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부터 동계올림픽하면 피겨스케이팅을 즐겨 봤습니다.
어느 정도였나 하면, 비디오로 녹화해서 보고 또 보고 여동생이랑 품평하곤 했어요.
크리스티 야마구치, 이토 미도리, 남녀 페어,아이스댄싱, 페트렝코 등 러시아 남싱 등...
그러나 전문적인 깊은 지식은 없어요. 아마추어죠.ㅋㅋㅋ
제가 가장 재미없어 한 경기가 여자싱글이었어요.
왜냐구요? 재미없거든요...ㅋㅋㅋ
남자싱글들이 보여 주는 박력있고 힘찬 시원스런 점프나 연기도 없고,
남녀가 거울처럼 똑같이 한쌍의 연기를 펼치는 화려한 기술이 돋보이는 페어의 기술성도 떨어지고,
그야말로 우아하고 음악과 조화를 이루어 예술성이 돋보이는 아이스댄싱의 예술성도 떨어지고....
제일 좋아한 경기가 아이스댄싱이었어요. 남녀페어처럼 여자선수를 들어올리고 집어던지는 화려한 묘기는 없지만,
음악을 온 몸으로 표현하며 스텝을 물흐르듯 밟는 예술성이 가장 뛰어나고 남녀 선수의 조화가 돋보이는
종목이었지요.
G선상의 아리아에 맞춰 우아하게 춤추듯 스케이팅하던 러시아 남녀 아이스댄싱 선수들-
일품이었어요.(10년도 넘은 러시아니까 오늘은 봐 주시길)
여자싱글들은 단조로운 동작을 반복하며 얼음 위를 좀 돌아다니다가
점프 전에 엄청 뜸들이고 준비하다(자, 이제 점프합니다, 나 준비해요)
제자리서 폴짝 회전 뛰고는 성공하면 잘했다고 두 팔 벌리고 얼음 위를 자랑하듯이
관중들에게 나 잘했쬬? 하고 또 얼음 위를 한참 돌아다니다 그렇게 끝납니다.
미셀 콴의 연기도 봤었지만, 큰 감흥은 없었어요.
그 시절, 피겨판은 서양 선수들이 온통 판치고 있어서
저는 살아 생전에 한국에 피겨 금메달이 나올 거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기적처럼 연아가 나타납니다.
남자싱글처럼 시원스런 박력있는 점프-제자리서 뛰는 수준이 아니라 멀리서 휙 날아와서
팍 떨어지는 놀라운 점프죠. 여자싱글에서 그런 점프를 본 적도 없어요.
최상위급 아이스댄싱 선수들이 구사하는 음악을 타는, 음악과 맞추어 춤추듯 스케이팅하는
예술성을 연아는 한 몸에 다 갖추고 있었지요.
연아가 밟는 고도의 스텝도 여자싱글 경기에서 보기 힘든 수준입니다.
금메달 상위랭킹 아이스댄싱 선수들이 (원래 아이스댄싱은 예술성이 관건이거든요, 페어와 달리)
춤추듯 스케이팅하는 어려운 스텝을 연아는 여자싱글 경기에서 보여 줍니다.
거기다 아시아 선수들의 단점인 체형문제도 연아는 해당이 아니었지요.
서양 선수들보다 더 길쭉길쭉한 팔다리와 하늘하늘한 몸매....
이번 올림픽에서 쇼트 경기를 보고 참 가슴이 울리는 감동을 받았어요.
완전히 음악에 녹아든 스케이팅.....온 몸으로 표현하는 스케이팅이었습니다.
고도의 표현력과 예술성이 바로 이런 것이고 피겨스케이팅에서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수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프리 경기도 일품이었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탱고 음악을 좋아하지 않아서
개인적인 감동은 쇼트가 더했습니다.
프리 경기에서 보여 준 현란한 스텝들은 아마 앞으로 피겨스케이팅 역사상 기록으로 남을 듯합니다.
쉼없이 이어지는 스텝과 점프, 점프 후 바로 스텝.....음악과 혼연일체를 이룬 연기....
여자싱글 역사를 김연아는 새로 썼어요.
기술성과 예술성을 한 몸에 갖추고 아무런 빽도 없이 혼자의 힘으로 이뤄낸 경지....
피겨가 이렇게 혼탁한 판이구나~알게 된 것도 연아 때문이고,
연아의 경기를 보며 행복했고 가슴이 찡했고 한국인으로서 피겨 금메달을 딴 것 뿐만이 아니라
피겨 역사상 전무후무한 수준과 경지를 보여 준 연아에게
소녀시절부터의 피겨팬으로 깊은 감사와 찬사를 보냅니다.
연아의 앞길에 행복과 또다른 성공이 있기를 ~ 마음 깊이 기원합니다.