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가에 서서 울고 난 다음부터는 마음이 아파서 그쪽을 쳐다보기도 힘들었어요.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갈대숲을 오래 들여다보곤 했는데,
일주일쯤 지났을까 갈대숲 안에서 가만히 웅크리고 있는 회색 백조 녀석을 봤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더 긴 장화로 갈아신고,
갈대숲의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 물 속에 앉아있었어요.
한참을 그러고 있었더니 갈대숲 한가운데쯤의 갈대들이 조금 흔들리는 게 보여서
백조들을 불러봤습니다.
제가 백조들을 부를 때 내는 소리는,
뽀뽀할 때 내는 소리, 뽑뽑뽑뽑? 쪽쪽쪽?
입술을 앞으로 작게 오무려서 내는 그 소리인데,
그건 사실 저희집 꼬마 리트리버 녀석의 이름이 뽀삐라서 제가 뽑! 하고 부르는 걸
들은 백조들이 뽑! 소리가 나면 제가 온 줄 알고 연못의 반대편에 있다가도
서둘러 연못을 가로질러 오면서 백조들을 부르는 소리로 변한거죠.
다행히 흰 백조들은 연못의 반대편에 머리를 박고 뭔가에 바쁘던 순간이라
두 녀석이 갈대숲 밖으로 나와 제가 있는 쪽으로 왔어요.
그런데 일주일 사이에 이 녀석들 몰골이 말이 아닌 겁니다.
그 건강하던 모습은 어디가고 빈사의 백조가 되어가고 있었어요.
할머니들을 긴급 소집했습니다.
작전을 짠 것이,
둘이 한팀으로 먼저 연못의 반대편으로 흰 백조들을 불러들인 다음
거기서 먹이로 흰 백조들을 붙잡아 두고 그동안 반대편에서 회색 아가들을 불러내
먹을 걸 주는 걸로.
성질 사나운 흰 백조들이 연못의 오리들도 다 쫓아내버려서 미웠지만,
그렇게라도 해야지 회색 아가들을 일단 살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은 제가 쪽쪽쪽 뽑뽑뽑 하고 부르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손뼉을 치는 걸로 바꿨습니다.
날씨가 험한 날은 할머니들께서는 산책을 나오시지 않으세요.
그러면 제가 혼자 뜁니다.
일단 흰 백조들을 불러서 먹이를 널찍하니 뿌려준 다음,
우사인 볼트의 마음가짐으로(만) 연못의 반대편으로 달려갑니다.
사진을 보시고 연못이 커요~ 하셨는데, 저 그거 달려야 합니다.ㅜㅜ
달려가서 백조 아가들 부릅니다.
손뼉도 치고, 뽑뽑뽑도 날리면서 한참 부르면, 눈치 보면서 삐죽삐죽 조심스럽게 나옵니다.
짠해 죽겠어요.
그러나 보고 있을 틈이 없이 얼른 먹이를 앞에 놔주고, 다시 흰 백조들이 있는 곳으로
바람처럼 (이번에도 마음만) 달려갑니다.
흰 백조들이 회색 아가들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계속 먹이로 유인하면서
회색 아가들이 먹이를 먹고, 스트레칭도 좀 할 수 있게 시간을 벌어주는 거죠.
그동안 연못의 쓰레기도 건져 올리고,
저희집 꼬맹이 리트리버 털도 빗겨줍니다. (새들이 좋아라고 털뭉치를 물고 갑니다.)
그렇게 해서 흰 백조들의 눈치를 보며 회색 아가들은 조금씩 건강을 되찾아가고 있었는데,
남편이 미뤄둔 휴가를 써야 한다고 여행을 가자는 겁니다.
그럼 백조들은?
다시 할머니들 소집.
할머니들께서 우리가 어떻게 해볼테니 다녀오라고 하시면서
백조들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 지 알려달라고 하셨어요.
손뼉을 치시면 된다고 말씀드렸더니,
두분 다 관절염 때문에 손뼉을 못 치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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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할머니 두분께 연못가 벌판에 서서 쪽쪽쪽, 뽑뽑뽑을 연습시켜 드렸습니다.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이 세 여인네가 서서 입을 내밀고 손뼉을 치면서 뭐하는 것인가
다가와서 보다가 함께 해보다가 웃다가 가고. ㅎㅎ
급기야는 헐렁한 틀니 때문에 쪽쪽쪽이 잘 안되시는 에드위나 할머니,
고령에도 볼이 빵빵하신 제인 할머니의 뽑뽑뽑이 너무나 귀여워서
제가 두 분 볼에 그만 뽀뽀를 날리고 말았어요.^^;
계속 되는 뽑뽑뽑 소리와 손뼉 소리에 눈치없는 흰 백조들이 뭘 좀 줄려나 싶었는 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할머니들께서 그걸 보시고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우리를 믿고 여행 잘 다녀오라고 제 등을 두드려 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