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종교다원주의자였던 이'를 풀어쓰면 모태신앙의 독실하고 꽤 보수적인 기독교인으로 성장했고 목회자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을 입학했으나 신학을 정말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목회의 길이 아닌 종교다원주의의 길을 걷게 되며 나름대로 한국교회 개혁을 위해 힘썼으나 지금은 더 이상 기독교인이 아닌 채 오히려 불교에 더 관심이 많은 저 자신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친 즉, 종교적 신념의 변혁과정을 거친 다음 영화 노아를 보니 누구보다 더 매우 흥미로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일반 기독교인들과 같이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귀가 따갑도록 들어 알고 있었으나 신학대학교(진보적성향)에서 배운 역사비평학 관점의 성서해석으로 충격적인 진실을 경험한 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이 해석한 노아의 방주를 보니 어떻게 재밌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성서의 유명한 이야기는 앞으로 이렇게 영화로 제작하라는 롤모델을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이 제시한 듯 보입니다. 독실한 기독교인들의 눈으로 보기엔 즉, 문자주의적 성서해석을 하는 신앙인들 입장에선 영화 노아는 반성서적입니다. 왜냐하면 성서를 팩트로 서술한 역사서라는 관점에서 제작한 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성서 이야기들이 팩트임을 증명하기 위해 그들이 애쓰는 것 중 하나가 노아의 방주인데 이런 바람과 달리 대런 아로노프시키는 노아의 방주를 철저히 신화의 관점에서 풀어 갑니다. 타락천사인 괴물거인 등장이라든가, 에덴동산의 씨앗으로 순식간에 황무지를 숲으로 만드는 장면이라든가, 괴물거인들의 도움으로 방주를 제작하고 더 나아가 방주에 타려는 사람들을 거인들이 무참히 죽이는 장면을 보고 어디 노아의 방주를 고대역사의 팩트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노아의 방주 이야기는 근시대 근지방의 신화들의 영향을 받았다거나 모세의 기적은 홍해가 갈라진 것이 아니라 갈대숲을 건넜다거나 예수의 부활은 삼일만에 무덤에서 부활한 사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등 신학공부하며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면서 성서는 그저 허무맹랑한 소설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며 가치를 폄하할 수도 있었는데 해석학은 저에게 새로운 진리와 진정한 의미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성서는 이스라엘 역사서도 아니고 기독교의 교리를 서술한 경전도 아닌 신과 인간의 관계를 다룬 '신앙고백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설과 시를 허구라고 알면서도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앙고백서인 성서를 보고 동일한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영화 노아에서 신을 향한 노아의 신앙고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초반에는 선한 노아의 가족을 구원하고 그들과 대척점에 서있는 악한 사람들(카인의 후예)을 신의 이름으로 심판하려는 노아의 이분법적 신앙을, 중반에는 모든 인간들은 사악하다는 깨달음을 얻고 노아의 가족을 포함해 모든 인류를 종말시키려는 원리주의적이며 비인간적 신앙을(반인간적이지만 인류를 제외한 채 모든 만물을 구원하려는 친자연적인 신앙관), 그리고 마지막에는 가족애로 품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의 본질적이며 본능적인 사랑을 고백합니다. 이러한 노아의 신앙고백 변화과정을 보고 느끼는 게 많다면 노아의 방주 이야기가 신화라 한들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영화 노아를 보고 난 뒤 떠오르는 다큐가 있었습니다. '인류가 사라진 세상'이란 다큐인데 인류가 한순간에 어떤 이유에 의해 사라진 뒤 지구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를 가정한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인류가 사라지니 지구의 생태계는 더할 나위 없이 풍요로운 세계로 점차 바뀝니다. 지구의 자원을 인간중심으로 수탈하는 일이 없으니 지구에 사는 다른 생물들이 살맛나게 변하는 것입니다. 노아가 인간중심적인 가족애를 버리고 끝내 인류종말을 선택했다면 다큐가 보여준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또다른 지적생명체가 언젠가 등장해 종말했던 인류를 대체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악한 사람들과 달리 노아의 가족들은 선할 것이란 믿음이 깨지고 노아의 가족을 포함해 모든 인간들이 사악하다는 이야기를 노아가 아내에게 얘기하는 장면은 참으로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런 깨달음을 얻고 실행에 옮기는 노아를 보면 참으로 비인간적이지만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친자연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모든 생물을 몰살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류만 종족보존을 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이 인간만 편애하지 않고 모든 만물을 고루 사랑한다면 지구 생태계를 위해 인간을 희생시키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인류가 사라진 세상' 다큐의 입장에서 보면 더더욱. 영화 노아의 신을 인격성을 배제하고 자연(생태계)과 다름없다고 느낀다면, 자본주의의 탐욕으로 끊임없이 자연세계를 어지럽히는 현재의 인류에 대한 자기반성으로 본다면 인간을 죽이는 심판행위들은 그리 폭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영화 노아에선 성서이야기를 다룬 일반영화처럼 인격적인 신을 묘사한 장면이 없습니다. 어쨌든 영화 노아는 신선하고 놀라운 해석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습니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 만만세!!
그리고 선교영화로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제작한다면 노아의 가족과 대척점에 있는 사람들(카인의 후예)의 삶을 소돔과 고모라처럼 심판 받기에 마땅한 이들로 묘사했을 듯 싶습니다. 그러나 영화 노아에서는 그들을 그렇게 묘사하지 않습니다. 간혹 폭력적이지만 그것은 생존을 위한 폭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그들을 방탕하게 그리지 않고 그들의 왕의 대사에서 그 정당성을 표현합니다. 신의 형상을 닮아 만들어진 우리가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느냐고? 우리도 노아의 가족처럼 살 권리가 있다고. 그런데 선하거나 악하든지 구별없이 방주를 지키는 타락천사 거인들에게 무참히 죽임을 당합니다. 선과 악으로 구분해 구원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계시를 받은 노아의 신념에 의해 그들은 죽어야했고 태어날 노아의 손자도 그런 죽음에서 예외가 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구원에 대한 일반적이며 이분법적인 기준을 배격하는 행위입니다. 노아의 내면에 인류는 악하고 나머지는 선하다는 이분법적인 구분이 있겠지만 그것은 모두를 위한 한 종족의 고귀한 희생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노아는 태어난 아기를 죽이려는 칼(신념)을 거두고 사랑을 선택합니다. 이 사랑이 가족애의 가치를 정점으로 두는 것으로 종결짓는 전형적인 결론으로 볼 수도 있고, 갇힌 신념이 아닌 열린 사랑을 선택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해석은 열려있다고 봅니다. 인간중심으로 볼 것이냐 비인간적이지만 지구생태계 관점에서 볼 것이냐에 따라 영화를 보는 느낌이 다를 듯합니다. 어쨌든 영화를 보고나서 이런저런 생각할 거리를 갖게 돼 참으로 좋았습니다. 성서이야기를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좋은 영화로 적극 추천합니다.
덧붙여...
지난주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방송한 칼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보셨나요? 우주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빅뱅 후 태양과 지구가 생성되고 미생물이 인간으로 진화되는 과정을 실감나는 그래픽으로 보여줬습니다. 그런데 영화 노아에서도 노아가 천지창조를 가족들에게 알려주는 장면에서도 거의 흡사하게 표현됩니다. 코스모스 보다 압축된 장면으로 보여주는데 아담과 이브가 등장하기전까지는 거의 동일합니다. 성서이야기를 다룬 영화에서 빅뱅의 우주생성과 진화론에 입각한 지구의 역사를 다룬 장면을 볼 수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빅뱅과 진화에 신이 개입하고 있다는 면만 코스모스와 다른 입장일 겁니다. 아담과 이브가 등장하는 장면만 신화처럼 표현한 것을 볼 때 실제와 신화를 구분지으려는 감독의 관점을 볼 수 있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