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적인 환경으로부터 피난처가 필요한 아이들,
여러가지 이유로 부모가 아이들을 돌볼 수 없는 상황의 아이들에게 방을 내주고, 끼니를 챙기고, 입성을 살펴주고 등등이
제가 위탁모로서 하는 일입니다.
지난 3년 동안 많은 아이들이 저희집을 거쳐갔는데,
어떤 아이들은 주기적으로 저희집에 와서 지내기도 합니다.
지금 저희집에 와 있는 3형제는 이번이 다섯번째 위탁인데,
입에 뽀킹을 달고 살아서 제가 뽀킹 브라더스라고 부르는데 그건 굉장히 듣기 싫어해요.ㅎ
처음엔 저희집 현관에 서서 뽀킹 차이니스 집에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소리치고 버티던 녀석들이었는데,
순전히 저희 개들 덕분에 저에게도 마음을 아주 조금 열어줘서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감옥에 있는 녀석들 아빠에게 카드를 써보내면서
저희집이 아주 뽀킹 쉣은 아니라는 소리를 할 정도가 됐어요.
열 세살인 첫째는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않고 온통 거기에 빠져 있다 잠들지만,
아직 어린 둘째와 셋째는 개들과 살 맞대고 저나 남편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릅니다.
남편은 책을 읽어주다 좀 귀찮아지면 등장인물들이 다 죽었다고 해버리는 통에
아이들한테 뽀킹 쉣이라는 평을 자주 듣습니다.
저를 끝까지 뽀킹 차이니스라고 부르면서도 저녁 잠자리에서는
은근히 한국을 궁금해 하면서 한국 얘기 해주기를 기대하는 녀석들에게 해 준 이야기.
...의 한국어 버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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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꽤 먼, 큰길가의 허름한 치킨집에서 가끔 동네 이웃들과 치킨에 맥주를 즐기던 것은,
한국을 떠난 뒤 몹시 그리워하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여러 해 전 초가을, 어느 저녁은 선선한 날씨에 별들까지 총총 박힌 하늘이 아주 예뻤던 것이 기억나요.
자동차가 지나갈때마다 논두렁에 올라갔다 다시 내려오길 반복하며,
유모차에 탄 지동이까지 우리는 노래도 부르면서 "만남치킨'으로 행진해 갔지요.
남편과 출근을 했던 개들은 퇴근해서 우리와 합류했고요.
아니, 합류한 것은 남편 뿐이고 개들은 자동차속에서 날뛰면서 내리겠다고 졸랐지만,
창문만 절반쯤 열어주고는 차 안에 뒀습니다.
맥주가 나오고 치킨이 나오고, 이런저런 이유로 다투던 아이들이 잠잠해져서,
마침내 옆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는 지 알아듣게 되었을 무렵쯤
그 아저씨가 다가왔어요.....
키는 150쯤이나 될까.
처음에는 술에 취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
얼굴에는 파안대소형 주름살이 가득한데 손의 움직임이 아주 둔해 보였고,
다리를 절어서 그런지 걸어오는 모습이 마치 무중력 상태에서 유영이라도 하시는 것처럼 보였어요.
우리곁으로 다가와서는 벙싯벙싯 웃으면서 우리 테이블의 한사람 한사람 얼굴을 꼼꼼히 살피고,
밝은 갈색머리에 초록색 눈을 가진 남편 옆에 와서는 한참 눈을 끔쩍끔쩍 하다가 한번 꾸욱 찔러보는 거예요--;;;.
아..그때 남편의 난감해 하는 표정이라니...
그런데 그러던 아저씨가 한순간 멈칫!
갑자기 저희 개들을 향해 막 달려 가는 겁니다.
창문을 내려주고 온터라 조금 불안해진 제가 서둘러 뒤따라 갔지요.
아저씨는 창문틈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던 개들을, 불편하지만 애정이 듬뿍 담긴 손으로 쓰다듬어 주고 있었어요.
한 녀석이 손과 얼굴을 조금 핥자 좋아서 어쩔줄 몰라하는 모습에서 저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답니다.
"예쁘죠?" 하고 물었더니
저를 넉다운 시키는 대답이 아니 어눌한 질문이 날아왔어요.
"얘들 곰이죠?"
흐억...--;;;;;;;;;;;;;;;;;;;
"얘들... (한참 생각해본 뒤..) 개....인데요"
"곰인데..곰인데..., 얘들 곰이죠?"
상당히 확신에 찬 어조로 여러번 물어보셨어요. --;;
저는 할 말이 없어서 우물쭈물만.
.....................................................................
"아아아아아~~~"
이제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시며..
" 얘들 쎄빠토죠?"
"네?"
"쎄빠또죠?" (쎄빠또가 뭐지? 뭐지? 아아아아~~셰퍼드..)
"아 ..네..네.. 잘 아시네요...^^;;;;;"
'래브라도 리트리버' 가 어쩐지 너무 심한 말 같았거든요.
"얘들 비싸죠?"
.......................................?
"천만원?"
고개를 갸우뚱하고 진지하게 물어보는 아저씨가 귀여워져서 저는 무슨 수수께끼라도 함께 푸는 기분이었던 거 같아요.
"아니요, 그렇게 비싸진 않아요"
아저씨는 한참 손가락을 동원한 복잡한 계산 끝에 다시 갸우뚱모드로 물었어요.
"음음..음..육백만원?"
"에이, 아니예요^^"
갑자기 가격이 뚝 떨어졌어요.
"백만원???"
아저씨 입에서 침도 뚝 떨어졌고요--;;;;;;;
뒤에서 동네 사람들이 괜찮은 지 걱정스런 눈들로 보고 있었어요.
"네, 백만원이요^^ 아저씨, 그럼..안녕히.."
하는데 아저씨가 다시 환히 웃으며 하는 말,
"백만원..근데 두마리니까 ..........."
저는 또 무슨 말이 나오려나 기다렸어요.
손가락 하나씩 두개를 접어놓으시고는 남은 손가락들을 한참 들여다보시더니,
"(은밀하게) 삼백만원?"
저는 낄낄거리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대답했답니다.
"(저도 은밀하게) 네, 두마리니까 삼백만원 맞아요."
다시한번 개들을 정성스레 어루만져주고,
눈부실만큼 환한 미소를 담은 얼굴을 개들이 핥도록 맡기면서
아저씨는 참 행복해보였어요.
이후로도 가끔 산책을 하다 만나면
여전히 "얘들 곰이죠?".. "쎄빠또죠?" .."삼백만원?" 을 되풀이 했던 아저씨^^
몹시 진지하고 빈번하던 그 질문에
저도 이따끔 저희집 개들한테 "너네 혹시 곰이냐? 정체를 밝혀봐봐" 하고 묻곤 했답니다.
차를 타고 가는 저희를 보기라도 하면 신호무시하고 마구 달려오려고 해서
우리들을 깜짝 놀라게도 하셨던 아저씨..
우리는 그 아저씨를 곰 아저씨, 곰이죠 아저씨로 불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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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쟁이 형제들은 이쯤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꿈에 곰이죠 아저씨를 만났을 지도 몰라요.
덕분에 저도 오랜만에 아저씨 생각을 해봅니다.
보고 있으면 벽오금학도 속의 삼룡이가 떠오르던 아저씨,
사실은 선계에서 온 도인이신거 저도 다 알아요 하면서,
걷다가 뿅! 하고 사라지시는 것은 아닐까 싶어 늘 오래오래 아저씨의 뒷모습을 지켜보곤 했습니다.
저희집 개들도 아저씨를 참 좋아해서,
멀리서 아저씨가 보이면 아는 척하고 가야한다고 끙끙거리며 고집을 부리고,
꼬리를 휙휙 쳐대면서 아저씨 얼굴을 사정없이 핥아주며 난리를 치곤 했지요.
아저씨는 아실까요?
지구 반대편에서 누군가가, 가끔 아저씨를 생각하며 미소짓고, 또 보고 싶어하기도 한다는 것을.
낮과 밤이 다른 어디쯤에서, 아저씨 이야기를 하면 꼬리가 마구 살랑거려지는 멍멍이들이 있다는 것을.
(아참, 백조들의 안부는 키친토크에 있습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