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평생 건강을 지키는 세계 최고의 건강보장기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기관의 비전이다.
공단은 '전국민 건강보험제도'에서 유일한 보험자로, 공보험 운영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당연히 건강보험제도의 강점을 홍보하고 민간보험과 대척점에서
공보험으로서의 위상을 확립하는 것도 공단이 해야 할 주요한 업무이다.
그런 차원에서 공단은 민간보험과 비교해 2배 이상 높은 보험지급률 등을
앞세워 건강보험의 우수성을 홍보해 왔다.
건보공단의 이런 역할을 따져볼 때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고 있다.
건보공단이 임직원들을 위해 암, 뇌졸중, 급성심근경색과 같은 중증질환 보장특약이
포함된 민간보험에 단체가입하고, 이를 위해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에서
수십억원을 지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단은 지난 2011년까지 임직원의 민간보험(생명․상해보험) 단체가입을 위해
연간 5~6억원의 예산을 지출해 왔다.
그런데 2012년부터 그 비용이 급증하더니 올해는 단체가입 비용이 30억원을 넘어섰다.
연도별로 건보공단 임직원들의 단체보험 가입 예산(공단이 공고한 제안요청서 기준)을 보면
2007년 5억원,
2008년 3억7,000만원,
2009년 5억2,000만원,
2010년 4억8,000만원,
2011년 6억2,000만원 등이었다.
이듬해인 2012년 들어 갑자기 17억4,413만원으로 늘더니
2013년에는 26억3,182만원,
그리고 2014년에는 32억9,500만원으로 급증했다.
2012년 이후부터 단체보험 가입 예산이 급증한 이유는 보장내용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앞서 공단은 임직원 단체보험 가입에 암보장 특약을 포함시켰다가 공보험의
관리운영주체를 맡고 있는 기관으로서 부적절하다는 비난이 일자 그 항목을 없애고
▲재해사망 ▲질병사망 ▲재해장해 등으로 보장내용을 한정했다.
하지만 2012년부터 암을 비롯해 급성심근경색, 뇌졸중 등의 중증질환 보장 특약을
슬그머니 포함시켰다.
건보공단의 2012년도 단체보험 가입 예산이 전년도(6억2,000만원)와 비교해
3배 가까이 증가한 17억4,413만원으로 책정된 것도 그 때문이다.
2013년에는 보장내용은 동일하지만 보장한도(1인당)가 2배로 증가하면서
단체보험 가입 예산이 전년도보다 10억 가까이 증가한 26억3,182만원으로 책정됐다.
건보공단이 공고한 단체보험 제안요청서에 따르면 2012년도 보장 항목별 1인당 보장한도는
▲재해사망 1억원 ▲질병사망 6,000만원 ▲재해장해 최고 1억원 ▲최초 암진단 1,000만원
▲경계성종양, 갑상선암 300만원 ▲상피내암, 기타피부암 100만원 ▲급성심근경색 1,000만원
▲뇌졸중 1,000만원 등이었다.
2013년도 1인당 보장한도는 ▲재해사망 2억원 ▲질병사망 1억5,000만원 ▲재해장해 최고 2억원
▲최초 암진단 2,000만원 ▲경계성종양, 갑상선암 600만원 ▲상피내암, 기타피부암 200만원
▲급성심근경색 2,000만원 ▲뇌졸중 2,000만원 등으로 전년도와 비교해 2배로 커졌다.
올해의 경우 단체보험 가입 예산이 약 33억원으로 전년도와 비교해 7억원이 가까이 증가했다.
올해 보장한도를 보면 다른 항목은 전년도와 동일하지만 재해장해가 ▲재해후유장애시 최고 2억원
▲질병 80% 고도후유장해 2억원 등으로 세분화되고 항목도 하나 더 늘었다.
기자가 공단 측에 단체보험 가입 예산이 증가한 이유를 묻자 다소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공단 관계자는 "임직원 수에 변화가 있었고, 공단 직원들의 평균 연령이 다른 기관과 비교해
상당히 높은 점을 감안한 위험률 등이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공단이 공고한 단체보험 제안서를 보면 2011년의 가입 대상자(공단 임직원 수)는
총 1만2,438명으로 평균 연령은 43세였다.
또 2012년의 경우 가입 대상자 1만2,385명에 평균 연령은 44세, 2013년은 1만2,516명에
평균 연령 45세, 2014년은 1만2,654명에 평균 연령 45세 등으로 큰 변화가 없었다.
단체보험 가입 예산이 증가한 이유는 보장항목과 보장한도가 확대됐기 때문이란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기자가 암과 뇌졸중 등 중증질환 보장을 포함시킨 이유를 묻자 공단 관계자는
"그 부분은 암 등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진단금을 지급하는 것"이라는 다소 황당한 답변을 했다.
심평원은 임직원의 배우자까지 단체보험 혜택 부여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단체보험 가입을 매년 실시하고 있다.
놀라운 건 심평원의 경우 직원 본인은 물론 배우자에 대해서도 보험 혜택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단체보험 적용 대상에 처음부터 임직원의 배우자가 포함돼 있었던 건 아니다.
심평원의 2008년도 단체보험 가입 예산은 2억7,525만원으로 가입 대상은 임직원으로
제한돼 있었다.
당시 보장내용은 ▲재해사망 1억원 ▲일반사망 6,000만원 ▲재해장해 최고 1억원
▲최초 암진단시(갑상샘안 포함) 1,000만원 ▲경계성종양, 상피내암, 기타 피부암 확정시 200만원
▲급성심근경생 뇌졸중(뇌경색, 뇌출혈 포함) 1,000만원 등이었다.
이듬해인 2009년부터 임직원(1,806명) 외에 배우자(1,268명)도 피보험자에 포함되면서
단체보험 가입 예산이 3억2,760만원으로 늘었다.
보장내용도 일반사망(1억원)과 암 진단(2,000만원) 등 2개 항목의 보장금액이 2배로 늘었고,
배우자의 보장금액은 임직원의 약 1/5 수준에서 책정됐다.
이런 식으로 단체보험 보장 대상과 보장금액이 확대되면서 올해는 총 가입대상 3,755명
(임직원 2,338명, 배우자 1,417명)에 사업 예산은 6억4,700만원으로 확대됐다.
올해 보장금액을 보면 ▲일반사망 2억원(배우자 3,000만원) ▲재해사망 5억원(배우자 1억원)
▲재해후유장해 최고 5억원(배우자 최고 1억원) ▲최초 암 진단시 2,000만원(배우자 500만원)
▲경계성종양 600만원(배우자 150만원) ▲상피내암, 기타피부암 200만원(배우자 100만원)
▲뇌혈관 최초 진단시 2,000만원(배우자 500만원) ▲급성심근경색 2,000만원(배우자 500만원)
▲탈구, 신경손상, 입착손상 진단위로금 100만원 등이었다.
특히 심평원의 제안요청서에는 '직원들이 단체보험과 별도로 의료실비보험에
가입을 희망하는 경우, 그와 관련한 안내 및 가입을 추진할 수 있다'는 내용도 명시돼 있었다.
"말문이 막힐 만큼 황당한 일"
건강보험제도 운영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건보공단과 심평원이 이런 식으로 임직원들의
민간보험 단체가입을 위해 매년 수십억원을 예산을 지출하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건강보험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에서 건보공단과 심평원 양 기관에 근무하는 임직원들의
민간보험 단체가입을 위해 지출하는 상황은 상당히 아이러니하다.
민간의료보험의 문제점을 파헤친 <의료보험 절대로 들지마라>의 저자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김종명 의료팀장은 "너무 황당한 일이라 말문이 막힐 정도"라며
"어떻게 공보험 운영의 핵심 기관들이 임직원의 복지를 위해 건강보험 가입자가 낸 보험료를 갖고
민간보험에 단체가입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 팀장은 "공단과 심평원 양 기관의 단체보험 가입 예산이 늘어난 것은
당연히 보장내역이 확대됐기 때문"이라며
"암과 뇌졸중 등의 보장 특약을 볼 때 현재 양 기관 임직원들의 의료보험 보장률은
90%를 넘는 수준으로 일반 국민들의 건강보험 보장률(2012년 62.5%, 4대 중증질환 77.8%)을
훨씬 웃도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현상은 역설적으로 공단과 심평원이 건강보험의 취약한 보장성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공단과 심평원은 끊임없이 건강보험제도의 우수성을 홍보하면서 소속 임직원들을
위해서는 민간보험 가입을 통한 암과 뇌졸중 등의 중증질환 보장 혜택을 부여했다는 건
그만큼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취약하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낸 꼴"이라며 "너무도 황당한 일이고,
건강보험 운영기관으로서 심각한 도덕이 해이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