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사춘기 접어들면서 였을 거다
가족들 빨래통에서 내 속옷이 사라진 때는...
성인이 돼서도 씻는 참에 조물조물 빨라 내 방 구석에서 밤새 말렸다
젊은 아가씨니까...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3일 동안 간호하다가 처음 봤다
다 낡아빠져 늘어진 면 팬티 ...
생신 때마다 선물로 드렸던 속옷들은 포장지 그대로 장롱 구석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의식이 불분면한 상태에서도 외할머니는 아랫도리를 정리해 드리려 손이 닿으면
움찔 놀라시며 반사적으로 힘겹게 뿌리치셨다
자존심은 살아계셨다
다시 아기가 돼버린 외할머니의 마지막은 급박한 응급실에서였다
병원에서 사람은 그저 몸뚱아리가 먼저다
환자의 수치와 부끄러움은 불필요하다
전 날 밤 엄마랑 외할머니의 목욕을 도왔다
일부러 새 속옷을 갈아입혀 드렸다
의사들의 응급처치에 할머니의 옷은 한 올 한올 벗겨져 나갔다
다행이다..그나마 깨끗한 속옷으로 바꿔드려서...
외할머니의 죽음이 슬펐던 이유엔 낡디 낡은 팬티가 있다...
또 그때부터였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에서 어느 날 내가 응급실에 실려와 낱낱이 해부되는 상황을...
생명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일 텐데 난 내 속옷 상태를 우려하고 있다
내가 모르는 나의 무방비 상태
그날 응급실에서 본 광경은 엉뚱하지만 그랬다
상을 치르고 가을 바람이 솔솔 부는 어느 날
큰맘 먹고 괜찮은 속옷 가게에 갔다
늘어지고 와이어가 망가진 것은 그 즉시 버렸다
예쁘게 포장해서 오는 내내
싸한 안도감이 슬프게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