안합니다.(아, 첩도 못들입니다. 애인이야 있을수 있지만)
    다른 부마는 결혼식 전에 부마 직위를 먼저 받았습니다.(이건 세자빈이나 왕비나 마찬가지, 정식결혼식 이틀인가 사흘전에 이미 봉작받습니다) 그런데 결혼식 전에 공주가 죽었어요. ..... 이 경우? 이미 혼인한 것으로 간주, 부마 지위를 유지하고, 평생 혼자 삽니다.....

  • 16. ...
    '14.3.31 10:16 PM (116.124.xxx.173)

    딸사랑이 지극한 왕들은
    장남은 사절, 차남인 사윗감으로 골라서 보냈대요.
    아들 낳아 대를 이어야하는 스트레스를 안주려고요.

  • 17. 공주옹주결혼
    '14.3.31 10:18 PM (112.154.xxx.217)

    아, 집안일... 우리가 아는것처럼 엄청난 부잣집(양반집)에서는 부인(며느리)가 직접 일하는 경우가 없습니다.
    일단 집안식구가 많기 때문에 사람부려서 일합니다. 그 사람 부리는게 어렵죠. 지금으로 치면 한 집안에 식구가 적어도 30명은 됩니다. 직계가족(가령 시부모, 본인가족 아이들....)+노비, 고용인이면 그정도는 훨씬 넘습니다. 그걸 그 집 안주인이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거 총괄입니다. .....
    물론 공주는 그런 것도 안하고 우아하게 수놓고 글쓰고 궁에 엄마보러다니고 하지요..

  • 18. 책에서도
    '14.3.31 10:22 PM (1.251.xxx.35)

    아...새로운 사실 하나 알고 가네요
    재미있어요^^
    똑똑하신분들도 많고..

  • 19. ...
    '14.3.31 10:48 PM (118.221.xxx.32)

    그냥 공주로 계속 살듯..
    문안인사야 하겠지만 아무도 함부로못하고...

  • 20.
    '14.3.31 10:49 PM (175.118.xxx.248) - 삭제된댓글

    와우 ᆢ
    너무 감사합니다
    원글님도 자세히 알려주신 분도 모두 모두 고맙습니다.

  • 21. 진홍주
    '14.3.31 11:25 PM (218.148.xxx.17)

    한번 공주는 영원한 공주
    단종의 누나인 경혜공주만 빼고는 거의 다 그랬다고 들었어요

    시댁이 역모에 연루되 쫄딱망하고 죽임을 당해도 공주와 옹주의
    신분은 보장됬다고 했거든요(기억가물)

    화완옹주도 폐서인 되기는 하지만...이건 아버지 영조빽 믿고
    나쁜짓 골구로 하고 정조 밀어낼려고 설치다 그리 됬지만
    그래도 정조가 끝내 사약을 내리지는 않았죠

  • 22. ...
    '14.4.1 12:03 AM (121.134.xxx.37)

    아. 재밌어요. 진짜 한번 공주는 영원한 공주네요..

  • 23. 음음
    '14.4.1 12:18 AM (110.13.xxx.236)

    당연히 공주는 영원한 공주랍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대대로 그놈의 핏줄을 중시하는 나라에서
    무려 임금님의 핏줄을 이어받은 공주는 영원히 공주이지요

    궁을 떠나 시댁에 살아도 그 집안의 가장 높은 서열이었고(임금의 핏줄이기에)
    따라서 집에서 가장 높은 대접을 받고 살았다고 합니다
    다만 윗분 말씀처럼 조선 후기, 대내외적으로 혼란스러워지고 왕권도 불안정해지고 돈많은 상놈이 양반되고 양반이 상놈되는 그 격동의 후기 시대로 갈 수록 출가한 공주의 지위도 그 전만 못하였으나 어디까지 그 전과 비교해서지 공주는 영원한 공주로 대접 받으며 살았습니다

  • 24. ㄹㄹ
    '14.4.1 2:20 AM (1.241.xxx.124)

    와~ 감사~
    너무 재밌어요.
    원글+댓글 이런글 많이많이 올려주세요~

  • 25.
    '14.4.1 6:31 AM (122.36.xxx.75)

    결혼해도 궁녀는 같이 데리고간다데요
    양반가 딸이 시녀데리고가듯‥
    그리고 관계하는날도 부부둘이 눈맞아하는게아니라 합궁하는날이있다고 합니다 ㅋ

  • 26. dh
    '14.4.1 9:46 AM (211.32.xxx.7)

    오~ 너무 재밌어요. 그래서 해품달에서 그 못된 공주가 잘생긴 염하고 결혼하려고 난리쳤을때 왕이 말렸잖아요...염은 크게 될 인물인데 부마로 살게 할수 없다고요
    제가 아는건 이것밖에 없는데, 다들 어찌 그리 해박하세요
    너무 좋아요
    그리고 82에서 이런 글 좀 많이 봣으면 좋겠어요~

  • 27. dma
    '14.4.1 10:01 AM (211.192.xxx.230)

    벼슬에 욕심이 없거나 아님 정치를 하지않을 사람을 부모라 삼았고
    정치를 할수없어서 술과 여자에 빠지기 쉬웠구요
    기생은 수도없이 만나지만 첩은 둘수가 없고

    공주가 죽어도 재혼할수 없는걸로 알아요
    물론 공식적이지않게 누굴 데리고 살겠죠.

    해품달에서 염은 세자를 위한 안배였는데
    공주가 차지하느라 평생 청념하게 공부만 하고 살아야하죠.

  • 28. ..
    '14.4.1 10:26 AM (210.126.xxx.203)

    영조딸중에 정후겸을 양자로 했던 옹주
    정치판에 너무 깊이 들어갔다가
    비참한 말년을 맞습니다.. 사약은 겨우 면했지만

  • 29. 지식인 펌
    '14.4.1 12:38 PM (121.130.xxx.145)

    화완옹주는 왜 사도세자를 죽였나요?

    화완옹주(和緩翁主)는 영조의 총애를 많이 받았던 옹주 중 한 명입니다. 아름다운 미모에 당차고 도전적인 성격을 가진 보기 드문 여자로 유명하지만 그 성격 때문에 친 오빠인 사도세자(思悼世子)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데에 일조하고 본인도 후에 파문에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화완옹주가 아무리 권력욕이 강했다고 하나 친 오빠의 죽음에 일조한 것은 역시 아직도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가장 신빙성있는 주장이 바로 소론을 가까이하는 사도세자와 이를 기피하는 노론에 대한 화완옹주와 사도세자의 부왕 영조(英祖)의 태도가 가장 원인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화완옹주는 영빈(映嬪) 이씨(李氏)의 딸로 사도세자와는 친 오누이 관계입니다. 사실 그녀는 어린 시절 존재감이 없는 옹주였습니다. 그녀가 아직 어렸을 때, 즉 그녀의 언니들이 살아있었을 때 영조는 어린 화완옹주보다 나이도 많고 현숙(賢淑)한 화완옹주의 언니들을 더 사랑했으며 자주 만나 담소도 나누었습니다. 그러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손을 떠나 정치달에게 하가하고 슬하에 딸도 낳았으나 젊은 나이에 남편과 딸을 모두 잃고 과부가 됩니다. 이 때에는 화완옹주의 언니들도 대부분 사망하여 세상에 없었기에 영조의 관심은 졸지에 혼자가 된 화완옹주에게 쏠렸고 궁궐에 거처를 내주어 화완옹주를 그 곳에서 살게 했습니다.



    존재감없는 어린 시절, 남편과 아이의 죽음으로 인해 잔뜩 비참해진 상태가 된 화완옹주가 눈길을 돌린 곳은 바로 정치판이었습니다. 당시 조정은 노론과 소론으로 갈려져 있었는데,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노론은 숙종의 비 인현왕후 민씨와 후궁 숙빈 최씨를 지지하던 서인에서 비롯된 당파로 영조가 왕위에 오르는데 밀접한 도움을 주었으며 소론은 숙종의 후궁 희빈 장씨와 경종(景宗)를 지지하던 남인에서 비롯된 당파로 영조 재위 기간에는 당연히 노론이 활성했습니다. 노론은 당시 조정의 세력을 꽉 잡고 있었고 때문에 화완옹주도 노론을 택하게 된 것입니다.



    영조와 노론, 사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콤비였습니다. 영조의 생모는 숙빈 최씨로 이미 결혼을 한 번 해서 처녀가 아니였던데다 천한 무수리여서 영조는 그 하나만으로도 심한 컴플렉스였으며 심지어 숙빈 최씨가 처녀가 아닌 것을 꼬투리잡아 영조 또한 숙종의 친 아들이 아니라는 유언비어가 퍼졌습니다. 그리고 유약한 경종에게 수없이 많은 압력을 넣어 결국 영조를 반 강제식으로 왕세제로 책봉시키고 영조가 올린 게장과 생감을 먹은 후 경종이 죽었기에 독살설도 있었습니다. 이런 많은 허물을 가진 영조를 감싸안고 옥좌에 앉힌 파가 노론이었고 이러한 배경 때문에 영조는 노론을 차마 버리지 못하는 실정에 놓여있었습니다. 그 희생물이 아들일지라도 말이죠.



    그와 반대로 사도세자는 세력을 부리는 노론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소론을 택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노론은 끊임없이 사도세자의 마음을 돌리려 노력했으나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노론이 택한 방법은 사도세자의 폐위나 죽음 밖에 없었던 겁니다. 노론은 영조와 사도세자 사이를 모질게 이간질했고 이 사이에는 화완옹주도 껴있었습니다. 이 때 영조가 사도세자 사후처럼 강경하게 아들을 믿었더라면 화완옹주도, 사도세자도 비극으로 치닫지 않았을텐데 영조는 어영부영하며 세자를 의심했고 세자는 그런 아버지와 사이가 틀어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영조는 사도세자를 뒤주에 감금하기에 이르고 8일 째 되는 날 사도세자가 사망하자 곧바로 평생을 후회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조선의 왕실은 피도 눈물도 없는 왕실이었습니다. 영조도 금지옥엽 겨우 얻은 아들을 죽인 마당에 누이라고 오빠를 못 죽이라는 법이 없지요. 조선시대 때의 당쟁은 정말 피도 눈물도 없을 정도로 잔혹했습니다. 화완옹주와 사도세자도 이 부끄러운 역사의 일부분일 뿐이지요. 조선시대 때에는 형제가 형제를 죽이는 일이 꽤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태종의 제1,2차 왕자의 난도 그렇고 세조가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결국 죽음까지 이르게 한 것도,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쪄죽게 한 것도 같은 원리죠.

    작성자 dollislovely


    윗분들이 언급하신 화완옹주에 대해 검색해서 지식인에서 퍼왔어요.
    역사 관심 없던 저도 재밌게 읽히길래요.
    다 맞는 말인지 아닌지는 전 몰라요~~ ^ ^

  • 30. 지식인 펌
    '14.4.1 12:42 PM (121.130.xxx.145)

    사도세자 비극의 기원은 숙종시기입니다.

    남인과 서인이 대립하던 숙종시기에 궁내에서의 두 세력의 대립 기추는 남인을 대표하는 장희빈과, 서인을 대표하는 인현왕후의 갈등이었죠.

    숙종은 자신의 두여자를 매개로 남인과 서인을 번갈이 기용하며 왕권을 강화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말년에는 장희빈을 죽이고, 남인을 몰락시킴으로써 서인의 기득을 용인하여 주고, 남인의 비호를 받고 있던 세자(장희빈의 아들 후에 경종)를 배척하면서 그 비극이 시작된 것이죠.

    숙종은 세자를 폐하고 최숙빈의 아들 연잉군과, 박명빈의 아들 연령군 중 하나를 후계자로 삼을 생각이었지만, 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망하면서.

    서인들에게 세자가 아닌 연잉군과 연령군을 맡긴다는 유조를 남기고 승하합니다.

    서인들은 이를 세자가 아닌 연잉군에게 보위를 넘기고자 하는 대왕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새로 등극한 세자 즉 경종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기에 이릅니다.

    서인들은 이 경종을 두고 다시 두파로 갈라지게 되는데.

    경종을 왕으로 인정하는 온건 소론과, 경종을 왕으로 인정조차 하지 않던 강경 노론이었습니다.

    경종은 등극하자마자 노론의 압력에 연잉군을 왕세제로 책봉하였고, 이듬해 왕세제에게 대리청정을 주청하는 노론의 요구에 이마저도 들어주게 됩니다.

    갓 등극한 왕에게 후계자를 양자를 들이거나 하는것이 아닌 이복 아우를 왕세자도 아닌 왕세제로 책봉하게 한것은 명백하게 현왕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선언이었으며, 이어지는 대리청정의 요구는 현 왕에게서 나오는 왕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경종 등극 2년까지 왕세제 연잉군을 앞세워 정권을 장악하던 노론에 맞서 소론이 반격을 시작하게 되는데, 왕세제 책봉과, 대리청정 주장이 왕권을 무시한 반역이라 규정하여 노론 4대신을 탄핵한 신임사화(1722)가 그것입니다.

    이 사화로 노론과 연잉군은 큰 고비를 겪게 되고, 소론이 잠시 득세하게 되지만, 아우를 사랑하는 경종의 마음을 움직인 연잉군은 목숨을 보존하게 되고, 2년 뒤인 1724년 경종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면서 연잉군은 영조로서 등극하게 됩니다.

    영조는 노론과 소론을 똑같이 기용하는 탕평을 실시하게 되는데, 그의 마음은 당연히 그와 생사를 같이 했던 노론과 함께 하였고, 소론은 언제나 그의 목숨을 위협했던 신임사화를 일으킨 장본인으로 인식되게 됩니다.

    영조가 등극하고 25년 뒤, 장자인 효장세자가 사망한지 꼭 7년만에 외아들 사도세자가 태어납니다.

    영조는 늦게 본 늦둥이 인데다, 외아들인 사도세자를 너무도 사랑하여, 어린 시절부터 그의 총명함을 왕자의 재능이라며 추켜 세웠고, 소론과 노론 역시 유일한 왕의 후계자를 아꼈습니다.

    사도세자는 자라면서 정치의 한가운데에서 왕인 영조와 신하인 노론과 소론의 힘겨루기를 지켜보았고, 노론과 소론이 자신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을때마다 펼쳐지는 양위소동에서 영문도 모르고 석고대죄 할수 밖에 없었으니...

    영조와 야당파가 주연하는 정치적쇼에서 상당히 비중있는 조연을 담당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이해할수 없는 사건의 반복은 세자로 하여금 근본적 원인을 파헤치게 만들었고, 그 의문은 소론과 노론에 대한 관계와 영조와 숙부인 경종의 관계를 알게 되면서 노론에 대한 반감으로 커져 가게 되었으며, 영조가 툭하면 양위소동을 벌이며 경종이 자신을 대단히 사랑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며, 자신의 아버지가 정말로 숙부(경종)를 독살하였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됩니다.

    사도세자의 이런 반노론 성향은 노론은 물론이고 노론의 힘으로 왕위에 오를수 있었던 영조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고, 이후 세자의 모든 정치적 행보는 영조에게는 감시해야 마땅한 대상이 될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도세자가 사망한 것은 1762년으로 그의 나이 28세 무렵이었습니다. 왕세자로서, 후의 왕으로서의 기량과 도량이 이미 현왕인 영조를 뛰어 넘어 백성으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었으며, 노론을 견재하고 소론과 남인을 신임하던 사도세자의 죽음은 어쩌면 10년 전 그의 적자인 산(혜경궁 홍씨 소생의 차자, 후의 정조. 사도세자에게는 그 말고도 후궁 둘에게서 아들 셋을 더 봄)이 태어나면서 예견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후계자가 없는 왕은 그 기반이 취약할 뿐더러, 과거 신임사화때 목숨을 부지할수 있었던 이유도, 경종을 제외하고는 효종, 현종, 숙종의 삼종의 혈맥(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의 정당성과, 인조의 장자 소현세자의 죽음으로 후계를 이은 효종의 정통성에 기반함)을 이은 자손이 연잉군(영조) 밖에 없었떤 이유가 컸던 관계로..(당시 또다른 형제는 연령군은 후사 없이 사망)

    영조에게 왕권의 뿌리이자 자신이 왕이 될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자신이 삼종의 혈맥을 잇는 유일한 왕손이라는 것 뿐이었습니다.

    이제 자신의 아들이 사도세자 밖에 없는 상황에서 만약 세자가 적장손 산과 후궁에게서 아들을 보지 못했다면, 사도세자는 어쩌면 영조의 유일한 후계자로서 목숨을 부지 할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영조에게 사도세자의 대안으로 어린 왕세손이 있었던 것은 오히려 아들 사도세자의 목숨을 재촉하게 되었고, 결국 사도세자는 그렇게 뒤주에 갖혀 너무 뛰어난 왕재이고, 노론을 신임하지 않았다는 묵시적 죄목으로 살해당하게 됩니다.

    이후 노론은 다시 자신들이 죽인 아버지의 아들인 왕세손 산을 죽이려 들지만, 이번에는 영조가 왕세손을 보호하게 되고, 왕세손 산은 할어버지의 비호아래 무사히 조선조 22대 왕 정조로 등극할수 있게 됩니다.

    정조 등극후 노론은 몸을 사릴수 밖에 없었지만, 정조 또한 아버지의 비극에서 원수는 기억하되 조급함은 금물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고, 그렇게 정조 재위 24년 동안 정조의 견제속에 활동을 할 수 없었던 노론은 정조의 아들 순조의 등극 이후(순조의 부인이 노론이었습니다. 이는 노론을 제대로 견제할수 있다는 정조의 자신감이 지나쳤던 결과로 그의 최대 실수 중 하나가 됩니다) 다시 기지개를 펴게 되니, 조선왕조의 비극 역시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듯 합니다.
    (당시 득세한 노론중 하나가 바로 후일의 안동김씨 일파입니다
    출처 : http://kin.naver.com/db/detail.php?d1id=11&dir_id=110101&eid=KYMItefpOCljhRLW...


    퍼온 김에 하나 더 퍼왔는데 너무 길죠?
    읽기 불편하시다면 지울게요.
    지식인에도 똑똑하신 분들 많네요 ^ ^

  • 31. 지식인 펌
    '14.4.1 12:45 PM (121.130.xxx.145)

    화완옹주 사도세자 모해설은 사도세자 사후 수십년이나 지난시점에서 나온 당론서에 나오는내용으로
    그다지 신빙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영남만인소로 한창 시끄러울 즈음에 그런시각의 상소문이 올라가며 화완옹주의 시숙인 정휘량의 추탈을 주장하자 정조는 외부에서 잘몰라서 그렇다며 오히려 사도세자를 보호한 공로가 있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아래 당시 그런상소가 올라올때마다 아니라 부인한 정조의 말입니다
    일단 화완옹주와 정후겸이 대리청정문제로 역적으로 제거되어 공공의 적이 된상황에서 외부에서 그것도 세월이 한참지난 시점에서 그들을 주모자로 뒤집어씌우며 서로 유리한쪽으로 해석한걸로 보여집니다. 정작 영조당시 실록에도 그런기록은 없고 화완옹주를 귀양보내면서도 사도세자에 관한 언급은 전혀없었고 화완옹주를 귀양보내놓고도 계속 돌봐주며 신경써주고 신하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대립해가면서도 풀어주려고 계속 노력한걸 봐도 정조가 화완옹주를 전혀 아버지의 원수로 인식하고 있지 않았다는걸 알수있지요 .게다가 화완옹주를 정처라 부르며 원수처럼 여기던 혜경궁도 전혀 그런말을 하고있지않고요

    너는 네 아비의 아들로서 이토록 낱낱이 진달하였지만, 지금은 이미 30년의 오랜 세월이 지났으니 그때의 사실을 잊기가 쉽다. 너의 상소 중에 정휘량과 신만(申晩)을 비록 괴수로 논하였으나 밖에서는 속 사정을 알지 못한다. 윤숙(尹塾)의 상소에서 처음 휘량과 신만을 논한 것은 옳지 않다. 휘량은 신사년 가을에 공로를 세운 곳이 있으니, 역적 나경언(羅景彦)이 급서(急書)를 올리던 때를 당하여 조정 신하 중 한 사람도 곤장 한 대 치자고 청하는 자가 없었으나 이 사람이 유독 면대를 요구하여 국문할 것을 청하였고 이 밖에도 또한 주선한 것이 많았다. 정치달(鄭致達)의 처와 정후겸(鄭厚謙)의 연고 때문에 괴수로 단정하였으나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휘량은 역적 나경언(羅景彦)을 국문하자고 청한 차자에서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바를 말하였으니, 또한 그 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신사년 가을에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일이 장차 헤아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것이다.

    정휘량과 신만의 일은 외정(外廷)에서 들은 바가 내가 아는 것과는 다르며, 이밖의 것 역시 사실이 감히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과 부득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

    그리고 화완옹주의 시가는 노론도.벽파도 아닌 소론 온건파 계열입니다.
    다음은 화완옹주의 시숙인 정휘량의 사망시 졸기로 노론이 본 정휘량의 시각이지요.

    정휘량은 정수기(鄭壽期)의 아들이며 정우량(鄭羽良)의 동생이었다. 정수기는 역적 김일경(金一鏡)의 혈당(血黨-소론)으로서 세상에서 버림을 받았지만 정우량(화완옹주의 시부) 형제는 조현명(趙顯命)에게 붙어서 탕평(蕩平)으로서 인진(引進)되었고, 다시 척신(戚臣)에 의탁하여 모두 대관(大官)의 지위에 이르렀다. 또 대제학을 거쳐 자못 문명(文名)이 있었는데, 그의 형만은 못하였다

    정조즉위년 3-25일 기사중 정후겸의악행을 서술한 부분중 하나입니다-
    " 심지어는 신축년과 임인년의 삼흉(三兇-소론삼대신)들은 선대왕에게 만세의 원수가 되는 자들인데, 속이는 말로 덮으며 주선하여 관작이 복구되게 하였습니다"

    정조 즉위년 4월 1일자 기사에서는 소론 서명선이 정후겸과 친했음을 사죄하는 기사가 보입니다. 구윤옥도 소론이어서 먼저 사죄하는 상소가 있었구요

    이조 판서 서명선(徐命善)을 소견하였다. 서명선이 말하기를,
    “신이 어제 구윤옥(具允鈺)의 상소를 보고서 두렵고 부끄럽기 그지 없었습니다. 신이 당초에 정후겸과 친근했었으나 여러 해 이래 뜻이 달라지는 단서가 생겨 서로 절교한 지가 비록 오래되기는 했습니다마는, 당초에 이미 그와 서로 좋게 지냈었으니, 지금 어찌 감히 스스로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시급히 처분을 내리시어 신하된 사람이 교제를 가려서 하지 않은 것을 징계하소서.”

    작성자 (비공개)

    전혀 다른 의견도 있네요.
    역사의 진실은 기록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니...
    이상 화완옹주에 대한 지식인 글 펌이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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